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와 위배에 관한 이야기
1. 최고의 전략가는 누구?
전략(戰略, Strategy)은 군사용어다. 전쟁을 전반적으로 이끌어 가는 방법이나 책략을 뜻하는 말이지만, 시대의 변천에 따라 기업전략 등 비군사적 분야에도 응용되고 있다. 특히 경영학에서 전략의 개념을 많이 차용해서 쓰는데 전략기획, 기획조정, SWOT 분석부터 블루오션 전략 등이 모두 여기에 기인한다. 경영을 전쟁에 비유하는 관습은 전략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사제갈 주생중달(死諸葛走生仲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쳤다는 고사를 보면, 전략의 본좌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결국 전략이란 싸워서 이기는 방법인데,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이겼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전략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즉,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야말로 최고의 전략이다. 전쟁터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적을 이길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한 제갈공명은 최고의 전략가였다, 죽어서도.
그런데 제갈량의 고사는 정사(正史)에 기록된 사실을 기초로 나관중이 재가공한 이야기다. 팩트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는 제갈량보다 나관중이 더 훌륭한 전략가라고 생각한다. 제갈량의 고사는 기껏해야 수만 명의 병사를 잠시 속였지만, 나관중은 약 650년 동안 무려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속였기 때문이다. 그는 술을 얻어먹으려고 삼국지연의를 쓰기 시작한 당대의 스토리텔러였다.
2. 그럼 콘셉트는 뭐에여?
경영전략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단어가 콘셉트다. 사실 둘 다 사고(思考)의 방식에 관한 용어들인데 때와 장소에 따라 사용법이 다를 뿐이다. 전략이 X축이라면 콘셉트는 Y축쯤에 위치한 개념으로 군사용어였던 전략전술이 경영학으로 넘어오면서 진화 발전되어 정착된 용어로 추정된다. 콘셉트는 생각의 스타일이자, 대상의 정체성을 일컬을 때 주로 쓰게 되는데, 전략전술이 움직이는 전쟁(배경)을 대상으로 설정되는 데 반해, 콘셉트는 멈춰있는 전장(개체)을 대상으로 설계된다. 생각의 종과 횡이라고나 할까? (콘셉트는 어렵다, 다음 기회에 제대로 글을 써보도록 하자)
3. 의도, 위배, 기운.
7년 전 스승에게 배운 세 단어는 나에게 전략 수립의 기초를 만들어 주었다. 모든 일은 무엇을 하려는 의도(意圖)가 있어야 확률이 올라가는 법인데, 의도는 나의 뜻이다. 나의 뜻인 의도가 세상의 뜻과 위배(違背)되지 않아야 비로소 기운(氣運)이 나에게 돌아온다. 전략이란 내가 세상을 향해 보내는 생각이지, 세상이 나에게 보내는 기운은 아니다. 즉, 성공한 전략은 나와 세상의 생각이 공명하는 순간이며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만드는 출발점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 개념을 좀 쉽게 3단계로 변형해서 신사업 전략에 적용하고 있다. 입지(立志)-구인(求人)-득전(得錢)의 순서인데, 입지는 뜻을 세우고 일을 만드는 단계이며, 구인은 그 뜻을 받아 일을 할 사람을 구하는 단계이고, 마지막 득전은 돈을 버는 단계이다. 이를 손자병법의 도천지장법(道天地將法)에 대입하면, 도는 뜻을 정하는 단계이고, 천은 때를 정하는 단계, 지는 시장을 정하는 단계, 장은 사람을 정하는 단계, 법은 시스템을 정하는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좋은 전략은 단계의 맥락이 맞아야 한다.
[작기큰경 생각] 운칠기삼이란 행운이 7할, 기운이 3할이란 뜻이 아니다. 운칠기삼은 3할의 기운으로 7할의 운을 붙잡는 전략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결국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3할의 기운을 잘 운용하는 것뿐이다. 나머지는 세상의 운이 결정한다. 전략은 계산하는 일이 아니라, 극복하는 일이다.
4. 좋은 전략의 정의.
한 남자가 있었다. 상고를 나왔지만, 검정고시 출신으로 판사가 된다. 고향으로 내려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큰돈을 번다. 그리고 억울한 국가보안법 피해자를 변호하다가 인권운동에 뛰어들고, 온갖 역경을 딛고 대통령이 된다. 그의 이름은 노무현이다. 노무현은 대한민국을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전략을 품었던 사람이다. 그의 전략은 크게 3단계로 설계되었다.
좋은 전략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대망이다. 특정한 몇몇의 이익을 위한 야망이 아니다. 그래서 난 제갈공명이 꿈꾼 천하통일보다 노무현의 민주주의 3단계론이 더 위대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민주주의 1단계 과제는 반독재투쟁이고, 민주주의 2단계 과제는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 구축과 지역구도의 통합이며, 마지막 3단계는 정책을 중심으로 토론과 타협이 일상화되고, 연정과 연합정부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대화와 타협의 세상이다. 이제 곧 이루어질 것이다, 촛불처럼.
심리학 이론 중에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것이 있다. 포도가 높이 달려 있어 먹을 수 없게 된 여우는 돌아서면서 “어차피 시어서 먹을 수도 없는 데 뭘”이라고 말한다. 어떤 걸 원하지만 그걸 얻을 수 없으면 비난을 함으로써 심리적 부조화를 줄이려고 하는 자기합리화의 과정이 인지부조화다. 우리가 세운 전략이 인지부조화가 아닌지 의심해보자. 겉으로는 세상을 위한다고 적어 놓고, 속으로는 나만 위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못되면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고 탓하지는 않는지. 끝.
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어...
(이런 인지부조화)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브런치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만나면 놀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