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정의 메시지전쟁 (4)
반복해서 할 때 그것은 우리 것이 된다. 우수함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이다. by 윌 듀란트
로컬의 범람과 시골다움의 반동
백래시(backlash)는 마틴 루터 킹이 사용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한 백인 차별주의자들의 반발을 백래시라 부르고, 이렇게 말했다.
백래시는 옛 현상들에 대한 새 이름이다.
최근 로컬이라는 용어가 범람하고 있다. 킹 목사의 말처럼 로컬도 있어온 현상에 대한 새 이름이다. 로컬은 지나치게 중앙집중적인 권력에 대한 지방중심으로의 반발이며, 이러한 움직임은 늘 반복됐다. 지금 시대의 로컬은 서울다움에 대한 시골다움의 반동이다. 로컬 브랜드, 로컬 크리에이터, 로컬 푸드.. 이제 로컬의 백래시 현상은 유행을 넘어 대한민국의 시골과 마을 곳곳마다 번지고 있는 큰 흐름이 되었다.
로컬은 소수이고 서울은 다수일까? 질과 양의 문제이고,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수 있다. 로컬 이전에 사회적 기업과 전통시장 살리기가 있었다. 대기업과 대형마트에 대한 반발심에 정부의 정책이 보태진 흐름이었다. 이제 그런 흐름이 로컬로 넘어간 듯 보인다. 정책자금이 넘어가자 전문가들이 넘어갔고,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내 돈 30억 썼다, 돈 안 아깝다. 안 해도 그만.
대한민국 로컬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는 예산시장. 2018년 유명한 외식 사업가이자 방송인 백종원의 더본코리아와 충남 예산군이 협약을 맺고 추진했던 '예산형 구도심 지역 상생 프로젝트’ 사업은 참 많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관광객이 늘면서 다른 지역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기도 했지만, 주변 숙박업소의 가격이 2~3배로 치솟고, 기존 건물주가 오랫동안 장사하던 상인들을 내쫓는 젠트리피케이션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4월, 예산시장의 상징 같던 백종원 국밥 거리 간판이 철거되었다. 백종원 대표는 ‘몇 년에 걸쳐 노력하고 큰 비용을 쏟았지만 (사장님들이) 불편했던 것 같다. 저도 마음을 많이 다쳤다. 이름은 내리지만, 예산 주민분들도 많이 이용하면서 좋은 말도 조언해줬으면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모든 성공에는 반발이 생기기 마련이다. 대중은 성공에 공감하는 듯 보이지만, 반발이 만드는 공분의 메시지에 더욱 민감하다.
로컬이 공감을 만드는 방법
십몇 년 전쯤, 지역 관광 활성화 자문차 충북의 한 시골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지역 활성화의 기조였던 신토불이 정신처럼 그곳 역시 고집스럽게 지역다움을 과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안내를 따라 지역 명소를 몇 곳 방문했지만, 시골다움이 느껴지는 곳은 거의 없었다. 안내하는 담당자도 다른 지역의 성공사례와 외국 사례를 참고했다는 사실만을 자랑스럽게 반복할 뿐이었다.
답사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할 시간. 담당자는 지역다움의 백미를 보여주겠다며 우리를 조금 떨어진 식사 장소로 안내했다. 식당은 작은 호수의 섬에 있었는데, 그곳의 붕어찜이 이 지역의 명물이라고 했다. 도착해서 식사를 시작했다. 푸짐하게 차려진 붕어찜 한 상은 보기에는 좋았다. 하지만 한 입 뜨는 순간 함께 간 많은 사람은 미간을 찌푸렸다. 먹어 본 적 없는 생소한 맛과 향에 중요한 마지막 평가가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
많은 로컬 전문가들이 공감을 만드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기획 전문가는 참신함을, 소셜임팩트 전문가는 가치창출을, 마케팅 전문가는 입소문을, 건축 전문가는 랜드마크에 대해 말한다. 외국의 성공사례도 좋고, 큰 도시의 명소화 전략과 스타트업의 전술을 참고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공감을 만드는 첫 번째 원칙은 공분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예산과 인력도 적고, 아직은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한 노력과 시간도 부족한 것이 대한민국 로컬의 현실이다. 빠른 성과를 바라는 담당자와 적은 자원으로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실무자, 지역에서 살아가는 주민 간의 틈도 예산시장의 사례에서 보듯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각자의 입장이 충돌하면 갈등이 시작되고, 갈등이 심화하면 공분의 메시지가 언론을 타고 대중들에게 전달된다. 공분은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한 로컬의 인식자산이 순식간에 원점으로 회귀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공감을 만들려는 노력 이전에, 공분의 요소부터 제거하자. 공분이 사라지면, 어느 순간 새로운 공감이 태어난다. 그럼 과연 대한민국 로컬의 공분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의 강신겸 교수는 “지역은 뿌리 깊은 토호세력들의 이해관계와 저항을 넘어 관행과 싸우며 과감히 실천하지 않고는 소멸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습니다. 백약이 무효. 지원에 기대어 보조금을 나눠 먹으며 그럭저럭 연명하겠지요. 안목 있는 리더와 열정 가득한 공무원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한다. 故 노무현 대통령은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아홉 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어느 것 하나 대통령 책임 아닌 것이 없었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라고 말했다.
로컬의 미래를 위해 돈을 만들고 쓰는 사람, 메시지는 그들의 로컬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으로부터 출발한다.
당신의 로컬은 안전하십니까?
얼마 전 20년 가까운 대학로 단골 가게 사장님이 전남 구례로 이주하셨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밤, 나는 구례로 가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사장님은 아내의 한 마디가 구례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구례는 여성들이 살기에 가장 안전한 동네예요.
그래서일까? 마침 나와 함께 일하던 여성 동료도 남편과 올해 말 구례로 이주한다고 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2000년 초반, 라스베이거스를 여행할 때 미국인 친구가 들려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라스베이거스는 도박의 도시가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관광지다.
매년 수해가 반복되는 대한민국의 현실. 제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한 로컬 프로젝트도 안전사고 한 건으로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안전이야말로 로컬의 최우선 과제다. 나는 수많은 로컬 포럼과 세미나에서 안전에 대해 말하는 전문가를 본 일이 없다. 교육학자인 로렌스 피터는 “훌륭한 장군인 맥베스는 무능한 왕이 되었다. 유능한 정치가였던 히틀러는 총사령관이 되면서 무능의 단계에 도달했다.”라고 말한다. 유능이 무능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로컬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방법은 셀 수 없이 많고, 앞으로도 수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안전을 버려두는 순간 모든 것은 무용지물이 된다. 공감을 얻고 싶다면, 공분을 사지 않으면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