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창업보다 폐업이 더 어려운 법-2
왜 한 번도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겠는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항상 몇 달만 더 하면 끝날 것 같았다. 올해 말까지만, 내년 봄까지만, 우리 아들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약속해 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정해진 시점에도 완성이 되어 있지 않으면 다시 끝내겠다는 다짐은 흐지부지되곤 했다.
10년이나 걸려서 만들었다고 하니 이제 와서 왜 포기하느냐. 어떻게라도 살려보라고 하는 분들이 계셨다.
돌파구는 없을까?
조금 변형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해 볼 수는 없을까?
규모를 대폭 축소하여 간단한 앱을 다시 도전해 보면 어떨까?
빵잡을 제대로 활성화해 본다면? AI가 모든 걸 해결한다지만 그래도 인간의 돌발적이고 무작위의 아이디어와 재능들이 결합되어 예상치 못한 창조적 결과물이 얻어질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충분한 대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여러 가지 유혹이 발목을 잡는다.
그럼 또 시간이 걸릴 텐데? 이젠 정말 다시 시간과 돈, 쏟아부을 어떤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는데..
그래도 이때까지도 견뎠는데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해보면 다르지 않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다시 시간이 흘렀다.
빵잡을 포기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업을 포기하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내가 성취하고 싶었던 나의 모습, 이루고 싶었던 꿈, 이상, 비전.. 포기란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아니, 지배하고 있는 이런 모든 것들을 베어내고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선택하는 것과 같았다.
내 인생에 대한 백기투항이었고 나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에게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뻥쟁이로 남게 된다. 빵잡은 내 자존심이었다. 그만둔다는 것은 내가 바보 같았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많은 세월을 무위로 돌리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껏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그 모든 노력이 헛수고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가?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일이나 열심히 했다면 지금쯤 안정적인 생활이라도 하고 있지 않겠는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밑도 끝도 없이 매달렸단 말인가?
온갖 후회와 자책이 남편과 나를 두들겨 팼다.
과연 이대로 끝인 것인가.
모든 감정적 요인과 불명확한 예측을 내려놓고 오직 객관적인 사실만을 가지고 냉철하게 판단해 보자.
첫 번째. 어떤 아이디어나 기획은 그것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서 거의 1%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것이지만 구현을 위한 플랫폼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핵심 아이디어보다 훨씬 큰 기본적인 기능들이 중요하게 된다.
또, 완성된 사이트라는 물적 자산은 스타트업 창업과 운영에서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할까? 마케팅, 회계 관리, 법적 문제, CS, 직원 관리…. 프로그램 자체는 약 10% 정도? 다시 말해 우리가 새롭게 맞땋드려야 하는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두 번째, 날로 훌륭한 프로그램들이 쏟아지는 온라인 세상에서 가만히 정체되어 있으면 죽는다. 10년을 만들었건 몇 년을 만들었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이용자의 니즈에 발 빠르게 변화해가야 하고 매일 쏟아지는 각종 요구 처리도 신속해야 한다. 마케팅을 활발히 하여 초기 론칭에 성공한다 해도 그 이후 시스템 업그레이드, CS 처리, 서비스 개선 등이 일사천리로 빠르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두 사람으로는 역부족이다.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조직화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투자가 있어야 한다.
세 번째. 세상이 변했고 빵잡이 필요 없어졌다. 조금의 변화나 개선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빵잡이라는 서비스가 필요했던 1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
네 번째. 무엇보다 의지가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지쳤고 초기의 투지나 목표는 희미해졌다. 나의 관심사는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더 이상 빵잡으로 인해 마주쳐야 할 수많은 상황을 예전처럼 돌파하고 이겨낼 힘이 없다.
이 모든 것들에서 No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빵잡이라는 아이템도 우리의 역량도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 인식, 뼈아픈 사실을 받아들였다. 일당백으로 그 많은 일을 처리할 역량도, 빠르게 처리할 속도도, 많은 인력을 충원해서 사업체를 이끌어갈 자금도 배포도 없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적극적인 활약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 되어서야 우리가 하려는 사업이란 것의 규모와 실질적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직시된 것이다.
이제 그만하자.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더 이상은 안된다. 가망이 없다.
그렇게 우리는 빵잡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주식을 하는 분들이라면 잘 아실 것이다. 손절의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 또한 자산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다.
포기한다는 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더 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아니 더 나은 대안으로의 신속한 이동을 위한 전략적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신속하다고 말하니 무안하다. 좀 더 일찍 판단했어야 하는 것은 맞다. 결과적으로 많은 시간을 주저했고 지혜롭지 못했다.
그 바보 같은 집착이, 판단을 흐리게 했던 원인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면서 진정한 ’나‘를 발견한 것은 그래도 내가 얻은 귀중한 배움이 되었다.
무엇도 헛되지 않다. 배울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