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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Jan 06. 2018

일드 <Woman, 우먼>

섬세하고 세련된 정통 신파

"우우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우우~" 글에 곡조를 실을 수 없는 것이 아쉬운 이 노래는 일드 <우먼> 내내 한껏 처량하게 흐르는 드라마 OST 입니다. 사고로 남편을 잃고 어린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싱글맘의 이야기를 전하는 이 정통 신파 드라마는 작정하고 보는 이의 눈물을 쏙 빼놓지요. 경제적 활동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싱글맘의 상황은 이보다 더 안좋을 수가 있나 싶게 점점 더 나빠지지만, 그럴수록 살아보려는 주인공의 발버둥과 아이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참 눈물겨운 작품입니다.


흔히들 드라마의 완성도를 이야기할 때 탄탄한 극본과 연출, 배우들의 연기를 말하곤 하지요. <우먼>은 이 3박자가 하나 빠질 것 없이 완벽하게 제 자리에 있어준 덕에 동시간대 기대작을 누르고 호평을 받았답니다.  

먼저 배우부터 살펴볼까요. 주연인 미츠시마 히카리(코하루 역)는 일본의 이름난 연기파 배우입니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연기력에 대한 찬사를 받는 그녀는 이 드라마에서도 진짜 어렵게 살아가는 싱글맘인 듯한 외모와 연기를 보여줍니다. 보기 안스러울 정도로 앙상한 몸매에 손질할 겨를 없는 검은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커다란 배낭을 메고 다니며 억척스럽게 아이들을 키워내지요. 코하루의 사망한 남편으로 나오는 오구리 슌(신 역)은 특별출연이지만 극 내에서 결코 존재감이 작지 않습니다. 생전에 헌신적이고 어른스러운 사랑으로 아내를 지켜주던 그는 세상을 떠난 후에도 코하루와 아이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그리움의 대상으로 함께하지요. 그 외에도 야무지고 속깊은 딸 노조미나, 코하루의 친모와 그 남편('심야식당'의 마스터이네요)도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  


<우먼>을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스토리와 대사의 힘에 있습니다. 주인공 코하루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안을 꾸려가고 아이들을 키워내는 것은 어쩜 그리도 쉽지 않은 일인지 이어지는 장면장면이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지요. 게다가 이 드라마는 각 인물들의 비밀을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어요. 남편의 죽음에 얽힌 비밀은 무엇인지, 코하루와 친모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지, 남편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던 건지 작가는 하나씩 하나씩 궁금했던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때로는 예상을 깨고 너무 일찍 비밀을 폭로해버릴 때도 있는데, 이게 끝이 아니라는 듯 무궁무진하게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가는 작가의 역량에 놀라울 때가 많지요. 또한 인물들이 갈등하고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 종종 등장하는 나긴 한 장면은 대사의 흐름을 통해 인물들의 심리와 그 화를 아주 세밀하게 드러냅니다. 이런 긴 호흡의 장면은 어디에서도 좀처럼 만나보지 못했던지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느덧 주변의 공기까지 숨죽인 듯한 집중력으로 대사에 빠져든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지요.


훌륭한 연기와 훌륭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훌륭한 연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 연출자는 이야기와 배우들에 완전히 하나가 된 것만 같아요. 연출자가 이야기에 그리 몰입하지 못했다면, 인물들의 심리에 하나하나 공감하지 못했다면 절대 나오지 못했을 것 같은 섬세한 연출이 보는 이를 감탄하게 하니까요. 결정적인 순간의 시간을 자유자재로 밀고 당기며 조절하고, 장면을 교차시켜 보여주면서 극적 효과를 아름답게 전달하지요. 또한 작은 소품 하나하나를 의미있게 비춰주거나 그림같은 전경을 한 프레임 안에 구성하여 보여주는 방식으로 연출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줍니다.


사실 '신파'라는 장르는 억지 눈물 짜내기로 느껴져 쉽게 발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때도 많지요.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애끓고 안타까운 사연들이란 있게 마련이고, 우리는 그 이야기에 함께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마음의 오염물을 씻어내기도 합니다. 절절한 이야기에 젖어보고 싶다면, 단순한 신파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면 드라마 <우먼>은 꽤 괜찮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신파도 이렇게 세련되고 섬세하고 탄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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