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데이비드 '핀처’의 평행이론
[연재 주] 넷플릭스 리드 헤이스팅스의 여정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닮았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연출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괴테의 파우스트일지 모르고, 오징어 게임은 현실에 펼쳐진 단테의 지옥이다. OTT는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를 창조했다. 누군가에는 멋진 신세계지만 누군가에게는 실낙원인 이곳. 이 경계의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 작품, 브랜드를 16주에 걸쳐 연재하려고 한다. 매주 2편의 신작과 명작 추천은 별책부록이다. 부디 이 책이 플랫폼의 타율을 올리고, 제작사의 구종을 늘리고, 창작자의 구위를 높이는 작업이 되기를. 그리고 모든 시청자에게 시간의 자유가 함께 하기를. 뉴스레터 구독
프롤로그
시나리오 각본가의 외동아들
영화계에 착륙한 반항적인 외계인
핀처의 네트워크는 거꾸로 간다
다재다능한 재능의 평행이론
할리우드를 겨눈 비장한 선봉장
에필로그
인간은 자신이 이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어떤 동물보다 더 동물적으로 사는 데 쓴다. - 파우스트 '메피스토'의 대사 中
신과 악마가 내기를 한다. 제물은 언제나 인간이다. 왜 그래야 할까? 파우스트는 괴테가 쓴 장편 희곡이다. 1808년 1부가, 1832년 괴테 사망 후 2부가 출판되었다. 파우스트는 1541년 사망한 독일의 실존 인물이다. 그의 스토리는 성경 속 이야기와 뒤섞여 변주되었고, 전설로 부풀려진다. 괴테는 이 허풍쟁이 마술사의 욕망에 주목했다. 파우스트는 독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괴테는 서양문학의 신화가 된 천재였다.
영화감독은 현대의 마술사다. 특히 할리우드의 감독들은 예술을 전설로 만드는 타고난 천재들이다. 하지만 천재도 자본의 눈치를 봐야 한다. 영국의 평론가 토리 레인즈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멍청이들을 설득해, 지적이고 도전적인 영화에 투자하도록 만드는 능력을 가진 감독은 데이비드 핀처와 폴 토머스 앤더슨 둘뿐”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핀처(David Andrew Leo Fincher, 이하 핀처)’는 자본을 능가하는 천재다.
괴테와 핀처의 인생은 평행이론이다. 둘 모두 완벽주의 성향을 추구했고, 다재다능했으며, 주변과 갈등하며 예술을 꽃피웠고, 타고난 천재성으로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습니다. - 파우스트 '바그너'의 대사 中
핀처는 1964년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였던 ‘잭 핀처(Jack Fincher)’다. 그는 고등학교를 캘리포니아 머린에서 보냈다. 어느 날, 앞집에 ‘조지 루카스(George Lucas)’가 이사를 왔고, 이후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는 18세에 ‘존 코티(John Korty)’ 감독 밑에서 일했고, 이후 루카스필름의 특수 효과 부서인 ‘ILM(Industrial Light & Magic)’에서 스태프로 근무했다. 그 시절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과 ‘인디아나 존스와 운명의 사원’ 등에 참여했다. 하지만 만화 같은 판타지는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스튜디오를 뛰쳐나온 핀처는
광고계에 투신한다.
그의 첫 광고는 1985년 ‘미국 암협회(American Cancer Society)’의 “흡연하는 태아”였다. 자궁 속 태아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은 당시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핀처는 불과 30초의 시간에도 강렬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는 내러티브의 정수를 보여줬다. 이후 핀처는 나이키, 코카콜라, 버드와이저, 하이네켄, 펩시, 리바이스, 컨버스, 샤넬 등과 일했고, CF감독으로 명성을 알린다.
광고계에서 인정받은 핀처는 친구들과 광고제작사 ‘프로파간다’를 설립한다. 훗날 CF 출신으로 상상력과 테크닉이 결합된 신흥 영화감독이라 불리는 마이클 베이, 스파이크 존스 등이 이 회사 출신들이다.
