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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정 Jun 15. 2023

사과, 어디까지 해봤니?

김우정의 메시지전쟁 (2)

두려움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증오를 낳고, 증오는 고통을 낳는다. by 마스터 요다


사과의 본질은 마음을 바꾸는 것

메타노이아(Metanoia)는 그리스어로 마음의 변화, 또는 윤리적 회심을 뜻한다. 종교적으로는 회개와 속죄의 의미로 흔히 사용된다.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메타노이아를 ‘태도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메타노이아는 사과의 본질이다.


사과는 ‘윤리적으로 마음을 바꾸고, 태도로 마음을 드러내는 행동’이다. 사과를 담은 메시지를 사과문이라고 한다. 잘못된 사과는 관계를 단절시키고, 자산을 잃게 하며,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혐오의 시대, 사과는 경쟁력이다.


잘못된 사과는 분노를 만든다. 얼마 전 한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한국의 국보인 경복궁 근정전에서 패션쇼를 개최했다. 국내외 셀럽 수백 명이 참석하는 화려한 행사였다.


논란은 패션쇼 이후 벌어진 뒤풀이에서 불거졌다. 자정 넘어서까지 요란한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 소리로 경복궁 인근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다. 빛과 소음 공해에 시달린 주민들은 경찰서에 52건의 신고를 접수했고, 사회관계망 서비스에는 논란을 일으킨 명품 브랜드에 대한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가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구찌 2024 크루즈 패션쇼’를 열었다.


실수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 날 주최 측이 보여준 사과의 행태였다. 사과문은 명품 브랜드의 홍보대행사를 통해 언론에 전달되었고, 전달된 메시지는 메타노이아를 찾아볼 수 없는 무성의함 자체였다.


ㅇㅇ는 지난 16일 패션쇼 종료 후 진행된 애프터파티로 인해 발생한 소음 등 주민들이 느끼셨던 불편함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회사의 홈페이지와 공식 SNS 계정에는 사과문이 게재되지 않았다. 100년 명품의 품격을 잃어버린 두 번째 실수였다.


사과문에는 크게 세 가지가 담겨야 한다. 첫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분노에 대한 이해다. 둘째,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진심이다. 셋째, 무엇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다.


2009년 영국의 패션 브랜드 M&S는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회사는 발 빠르게 사과 광고를 게재했다. 시작은 “We boobed”(우리는 멍청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라는 한 줄의 메시지였고, 구체적인 보상 계획과 함께 상황은 반전됐다.


명징한 사과가 고통을 멈춘다

국가 간의 사과는 민감한 외교적 문제다. 얼마 전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당연히 여론의 관심은 과거사에 대한 명징한 사과였다. 하지만 총리는 “일본 정부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애매한 입장만 반복했다.


한국 정부는 “만족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고, 충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메시지는 1998년 “일본의 식민 지배로 한국민들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으며, 이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한다”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에서 진전되지 못했다. 25년이 지나도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명품 브랜드의 사과와 기시다 총리의 사과는 똑같이 세 가지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이해가 없고, 진심이 없으며,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손현녕 작가는 “나는 잘 배운 사람의 다정함을 좋아한다. 학력의 이야기가 아니고 그냥 반듯하게 자라서 본인이 하는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지 한 번은 더 생각하는 그런 공감 능력적 잘 배움 말이다. 공감도 지능이라고 한다. 그런 게 좋다”라고 말한다.


사과는 어려운 문제지만, 결국 마음을 바꾸는 일이고 다정함을 담아야 한다. 과연 인공지능은 이런 어려운 사과를 어떻게 해결할까?


아래는 구글의 인공지능 ‘바드’가 작성한 기시다 총리의 가상 사과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일본의 기시다 총리입니다. 오늘 저는 과거사를 사과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 조국 일본은 20세기 초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한국을 식민 통치했습니다. 이 기간에 일본은 한국인에 대한 수많은 잔학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한국인들은 강제 노동, 성 노예, 살인에 처해졌습니다. 저는 이러한 잔학 행위에 대해 일본 국민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러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으며, 저희는 한국 국민께 용서를 구합니다.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저희는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양국이 협력하여 번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대한민국 국민께 사과드립니다. 저희는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시다 유코 여사가 5월 21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뉴시스)


잘못을 했다면 용기를 낼 차례다

템포 루바토(Tempo Rubato)는 독주자나 지휘자의 재량에 따라 의도적으로 템포를 조금 빠르게 혹은 조금 느리게 연주하는 음악 기술로, 정해진 틀에 구애받지 않는 재량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조율의 철학이다.


율곡 이이는 ‘성학집요’를 통해 창업, 수성, 경장의 도(道)를 설명한다. 이 중 경장(更張)은 낡은 제도를 개혁하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여 나라를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경장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상황을 조율하는 능력이다. 즉 실수가 벌어지고 혼란이 가중될 때 가장 필요한 기술이 경장이다. 잘 안다는 말보다 잘 몰랐다는 말이 더 강력한 메시지인 것처럼.


1998년 엄중한 외환위기 시대, 네 번의 도전 끝에 오른 영광의 자리에서 칠순의 김대중 대통령은 기쁨 대신 시대의 시련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말한다.


“올 한 해 동안 물가는 오르고 실업은 늘어날 것입니다. 소득은 떨어지고 기업의 도산은 속출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땀과 눈물과 고통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중략) 국회의 다수당인 야당 여러분에게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난국은 여러분의 협력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습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외환위기에 여러분도 책임이 있습니다. 저도 모든 것을 여러분과 같이 상의하겠습니다.”


사과는 다시 잘못하지 않겠다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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