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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 Nov 10. 2017

책을 많이 읽으면 훌륭하다?

심금을 울리는 책과 사람 이야기

1. 훌륭한 책의 기준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이 말처럼 우리 인식을 지배하는 문장도 없다. 이 말은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신 도마 안중근 의사가 중국 고전에 나오는 '일일독서천재보(一日讀書千載寶 )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를 재구성한 글로, 1910년 3월 중국 여순감옥에서 독립을 위한 실천운동에 참여하면서도 절대로 학문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으로 남긴 글이다.

하루의 독서는 천년의 보배요,
백 년을 물질만 탐내는 일은 티끌과 같다.


안중근 선생이 강조한 것은 학문에 정진하라는 말이지 책만 읽으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107년 전에는 책이 학문을 배우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기에, 책이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언급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물론 책은 지금도 중요하다. 그런데 누구도 어떤 책을 얼마나 읽어야 훌륭해지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으니 스스로 알아가는 수밖에.


책질은 자랑질이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훌륭하다는 말에는 2가지 어폐가 있다. 일단 훌륭한 사람에 대한 기준이 없다. 그리고 훌륭해지는 책의 구분이 없다. 그럼 우선 훌륭하다는 말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영어로는 Excellence라고 쓴다. 뛰어남, 또는 탁월함으로 번역되는 엑설런스는 3단어가 결합된 합성어다. EX+CELL+ENCE인데, EX는 넘다는 뜻이고, CELL은 벽을 뜻하고, ENCE는 상태를 뜻하는 어미다.

훌륭함이란 벽을 뛰어넘은 상태다.


훌륭한 책이 훌륭한 사람을 만든다. 훌륭한 책은 어떤 책인가? 고전인가? 아니면 베스트셀러인가? 그것도 아니면 경전과 교과서가 훌륭한 책일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훌륭함의 정의로 돌아가 살펴보면, 훌륭한 책은 학문을 뛰어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나는 책의 양에 집착하는 일은 학문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한다. 쓸데없는 책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훌륭한 책이란 나를 성장시켜주는 책이다. 그런 책을 만나기 위해서는 꾸준히 책을 찾아다녀야 한다. 그렇다고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나만의 기준과 원칙부터 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책은 어떤 분야의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서 한 달에 책 1권은 읽자던가, 1년에 40권은 읽자는 류의 양적 구호는 큰 가치가 없다.


2. 학문이 훌륭한 사람

퇴계 이황 (1502 ~ 1571)

그럼 학문이 훌륭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성공한 사람일까? 권력을 잡은 사람일까? 아니면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한 사람일까? 그것도 아니면 책을 많이 쓴 사람일까? 훌륭함이란 상대평가다. 사람의 훌륭함은 사람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기록하는 것이다. 훌륭함이란 완벽함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공과(功過)가 있다. 모든 흔적이 공이 될 수 없고, 작은 잘못 때문에 부당한 평가를 받아서도 안된다. 퇴계 이황 선생님은 시대가 인정하는 학문적 성취를 이룬 사람이다.

황이 고개를 숙입니다.


퇴계의 학문적 완성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는 젊은 학자 기대승과의 사단칠정 논쟁이다. 퇴계는 스물여섯이나 아래인 신출내기 후학을 무시하지 않고, 늘 존중하는 마음으로 논쟁에 임했다. 조선의 역사를 통해 영남을 배경으로 퇴계학파를 형성하고, 일본 유학의 기몬학파 및 구마모토 학파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개화기 중국의 정신적 지도자들에게도 크게 존경을 받아, 동양 3국의 도의 철학(道義哲學)을 건설했다고 평가받는 퇴계의 저 한마디가 바로 훌륭함의 본질 아닐까?


Michael Faraday (1791 ~ 1867)

마이클 패러데이는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정규 교육도 받지 못한 14살 때 책 제본공이 되었다. 어느 날, 왕립연구소의 인기 강사였던 험프리 데이비의 강연티켓을 선물 받은 페러데이는 강연에 크게 감명받은 나머지, 노트한 내용을 제본해서 데이비에게 보냈고, 이를 계기로 왕립연구소의 사환이 된다. 이후 왕립협회의 조수로 고용된 페러데이는 벤젠을 발견했고, 양극, 음극, 전극, 이온과 같이 널리 쓰이는 전문 용어들을 처음으로 도입하는 등 역사적으로 훌륭한 과학자로 기록된다.


