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화. 이젠 진짜 안녕
끝이 보이지 않는 기암괴석이 즐비한 산속 한가운데 어느 절벽 모서리.
끊어질 듯 가느다란 밧줄을 붙잡고 매달려 있다.
위로 올라가기에 체력은 이미 소진되었고 밧줄을 지탱한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나른해진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검푸른 계곡만이 어서 오라며 손짓한다. 허공에 떠 있는 발을 가끔씩 흔들어대는 바람만이 죽음과 같은 고요 속에서 아무것도 기댈 곳 없고 딛고 서 있을 곳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얼마나 지났을까. 꽤 오래 이러고 있었던 것 같다. 손에 힘을 빼지 않으려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보아도 밀려오는 잠에 무거운 눈은 감기고 밧줄이 한 가닥 끊어져 내릴 때에야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린다.
허공에서 느끼는 공포와 절망감. 어디를 봐도 더 이상 희망은 없다. 끈은 더 이상 가늘어지지도 않고 요동도 없다. 그래도 언젠가는 끊어질 텐데.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그렇다고 붙잡고 있는 손을 놓아버리지도 못한 채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간다.
이제 몸뚱아리는 바짝 마른 고목처럼 변하고 가끔씩 힘을 주어 내뱉는 긴 호흡만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 고통을 끝낼 수만 있다면... 이제 목표는 고통을 끝내는 것뿐.
잡았던 손을 놓는다. 떨어진다. 끝났다. 드디어. 다른 곳으로 간다.
그것은 추락이 아니라 비행이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낯선 곳. 자유였다.
나의 실패는 이런 모습이다.
여러분은 어떤 실패를 맛보았는가? 몇십 년간 쌓아 올린 사업체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리신 분도 계실 거고, 짧은 노력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가 금세 물거품처럼 사라짐을 경험하셨을 수도 있다. 어떤 실패든 크다 작다 말할 수 없다. 형태가 다를 뿐 모두 개개인의 간절함과 노력, 열정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고통스러운 경험일 것이다.
나의 경우는 희망이라는 가느다란 끈을 붙잡고 절벽에 매달린 채 조금씩 말라가는 듯한, 그런 실패였다. 끈을 끊어내지도 못하고 오르지도 뛰어내리지도 못하며 절벽 한가운데에서 천천히 고사되어 갔다.
죽을 만큼 힘든 어느 순간 끈을 끊어내고 아래로의 추락을 선택했다. 그러자 다른 세상이 보였다.
그것은 자유. 비록 몸은 망가졌지만 정신만은 또렷하게 살아났다.
빵잡과 함께 했던 시간은 켜켜이 쌓여서 나를 가두고 있던 많은 굴레를 하나 둘 벗어버리는 시간들이었다.
내가 붙잡고 있던 끈은 성공이라는 환상, 부모님과 나 자신에게 쌓여있던 부채감, 자신에 대한 오만함, 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회피,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왜곡된 마음, 나 자신이 아닌 나 밖의 세상에 무언가를 증명해 내야 했던 숙제. 타인에 대한 기대와 절망까지... 그런 것들을 하나 둘 천천히 내려놓으면서 많은 것들이 허물 벗듯이 벗겨져 나갔고 맨몸의 나를 직시하게 되었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고 원망스러웠던 것들은 나를 깨우치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로 이해되었다. 마치 심한 몸살을 앓게 되면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 청소와 복원을 활발히 하게 되고 다 나았을 때는 오히려 상쾌함을 느끼는 것처럼. 처절한 절망과 몸부림 뒤에 내 마음과 정신은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전에는 무시하거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 왔다. 해 보고 싶었지만 할 수 없던 것들. 미루어 왔던 모든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 후반부를 어떻게 살아야할지, 아니, 어떻게 살고 싶은지 비로소 내 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는 그 긴 터널을 통과하며 다른 차원으로 왔다. 이전의 내가 아닌 내가 되었다. 용을 쓰며 몸부림치고 안달복달했던 과거의 나를 멀찌감치에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참 애썼다. 참 힘들었겠다. 터널을 통과한 걸 축하한다. 새로운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
사업이란 철저한 전략, 냉철한 판단력과 이성, 월등한 실행력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사람이 사업에 성공하는 것도 불문율이다.
그러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합리적이고 명확한 이성만을 가지고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희소한 일인지. 실제로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성격과 가치관, 미련, 감정에 의해 얼마나 크게 좌우되는지 나의 사례로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사업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인생의 굽이굽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의외로 이성보다 감정, 개인의 동기와 열정, 내면적인 성숙도에 달려 있다고 확신한다.
결국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이고 마음의 주인인 자신의 내면이 건강해야 무엇이든 가능하다.
자신을 알고 사랑하고 행복해지는 것이 그 어떤 전략보다 가장 빠르고 좋은 성공의 방법임을 꼭 기억해야겠다.
여기까지가 뒤죽박죽 엉망진창으로 스타트업을 해 보겠다고 나댔던 나의 도전기다.
10년이라는 지난한 시간을 단 16편에 담아 놓고 보니 참 단출하다.
'남들 다 아는 사실을 맨땅에 헤딩하며 하나씩 깨우쳐 간 덤앤더머의 이야기'. 타이틀을 붙인다면 이런 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혹시 잘못된 판단이나 실수로 절망에 빠져 고통스러워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나의 이야기에서 작은 위로를 얻으시길 바란다. 무모하고 미련스럽게 10년이라는 시간을 이렇게 태워버린 바보 같은 사람들도 있구나 하고.

지금까지 빵잡의 이야기를 읽어주시고 여정을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제 와서 얘기지만 빵잡 이야기는 실은 스타트업 창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멋들어진 스타트업 성공기나 깨알 같은 노하우와 방법론을 기대하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죄송하다. 그분들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성공을 꿈꾸고 도전하고 좌절하고 인내하고.. 그러면서 ‘나’를 찾아갔던 여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씀드리겠다. 치부일지도 모르는 나의 이야기. 빵잡과 함께했던 우리 가족의 생존기이기도 한 이 이야기를 부끄러움에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이가 50이 넘으니 뻔뻔스러워진 것도 있고 그 모든 일이 이제는 나를 힘들게 하지도 아프게 하지도 않아서이기도 하며 나를 괴롭혔던 빵잡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털어놓는 동안 지난 세월을 더 정리하고 마음을 비울 수 있었고 비로소 모든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제 정말 빵잡을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아쉬워하지 않는다. 빵잡이 준 귀한 선물들을 가지고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