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사재기와 조작된 마케팅
음악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제26조(음반 등의 유통질서 확립 및 지원) ① 제2조 제8호부터 제11호까지의 규정에 따른 영업을 영위하는 자 또는 음반 등의 「저작권법」에 따른 저작자 및 저작인접권자(이하 "음반·음악영상물 관련 업자 등"이라 한다)는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음반·음악영상물 관련 업자 등이 제작·수입 또는 유통하는 음반 등의 판매량을 올릴 목적으로 해당 음반 등을 부당하게 구입하거나 관련된 자로 하여금 부당하게 구입하게 하는 행위
평등하지 않은 기회
음원 사재기의 진실이 밝혀졌다. 마케팅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오랜 부조리였다. 음원 사재기는 2010년대부터 시작됐다. 2012년 한 연예방송에서 공식적으로 문제가 제기됐고, 2013년 4대 대형 매니지먼트 회사들의 음원 사재기 중개인을 고발했으나 불기소 처분됐다. 2015년 한 종합편성 채널에서 다시 보도했지만, 불신만 키웠을 뿐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진 못했다. 부조리는 10년 동안 계속됐다.
2016년 3월, 음악산업 진흥법이 개정되면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음원 사재기 처벌이 가능해졌다. 이후 2018년 4월, 한 가수의 음원 사재기 사건이 불거졌다. 의혹은 사실이었다. 1억을 내면 ID 1만 개를 가동, 해당 음원의 스트리밍을 인공적으로 조작해서 차트 순위를 급상승시킨다. 이런 제안은 음원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됐고, 신인 가수들에겐 달콤한 유혹이었다.
해당 부서인 문화관광체육부는 조사를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음원 사이트 상위권의 절반 가까이가 음원 사재기의 의심을 받았다. 음악은 취향이다. 취향은 개성이다. 취향이 모여 문화가 된다. 음원 사재기는 인공 취향을 만든다. 순위 조작도 큰 문제지만, 대중의 취향이 조작되는 건 재앙이다. 음원만의 문제도 아니다. 책도 문제고,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런 현실에서 음악의 기회는 평등할 수 없다.
공정하지 않은 과정
음원 사재기는 공정한 마케팅이 아니다. 일부 홍보 대행사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마케팅의 룰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원 마케팅의 룰은 음원 사이트의 차트가 만든다. 차트의 음원 순위는 가수와 음악의 가치를 만든다. 그 가치가 높아질수록 수익도 높아진다. 더 높은 수익을 위해 음원 사재기라는 마케팅 툴에 큰 비용을 투자하자는 대의명분이 생긴다. 지금 논란의 본질이다.
대중은 상위권을 좋아한다. 내 취향의 음악을 찾는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음원 사이트는 상위권의 100개 정도의 순위를 제공한다. 차트는 가장 클릭률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플레이 리스트에 쉽게 추가할 수 있게 설계된다. 이렇게 추가된 재생목록은 음악을 계속 틀어야 하는 매장 등에서 꾸준히 스트리밍 횟수를 보장받는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재기 음원이 포함된다.
음원 차트는 도박판과 같다. 돈 놓고 돈 먹기, 판 돈이 많은 사람이 큰돈을 벌 기회가 높다. 타짜는 같은 판에 앉은 내 편에게 판 돈을 몰아준다. 마찬가지로 음원 사재기에 투자된 비용은 해당 음원의 로열티 수익으로 적립된다. 그 수익은 음원 사이트와 저작권자가 배분한다. 음원 사이트에겐 일거양득이다. 즉, 음원 차트는 음원 사이트의 수익을 위해 정밀하게 설계된 공정하지 못한 마케팅 룰이다.
정의롭지 못한 결과
음원 사재기는 사라질까? 사법 처리로 해결할 수 있을까? 음원 차트를 없애면 음원 사재기도 없어질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과 사법당국, 해당 정부부처의 역학관계 때문이 아니다. 음악은 취향이고, 취향이 모이면 문화가 되고, 잘못 형성된 문화는 고치기 힘든 습관으로 고착되고, 고착된 습관은 집단 최면처럼 대중의 선악 개념을 무력화시킨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조작이 가능한 이유다.
우리가 인공 취향에 빠져 사는 동안, 좋은 음악의 기준은 음원의 순위가 되었다. 이미 음원 차트는 인공지능 매크로들이 경쟁하는 난전이다. 기계가 음악을 듣고 순위가 결정되는 차가운 전쟁터. 기계와 인간의 대결은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시작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우리 귓속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더 발전할 것이고, 그 기술을 활용한 음원 사재기 이상의 마케팅도 등장할 것이다.
이미 우리의 취향은 음원 사이트, 사재기 마케팅 그리고 인공지능에게 점령당했다. 총칼로 싸울 수 없는 전쟁이다. 이 전쟁의 무기는 좋은 습관이다. 작은 씨앗 하나를 모든 대중에게 뿌리내리는 싸움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싸움이고, 아마 쉽게 승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음원 전쟁의 선봉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서야 한다. 싫든 좋든 음악인들이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부디 좋은 음악이 승리하기를.
대중에게 기대지 말자.
대중의 귀는 오래전에 멀었다.
싸움이 싫다면 음악을 멈추고 떠나면 된다.
어차피 정의라는 개념도 사라진 땅이 아닌가? 끝.
루크, 시도란 없어.
하거나 안 하거나 둘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