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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정 Feb 09. 2018

스승은 단수가 아니다.

소설 '영웅문'에서 찾은 사부의 품격

영웅의 스승들을 찾아서

좋은 스승을 찾기 힘든 시대다. 영웅문은 홍콩의 소설가 김용의 3부작 무협 소설로 1부 사조영웅전, 2부 신조협려, 3부 의천도룡기로 완결된 작품이다. 김용의 영웅문은 동서양 수십 개국에 번역되었으며, 국내에서 8백만 부, 대만에서 1천만 부, 중국에서 1억 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인기 작품이다.


시대의 스승을 찾다가 영웅문이 떠올랐다. 1부의 주인공 곽정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스승의 품격과 영웅을 키워낸 가르침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 문단의 큰 별이라 칭송받던 시인의 성추행이 논란이다. 참 스승이 실종된 시대를 개탄만 할 수는 없다. 영웅의 스승은 복수(複數)다.


영웅문은 내 소년시절의 스승이 되어준 책이다.
첫 가르침, 신궁 제베

곽정은 몽골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곽정의 아버지인 곽소천은 수호지 108 영웅의 한 명인 곽성(郭盛)의 후손이다. 곽정이 6살 때, 패잔병이 되어 천막으로 도망 온 제베를 숨겨주고 채찍에 맞아도 입을 열지 않은 일로 둘은 사제의 연을 맺는다. 제베는 실존했던 몽골 제국의 장수로 칭기즈 칸이 가장 신임하는 사준사구의 한 명이다. 본명은 지르고가타이로 서양에는 화살 백작으로 알려져 있다.


제베는 본래 몽골의 타이치우트 부족 출신으로, 칭기즈 칸과 대립하던 타르쿠타이의 부하였다. 쿠이덴 전투에서 칭기즈 칸을 저격하여 목을 맞춰 삼도천 앞까지 보냈지만, 마유주를 마시고 기적적으로 회복한 칭기스 칸에게 패배하여 포로로 붙잡힌다. 칭기즈 칸은 포로임에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제베의 태도를 훌륭히 여겨 회유한다. 곽정은 제베에게 몽골의 병법과 말타기, 활쏘기 등을 전수받으면서 어디서나 당당한 태도를 물려받았다.


제베는 화살이란 뜻으로 칭기즈 칸이 하사한 이름이다.
7인의 스승, 강남칠괴

강남칠괴는 양쯔강 이남 출신으로 이루어진 7명의 무림 고수들이다. 서로 의남매, 의형제 관계다. 모두 성격과 행동이 괴이해서 칠괴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의협심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무인들이다. 그래서 그들을 아는 사람들은 강남칠협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구처기를 만나기 전까지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남송의 무관 단천덕의 계략에 빠져 법화사에서 구처기와의 대결에서 패하고, 곽정을 맡아 가르쳐서 18년 후에 양강과 실력을 겨루기로 한다. 곽정은 강남칠괴에게 처음 무공을 배운다. 각자 문파의 내력이 달라서, 여러 명의 가르침을 한 번에 받는 곽정의 수련은 매우 더뎠다. 비록 초절정의 고수들은 아니었지만, 의리를 중시하는 곽정의 성격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은 강남칠괴다. 기술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인격이다.


의리가 실력이라는 것을 입증한 강남칠괴의 품격.
도사 마옥과 전진칠자

영웅문에는 천하오절이 등장한다. 무림 비급 구음진경을 놓고 화산논검을 벌였던 다섯 명의 초절정 고수들을 일컫는다. 첫 번째 천하오절은 중신통 왕중양, 동사 황약사, 남제 단지흥, 서독 구양봉, 북개 홍칠공이다. 이들의 실력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든데, 중앙에 위치한 왕중양이 그나마 한 수위라고 인정받는다. 훗날 곽정은 천하오절의 북협이 된다.


왕중양은 도교의 갈래인 전진교를 창건하고 전진칠자라고 불리는 7명의 제자를 기른다. 마옥은 칠자 중 가장 도를 깊이 깨달아 왕중양의 진전을 이어받아 2대 교주가 되는 인물이다. 강남칠괴에게 배운 무공이 크게 늘지 않아 상심하던 곽정은 마옥을 만나 내공 심법을 배우고 자신감을 되찾는다. 마옥은 첫눈에 곽정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단 한 번의 팁코칭(?)으로 곽정이 고수가 될 길을 터준 통찰과 배려의 멘토였다. 그는 진짜 도사였다.


정신수양과 양생을 강조한 전진교 스승 왕중양과 전진칠자.
거지들의 왕, 홍칠공

북개(北丐) 홍칠공은 천하오절의 한 명으로 개방의 방주다. 실제 이름은 홍가의 일곱째라는 뜻인 홍칠인데, 강호의 사람들이 그의 뛰어난 의협심에 존경을 표하는 의미로 이름 끝에 공자를 붙여 부르다가 홍칠공이 되었다. 그는 제자 키우기를 매우 싫어했는데, 곽정의 여자 친구 황용의 꾀로 절세 무공인 항룡십팔장을 전수한다.


홍칠공은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스승의 모범이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고, 제자들을 골탕 먹이기도 하지만 그의 마음은 따뜻한 온천수 같다. 홍칠공 같은 스승을 만난 제자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수준에 오를 확률이 높다. 스승의 최고 경지는 본인보다 훌륭한 제자를 키우는 일이다. 비록 거지들의 왕이었지만, 천하를 지팡이 하나로 주유하며, 자신보다 뛰어난 제자들을 키워낸 홍칠공이야말로 시대의 참 스승은 아닐까? 끝.


君子三樂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父母具存 兄弟無故
첫째, 부모님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하며,

仰不傀於天 俯不怍 於人
둘째,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땅에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으며,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셋째, 천하의 영재를 구해 가르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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