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인문학은 인간학(人間學)이다.
1. 인문학 열풍 17년.
밀레니엄과 함께 번지기 시작한 대한민국 인문학 열풍이 어느덧 17년이다. 특히 창조경영의 해답을 찾겠다는 목표로 대한민국 기업들은 인문학에 많은 시간과 자금을 투자했다. 하지만 지난 17년간 삼성과 현대를 뛰어넘는 대기업도, 구글과 페이스북에 견줄만한 스타트업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든 경영자도 탄생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인문학 때문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배운 인문학은 분명히 창조와 혁신의 무수한 이론과 사례를 일러 주었다. 가르침이 잘못된 걸까, 배움이 잘못된 걸까?
우리 기업들이 가장 많이 학습한 인문학의 사례는 15세기 이탈리아, 그리고 피렌체와 르네상스였다. 이 시기 인문학의 이념적 토대는 인문주의(humanism)다. 당시 피렌체에 있던 플라톤 아카데미는 인문주의의 요람이었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던 아카데미의 사상적 요체는 대표적 인문주의자였던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말로 설명된다. 그는 1486년 '인간의 존엄에 관하여'를 발표하여 교황청으로부터 이단자로 몰려 프랑스로 망명했던 인물이다. 그는 신으로부터 인간으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세상 어디에나 삶이 있고, 어디에나 섭리가 있으며, 어디에나 불멸성이 있다.
2. 기업의 인문학은 인간학이다.
우리 기업들은 인문학에서 창조를 배우려고 했다. 그런데 창조는 신의 영역이다. 인문학은 인간(人間)에 관한 학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문학을 언어학, 문학, 역사, 법률, 철학, 고고학, 예술사, 비평, 예술의 이론과 실천, 그리고 인간을 내용으로 하는 학문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창조를 통해 성과를 내자는 한 기업의 캐치프레이즈가 인문학의 본질을 왜곡했고, 가르침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서 17년간 대한민국 기업은 엉뚱한 배움에 시간을 허비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을 외면한 채로.
얼마 전, 한 종편채널에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주제로 강연쇼가 펼쳐졌다. 연사는 방송을 시작하면서 당시 피렌체의 상황이 대한민국의 현재 정세와 너무 흡사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주변의 밀라노, 나폴리, 로마, 베네치아 같은 강대국의 패권 싸움에 휘말렸던 피렌체와 현재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얼핏 흡사해 보인다. 그런데 이념, 제도, 종교, 지형학적 위치도 다를 뿐 아니라 인구 10만 명, 대한민국 면적의 1/1000에 불과한 작은 공국(公國)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한다는 걸까? (피렌체는 분단국가도 아니었다)
3. 인문학이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
그럼에도 인문학은 소중하다. 성과와 전진만 외치는 기업문화에 작은 휴식이 되어주기도 했다. 뒤를 돌아보고 과거에서 미래를 음미하라는 메시지도 알려 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인문학은 기업의 성과창출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인문학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인문학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어떠한 예측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인문학에는 군주만 있고 민주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인문학은 대한민국 기업들에게 인간의 존엄을 가르치지 못했다. 인문학은 광대의 탈을 쓴 도둑이었다.
대한민국 기업들의 갑질 논란이 거세다.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제조업부터 프랜차이즈 서비스업까지 인간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적페는 마치 화수분을 보는 듯하다. 지난 17년, 인문학이 조금만 본질적으로 행동했다면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떨어진 학문의 인기를 기업이라는 시장에서 채우려 했던 절박함은 이해한다. 하지만 학문의 본질은 학자의 행동에서 느껴져야 온당한 가르침이 되는 법이다. 돈 버는 인문학 강사보다 존경받는 인문학자가 많아지는 일이 인문학의 부흥 아닐까?
4. 책과 강의를 버리고 움직여라. 그리고...
앞으로 10년, 경영의 화두는 '생존'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저성장 모드로 돌입했다. 이제 기업의 교육철학도 바뀌어야 한다. 앉아서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 일은 생존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중국 유럽국제경영대학원 교수 겸 중국혁신센터 소장인 조지 입(George Yip)은 이렇게 말했다. 행동이 생각을 만든다. 그 반대가 아니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위해선, 일단 행동을 하라, 생각은 그다음이다. 20년 불황에도 10% 이상 성장한 일본의 불사조 기업을 살펴보면 조지 입 교수의 통찰은 매우 정확하다.
Action shapes idea,
not the other way around.
저성장 시대에는 행동하는 기업문화를 디자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워야 할 철학이 있다. 바로 인간성의 회복이다. 직원과 파트너가 존엄해져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인간성이 회복되고, 행동하는 기업문화가 만들어진다. 온전한 인간으로 대접받는 직원과 파트너만이 고객을 인간으로 대접할 수 있다. 운전기사를 폭행하고, 여직원을 성추행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문화 속에서 인간성은 죽는다. 죽은 것은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인문학의 본질로 돌아가 인간학을 행동으로 배워야 할 때다. 다음 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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