핀처는 광고계에도 곧 싫증을 느끼고 뮤직비디오에 도전한다. 마돈나, 스팅, 롤링스톤즈, 마이클 잭슨, 에어로스미스, 조지 마이클, 빌리 아이돌 등 쟁쟁한 가수들의 작품을 연출했다. 특히 마돈나의 보그 MV는 1990년 ‘MTV 뮤직 어워즈’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이 해 작품상 후보 4편 중 3편이 핀처의 연출작이었다.
이때부터 할리우드가
핀처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핀처의 첫 영화는 에이리언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에이리언 3’였다.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는 ‘H. R. 기거’의 미술을 바탕으로 미스테리한 외계 생명체와의 사투를 그린 SF 대작이다. 1편은 1979년 ‘리들리 스콧’이 연출했고, 2편은 1986년 ‘제임스 카메론’이 연출했다. 그리고 1992년 개봉한 3편의 메가폰은 당시 신출내기 감독이었던 핀처에게 돌아갔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데뷔작이었던 ‘에이리언 3’는 흥행에 크게 참패한다. 평단도 현재까지 공개된 시리즈 중 최악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였겠지만, 광고계 출신 신인감독을 대하는 제작사의 간섭이 가장 문제였다. 핀처는 지금까지도 이 작품을 자신의 영화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리고 3년 동안 할리우드를 떠난다.
전 세계에서 ‘에이리언 3’를 나보다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 데이비드 핀처의 인터뷰 中
1995년, 핀처는 두 번째 연출작 ‘세븐'으로 복귀한다. 비 오는 회색 도시, 인간의 7대 죄악, 연쇄살인범을 쫓는 두 형사의 이야기, 세븐은 흥행에 크게 성공하며 역대 최고의 범죄 스릴러 영화가 된다. 세븐은 세계적으로 3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지금까지도 1990년대 네오 누아르를 대표하는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핀처는 세븐 이후 더 게임, 파이트 클럽, 패닉 룸, 조디악 등으로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더 게임’의 흥행은 기대이하였고, ‘파이트 클럽’은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으며 흥행에도 참패한다. 차기작 ‘패닉 룸’이 조금 성공을 거두지만, 7년 만의 신작 ‘조디악’은 다시 흥행에 실패한다.
사람들은 핀처를 ‘가성비 최악의 할리우드 감독'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 실크처럼 매끄럽고 벨벳처럼 우아하다. - 이동진
추락은 오래가지 않았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이하 버튼)'는 핀처 연출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버튼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이 원작이다. 버튼은 큰 흥행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오르며 핀처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이라고 평가받는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말 뉴올리언스. 80세의 외모를 가진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벤자민 버튼. 생김새 때문에 양로원에 버려져 노인들과 함께 지내던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젊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12살이 되며 60대의 외모를 가지게 된 어느 날, 5살 소녀 데이지를 만난 후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잊지 못하게 된다. 점차 중년이 되어 세상으로 나간 벤자민은 숙녀가 된 데이지와 만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비로소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벤자민은 날마다 젊어지고 데이지는 점점 늙어가는데.. - 벤자민의 ‘시놉시스' 中
2010년, 핀처는 영화 ‘소셜 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 이하 소셜)'를 연출한다. 소셜 네트워크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개봉 후 평단과 관객의 큰 호평을 받으며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소셜은 북미 9700만 달러, 전 세계 총 2억 25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소셜은 전미 비평가 협회 시상식을 휩쓸었고, 2011년 골든 글로브에서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을 받았다.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3개 부문을 수상하며 핀처의 인생을 역전시킨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소셜을 2010년대 최고의 영화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렇게 핀처의 전성시대가 열린다.