저는 이 강연의 마지막 말로서 여러분의 생명이 양초처럼 오래 계속되어 이웃을 위한 밝은 빛으로 빛나고, 여러분의 모든 행동이 양초의 불꽃과 같은 아름다움을 나타내며, 여러분이 인류의 복지를 위한 의무를 수행하는 데 전 생명을 바쳐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마이클 패러데이, <양초 한 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 中


마이클 패러데이가 지금도 존경받는 이유는 과학적 성과와 전기기술역학의 토대를 만든 업적 때문만은 아니다. 패러데이의 가장 훌륭한 점은 겸손한 성품이다. 패러데이는 늘 포기할 각오로 실험에 임했고, 명예를 주겠다는 제안을 철저히 거부했다. 대신 패러데이는 과학 대중화에 진력을 다했다. 1826년 그가 만든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강연회'는 지금도 런던 왕립 협회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영국의 20파운드권 지폐에는 이 강연을 하고 있는 패러데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역사에 이름을 올려야 할지 결정해야 할 때가 온다 - 정채산


3. 가벼운 책의 증거

내 책의 디지털 장례식을 원한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몇 권의 책을 쓴 경험이 있다. 순전히 운이 좋아서 저자가 되었고, 결과도 그리 좋지 못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책을 리콜해서 죄다 불태우고 싶다, 진심이다. 아무튼, 내 책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책의 분량과 훌륭함의 상관관계를 증명하고 싶어서다. 보통 1권의 책은 300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제작된다. 1페이지에 약 650자 정도가 담긴다고 보면, 우리는 1권의 책을 읽을 때 약 20만 자를 읽는다고 볼 수 있다. 과연 20만 글자 전부가 도움이 될까?


2008년 마지막으로 쓴 책은 초고를 쓰는데 딱 1주일이 걸렸다. 영월 주천에 고택을 빌려 밤마다 혼자 무서움에 벌벌 떨면서 300페이지 분량으로 완성했다. 이후 두세 번의 퇴고를 거쳐 책은 출판됐다. 그리고 출간과 함께 저자 사인회라는 서점 투어를 시작했다. 글 쓰는 사람이 말해야 하는 시간이다. 강연을 위해 300페이지 분량의 책을 60분짜리 장표로 요약한다. 컴퓨터에 원고를 띄워 놓고, 검색창을 뒤져 괜찮은 이미지를 찾아서 50페이지짜리 장표를 만드는 데는 3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60분짜리 강연의 반응은 좋았다. 사인회를 위해 쌓아둔 책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그렇게 그날 약 100권의 책을 팔아치웠다. 다음 날부터 책날개 부분 저자 약력에 적어둔 이메일 주소로 독자들의 메일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메일의 시작은 거의 다 '책 잘 읽었다'로 시작한다. 좋았던 부분은 개인마다 달랐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메일의 마지막 부분이다. 예외 없이, 사인회에서 강연했던 파일을 보내줄 수 없느냐는 부탁이다. 아니 300페이지짜리 책이 있는데 왜 50페이지짜리 장표가 왜 필요하지?


훌륭한 책은 통찰의 눈이다.

얼마 전, 책을 출간하신 멘토님과 대화를 하다가 요즘 실용서적은 1쇄를 1,000권만 찍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 1쇄가 모두 팔리면 1만 5천 원 책값을 기준으로 약 150만 원의 인쇄를 받게 된다. 강연 몇 번만 하면 벌 수 있는 액수다. 수십 년의 경험을 수년에 걸쳐 고민하고 수개월에 걸쳐 글로 옮긴 결과가 책이다. 그런데 책에 쏟은 엄청난 노력은 말 몇 마디의 강연보다 값어치가 적게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저자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렇게 책은 강연을 위한 판촉물로 전락하곤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모두 거문고가 있다.
심금(心琴)은 통찰에만 반응한다.


강연이 필요 없는 책이 훌륭한 책이다. 쓸데없이 책의 분량을 늘리는 일은 저자에게도 독자에게도 별로 득이 되지 못한다. 강연으로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쓰는 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 독자의 시간을 아껴주는 배려심은 갖자는 말이다. 며칠 전, 저자 강연회에서 노교수에게 들은 한 마디는 아직도 가슴을 울린다. 심금은 마음의 거문고라는 뜻인데, 마음의 거문고는 통찰이 있는 말과 글에만 운다고 했다. 당신의 책은 당신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가? 심금을 울리는 책 많이 읽고, 많이 쓰시기를.


읽기는 쓰기의 첫 단계다.
함께 책을 읽고, 글도 함께 써보는 기회,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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