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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정 Sep 21. 2023

애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김우정의 메시지 전쟁 (5)

슬프고 슬퍼하는 일


애도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일이다. 한자로 슬플 애(哀), 슬퍼할 도(悼)를 쓴다. 애도는 슬퍼하는 태도이며, 타인의 죽음에 위로를 표현하는 문화다. 주로 가족과 지인을 애도하지만, 영향력 있는 유명인의 죽음은 국가 차원에서 애도하기도 한다.


얼음이 깨지면 누가 친구이고 적인지 알게 된다.


에스키모의 속담이다. 죽음의 순간이 닥칠 때 비로소 사람의 진정한 관계가 드러난다는 말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죽음을 위로하는 방법도 학교에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슬픔을 위로해야 할 애도가 오히려 사회적 논란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늦은 저녁. 핼러윈 축제를 즐기던 수많은 인파가 서울 이태원의 좁은 골목길에서 압사로 목숨을 잃었다. 총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였다. 정부는 참사 다음 날부터 일주일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했다.


대한민국에서 국가 애도 기간은 총 두 번 선포되었는데,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피격 사건과 윤석열 정부의 이태원 압사 사고다. 현재 국가 애도 기간의 법적 근거나 선포 기준, 운영 방식 등은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애도 기간에 정부 중앙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은 시급하지 않은 행사를 연기하고, 모든 공공기관과 재외공관에 조기를 달고,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은 애도를 표하는 리본을 착용하는 정도의 관례가 적용된다.


유가족의 슬픔에 조용히 동참하자.


이태원 참사의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된 후 많은 유명인이 콘서트와 공연 등의 행사를 취소하기 시작했고, 유명 유튜버들도 음식, 술, 여가에 관한 새 영상 업로드를 자제하는 등 애도에 동참했다. 하지만 반대 여론도 들끓었다.


애도를 강제 강요하지 마라.


한 배우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 대처를 강하게 질타하며 위와 같은 메시지를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올렸다. 그의 메시지는 폭발적으로 공유되면서 국가 차원의 애도 강요에 대한 부정 여론을 형성했다. 한 가수도 ‘왜 유독 공연예술가들만 일상을 멈추고 애도를 해야 할까?’라는 메시지로 정부의 안일한 대처를 비판했다.


위로하는 사람도, 비판하는 사람의 의견도 모두 의미가 있다.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은 중요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슬픔은 내일로 미룰 수 없다.


언론과 온라인에서 사고 책임에 관한 여론전으로 시끄러울 때, 수많은 누군가는 꽃 한 송이를 들고 이태원을 찾아 안타까운 사망자들을 진심으로 위로했다. 그것이 애도다. 말보다 먼저 진심을 보여주는 일. 싸움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한다.


유엔 세계 인권 선언 제1조 또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서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모두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천명하고 있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인간의 존엄이 드러난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릴 수 있다. 약자도, 병자도, 장애인도, 외국인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려야 한다. 사회와 연결된 탄생부터 관계를 마치는 죽음까지 인간은 존엄한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 존중받는다는 건 중요해진다는 뜻이고, 존엄을 지키는 본질이다.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는 인간 본성의 가장 깊은 충동을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라고 규정했다. 크게 드러내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인정 욕구를 가지고 있다. 상대에게 인정받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애도도 마찬가지다.


7월 15일 청원군 오송읍의 궁평2지하차도가 폭우로 침수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에는 늘 슬픈 희생이 따른다.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온라인을 타고 공유되었다.


같은 기간에 나흘간 퍼부은 극한 폭우로 숨진 대한민국 국민은 당시 파악된 것만 40명이었다. 하지만 언론은 터널의 사고 원인과 책임 추궁에 관한 기사만 맹렬히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애도는 실종됐고, 슬픔은 물에 잠겼다.



얼마 전 서울의 한 20대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부임 1년 만의 비극이었다. 여론은 이태원 참사 때처럼 들끓었다. 교사가 근무하던 초등학교 앞은 검은 추모의 물결로 가득했다. 전국에서 보내온 근조 화환 수백 개가 늘어섰고, 교문에는 애도 메시지를 담은 수없이 많은 포스트잇이 붙었다.


하지만 추모 공간 설치가 늦어지면서 학교를 찾은 추모객들과 교내 진입을 막는 학교 측의 분쟁이 발생했다. 결국 임시 분향소가 설치되었고, 추모 행렬은 저녁 늦게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한 교사의 슬픈 죽음은 큰 울림을 만들었다. 교사의 권리와 학생의 인권에 대한 찬반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교권 강화 대책을 발표했고, 국회도 관련 법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편향은 결핍을 만든다. 한쪽의 인권이 올라가면, 상대의 존엄은 낮아질 수 있다. 이런 세태에 대해 윤석만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적 자유(Liberty) 대신 개인의 자유(Freedom)를 오인한 방종이 많아졌다”라고 지적하며, “성숙한 권리의 토대는 ‘프리덤’(Freedom)만이 아니라 ‘리버티’(Liberty)라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일이야말로 나의 존엄과 자유를 확보하는 일이다.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일


레퀴엠(Requiem)은 라틴어로 ‘안식을’이라는 뜻으로, 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이다. 죽은 영혼의 영원한 안식을 바라는 종교음악으로 시작되었지만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을 위로하는 음악으로 발전했고, 이후 모차르트, 브람스, 앤드루 로이드 웨버 등 위대한 작곡가들을 통해 하나의 장르로 정착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일화다. 북군의 한 중대장이 산속에서 죽어가는 병사를 발견했다. 어두워서 피아를 식별하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중대장은 그 병사를 살리기로 했다. 확인 결과 그 병사는 부모 몰래 적군인 남군에 지원한 자기 아들이었다. 군악대였던 아들은 결국 숨졌고, 아버지는 아들의 주머니에서 짤막한 악보를 발견한다. 이 음악은 ‘TAPS’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각종 영결식 행사에서 연주되고 있다.


김도경 작가는 에세이집 ‘서둘러, 잊지 않습니다’를 통해 “격렬한 상실감과 인간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애도의 감정을 ‘그러하다고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회피하지 않고 가까스로 세우고, 삶을 이어”왔다고 고백하면서 “애도는 상실을 ‘다시 봄’”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산다. 그래서 슬픔도 빨리 잊는다. 하지만 김도경 작가의 말처럼 바삐 서둘러 잊지 않아도 된다. 슬픔이 있어야 다시 일어설 힘도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투쟁을 하던 한 대학생의 죽음을 추모하는 영결식장. 문익환 목사는 추도사를 맡아 연설했다. 애도는 이름을 부르는 일이다. 진심으로 죽음을 슬퍼하는 일이다.



“전태일 열사여! 김상진 열사여! 장준하 열사여! 김태훈 열사여! 황정하 열사여! 김의기 열사여! 김세진 열사여! 이재호 열사여! 이동수 열사여! 김경숙 열사여! 진성일 열사여! 강상철 열사여! 송광영 열사여! 박영진 열사여! 광주 2000여 영령이여! 박영두 열사여! 김종태 열사여! 박혜정 열사여! 표정두 열사여! 황보영국 열사여! 박종만 열사여! 홍기일 열사여! 박종철 열사여! 우종원 열사여! 김용권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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