그가 지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 일을 하든 금하지 않겠노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 선한 인간이란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잘 알고 있다고 말이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살고 싶다. 그러면 지금 멈추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 괴테의 ‘파우스트' 中
★★★★ 흥미로운 이야기를 더욱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데이빗 핀처의 장력. - 이동진
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는 핀처의 최고 흥행작품이다. 원작은 길리언 플린의 소설 '사라진 그녀’다. 2014년 개봉한 영화는 결혼 5주년을 앞두고 사라진 아내를 찾아 나선 남편의 이야기다. 치정극에 가까운 스토리를 스타일리시한 서스펜스 스릴러로 바꾼 핀처의 연출력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나를 찾아줘는 가성비 최악이었던 핀처의 명예를 완벽하게 회복시켜 준 작품이다. 핀처의 영화들은 높은 제작비 대비 흥행이 신통치 않았던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를 찾아줘는 개봉 2주 만에 북미 박스오피스 1억 6천7백만 달러를 기록했다. 한국 개봉 당시에도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최종 176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전 세계 최종 스코어는 약 3억 7천만 달러로, 제작비의 6배가 넘는 수익을 기록했다.
핀처는 컴퓨터 그래픽, 광고, 뮤직비디오를 거쳐 영화에 입문했다. 그의 장르는 SF, 범죄, 스릴러, 드라마, 전기 영화를 넘나 든다. 경계를 넘는 그의 강점은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던 시절에는 분명 약점이었다. 하지만 결국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하며, 본인의 이름을 장르로 구축했다. 200년 전의 괴테도 그런 사람이었다.
괴테는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로 명성을 쌓았지만 동시에 화가이자 건축가로도 활동했다. 여행기를 쓴 작가였고, 연극 연출가로 궁정 무대를 총괄하기도 했다. 예술가였지만 무대경영과 배우교육에도 큰 재능이 있었고, 식물학에도 조예가 깊어 식물학 전문서적도 집필했다. 괴테는 최초로 “꽃은 잎이 변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식물학자로 연구하셔도 되겠습니다. 이건 농담이 아니라 괴테씨의 열정과 지식을 봐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 식물학자 ‘베르너‘가 괴테에게 보낸 편지 中
괴테는 치의학과 해부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괴테는 간악골(앞니뼈)을 발견한 사람이다. 관련 학계에선 이 뼈를 지칭할 때 ‘Goethe's Bone’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다. 그는 또한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 재직하며 정치가로서도 활약했다. 토목 공사를 직접 지휘했고, 참모로 프랑스와의 전투에 참전하기도 했다.
괴테와 핀처는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진 천재들이었지만, 그 스펙트럼에는 차이가 있었다. 괴테는 문학, 철학, 예술, 정치, 과학 등 폭넓은 분야에서 활약했다. 반면 핀처는 영화라는 한 분야에서 다양한 장르와 영역을 아우르며 천재성을 발휘했다. 하지만 괴테 최고의 재능은 글쓰기였고, 핀처 최고의 재능은 단연 연출이다.
괴테는 대표작 '파우스트'를 비롯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색채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다. 반면 핀처는 영화 연출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천재성을 펼쳤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SF, 스릴러, 범죄, 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고, 때로는 장르 자체를 초월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핀처는 OTT 플랫폼의 선구자로서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를 통해 스트리밍 드라마의 지평을 확장시킨다.
좀 더 빛을.. 조금 더 빛을.. 괴테의 유언
그 안락과 평화! 어느 것도 바라지 않아. 내가 만일 이것으로 족해 게으름의 자리 위에 길게 드러눕는다면, 내 생명의 끝이 되어 그렇게 누워 쉬게 되리라. 네가 그럴싸하게 나를 부추겨 스스로 만족하게 하고, 쾌락으로 내 혼을 빼앗아간다면 그것이 내 최후의 날이다. 내기를 하자. - 괴테 ‘파우스트의 대사' 中
명예회복에 성공한 핀처는
OTT로 영역을 넓힌다.
2011년 넷플릭스 CEO ‘테드 서랜도스’는 무려 1억 달러를 드라마 한 편에 투자하겠다고 선포한다. ‘하우스 오브 카드(이하 카드)’ 시리즈였다. 카드는 스트리밍 플랫폼과 할리우드 빅스튜디오의 피할 수 없는 ‘오리지널 전쟁’의 신호탄이 된 작품이다. 이 역사적인 작품의 첫 연출가로 핀처가 소환됐다.
카드는 OTT 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시리즈다. 이 작품은 마이클 돕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2013년 2월 1일부터 방영되었다. 카드는 스트리밍 드라마 최초로 에미상 감독상, 촬영상, 캐스팅상을 수상했고, 골든 글로브 TV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핀처는 시즌1의 1,2화를 연출했고, 이후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다.
지난 10년간 배우들이 연기력을 펼치는 데 가장 좋은 조건의 각본은 항상 TV 드라마에서 나왔다. 영화는 TV처럼 긴 호흡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간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형태의 작업을 찾고 있었고, 그게 바로 '하우스 오브 카드'였다. - 2013년 뉴욕 타임스 인터뷰 中
카드는 영화 플랫폼의 패권을 뒤바꾼 작품이다. 핀처는 이 전쟁의 선봉장이었고, 그의 진영은 넷플릭스였다. 핀처는 이 역사적인 첫 전투에 자신과 작품을 함께했던 최정예 배우들을 투입했다. 남자 주인공 케빈 스페이시는 ‘세븐’에서, 여자 주인공 로빈 라이트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발굴했고, 둘은 최고의 연기를 발산했다.
핀처의 연출은 비장했고,
카드의 전투는 치열했으며,
넷플릭스는 전쟁에서 승리했다.
시대는 상상 이상으로 나빠져 간다. 인간이란 일찍이 알면서도 늦게야 실행하는 피조물이다. - 괴테
괴테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그는 17세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7년 전쟁을 겪었다. 이 전쟁은 미국 독립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는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의 흥망성쇠를 직접 목격했고, 그 여파로 이어진 유렵의 격변을 모두 겪었다. 그가 살던 시기에 산업 혁명이 태동했고, 제국주의와 식민지 사업이 정착됐다.
혼란한 시대에는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괴테는 모든 질서를 의심했고, 전통에 구애받지 않았다. 결혼에 회의적이었지만 배우자의 신분과 재산, 나이에 구애받지 않았다. 자유로운 사랑을 추구했었지만, 결혼은 단 한 번만 했다. 그를 만든 건 시대의 결핍이었고, 그가 만든 건 통념의 파괴였다.
핀처는 변혁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의 청년기에 뉴할리우드(New Hollywood, American New Wave Cinema) 사조가 완성됐다. 뉴할리우드는 기존 미국 영화들의 관습과 행태에 정면으로 도전한 영화 운동이었다. 이 사조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고, 핀처는 이 모든 과정을 직접 목격했다.
뉴웨이브의 끝자락에 등장한 스필버그의 ‘죠스’와 루카스의 ‘스타워즈’는 뉴할리우드의 정점이자,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양극화를 가져온 시작점이기도 했다. 이후 다시 타성에 젖은 할리우드는 실리콘밸리 스트리밍 플랫폼의 도전에 직면했고, 핀처는 OTT 대변혁의 시대를 이끈 새로운 사조가 됐다.
핀처의 최신작 '맹크(2020)'와 '더 킬러(2023)'에 대한 평단의 호평은 그의 천재성이 여전함을 입증하고 있다. 이제 그는 넷플릭스 시리즈 ‘마인드 헌터(2019)'를 포함, 10년째 OTT 전문 감독으로서 새로운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괴테 역시 파우스트를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다.
괴테와 핀처는 모두 격변의 시대를 살았다.
괴테는 프랑스혁명, 나폴레옹 전쟁 등 유럽 전역을 뒤흔든 대혼란기를 겪었다. 핀처 역시 뉴할리우드 열풍, 영화와 OTT 플랫폼의 각축전 등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목격했다. 이처럼 두 사람 모두 기존 질서와 체제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조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와 행보에는 차이가 있다. 괴테는 좀처럼 변화의 물결에 동화되지 않고 고유의 길을 견지했다. 반면 핀처는 변혁의 한가운데에서 능동적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갔다. 괴테가 관조자였다면, 핀처는 실천가였던 셈이다.
괴테와 핀처는 천재성과 다재다능함을 공유하지만, 변화의 시대에 대한 대응 방식에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그들의 인생 궤적은 평행하면서도 때론 교차하고 때론 갈라지며 겹친다.
길은 시작되었다. 여행을 마저 하라. 근심 걱정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너를 영원히 내동댕이쳐 균형을 잃게 할 뿐. -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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