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生角 Idea

허기도 용기도 채워드립니다.

by 생각
허기도 용기도 채워드립니다.


이 글은 머리말이다. 책의 머리말이 꼭 책 첫머리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뒤집어 보았다. 세상에 원래 그런 것은 없다. 세상의 모든 규칙은 시작과 끝이 있다. 생각은 규칙을 만드는 작업이다. 시작한 것을 끝낼 수 있어야 좋은 생각이다. 생각은 누구나 하지만, 좋은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좋은 생각은 값이 있고, 가치가 높다.


어느 날, 자동차왕이라 불렸던 헨리 포드의 공장 발전기가 고장이 났다. 공장 가동이 중단되었고, 수리공들은 원인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헨리 포드는 발전기를 제작한 찰리 스타인메츠를 초빙했다. 스타인메츠가 몇 시간 동안 모터를 이곳저곳 두드리고 스위치를 올리자 발전기는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헨리 포드는 고마운 마음에 사례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얼마든 좋으니 청구서를 보내라고.


며칠 후 도착한 청구서에는 1만 달러가 적혀있었다. 이 금액은 모터를 두들기며 몇 시간 일한 것에 비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 포드는 세부내역을 알려달라고 답장을 보냈다. 며칠 후, 스타인메츠는 다시 청구서를 보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모터를 두들기며 일한 공임 10달러, 어디를 두드려야 할지 알아내는 데 들어간 경험 9,990달러, 합계 10,000달러. 결국 헨리 포드는 수긍하고 1만 달러를 지불했다.


생각은 한글이다. 한자가 아니다. 이 챕터의 제목에는 생각의 한자가 적혀 있다. 생각은 살아 있는 뿔이라는 다른 의미도 있다. 생각은 우리 머릿속에서 살아서 솟는 뿔이다. 그럴듯한 정의다. 그런데 생각은 한글이다, 한자가 아니다. 누가 이렇게 정한 걸까?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가 주장하고 많은 사람이 인정하면 의미는 바뀐다.


죽여주는 생각은 역사를 바꾼다. 나관중은 600년 전 중국의 소금 장사꾼이었다. 그는 찻집을 드나들며 허송세월 하던 백수였다. 그러던 그가 즐겨 듣던 삼국희곡(三國喜曲)의 내용을 외워서 소설로 집필한다. 이 소설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연의>다. 소설 <삼국지>는 나관중의 취미로 탄생했다. 우리가 읽은 삼국지는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다. 픽션이다. 정확히는 팩션이다.


원래 <삼국지>는 1,700여 년 전 진나라의 관리였던 진수가 집필한 중국 삼국시대의 정사였다. 진수는 촉나라의 관리였었지만 천하를 통일한 사마염이 세운 진나라의 관리가 되었다. 그는 위나라로부터 선양을 받은 진나라의 신하였기 때문에 위나라의 관점에서 삼국지를 기술했다. 그래서 정사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손권, 제갈량 등이 아니라 진나라의 <사마염>이다.


그런데 진수의 삼국지가 출간된 1,100년 이후 나관중이라는 작가가 기존의 모든 것을 바꾼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의 전혀 다른 생각이 사람들의 역사인식을 바꾼다. 그는 촉한 정통론을 바탕으로 역사의 프레임을 송두리째 각색했다. 유비, 관우, 장비를 주인공을 세우고 도원결의라는 드라마를 결합시킨다. 나관중은 촉한 정통론을 기반으로 구전되던 야사를 결합해서 전혀 다른 역사인식을 만들어낸다.



죽여주는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죽여주는 생각이란 뭘까? 돈을 받을 수 있는 생각이다. 가벼운 생각이 아니다. 죽여주는 생각은 고객의 지갑에서 저절로 돈이 나오게 만든다. 아이디어를 식사 한 끼 정도로 생각하는 대한민국에서 오직 ‘생각’만으로 돈을 받는 일. 생각만 해도 죽여주는 일이다. 생각식당은 그런 절심함에서 태어났다. 지금 나는 생각으로 돈을 벌고 있다. 생각식당의 단골도 꽤 많이 생겼다.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 절실함을 만나야 비로소 실체가 된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Titanic)>은 2009년까지 무려 12년이나 세계 1위 흥행 영화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12년 만에 <타이타닉>의 아성을 무너뜨린 영화가 탄생한다. 그 역시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3D 영화 <아바타(Avatar)>다. 자신이 자신의 기록을 깼다. 어떻게 저 사람은 저런 일을 두 번씩이나 할 수 있었을까? 죽여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타이타닉이 끝나자마자 아바타의 시놉시스를 완성했다. 그리고 12년을 준비했다. 왜 12년이나 걸렸을까? 그의 생각을 기술이 따라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2년을 기다리며 <아바타>의 세계관을 창조했다. 행성 판도라, 나비족, 영혼의 나무, 여신 에이와, 그리고 3D 혁명까지. 이 모든 동력의 시작은 라이벌이었다. 카메론은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와 경쟁했다. 둘의 경쟁은 영화의 역사를 바꾼다.


매튜 맥커너히(Matthew McConaughey)와 크리스찬 베일(Christian Bale)이 주연한 2002년 영화 <레인 오브 파이어(Reign of fire)>를 보면 카메론이 왜 루카스와 경쟁을 했는지를 알 수 있다. 2084년, 핵전쟁으로 파괴된 런던에서 고대의 거대 생명체가 발견된다. 생명체는 도시 전체를 뒤덮을 만큼 거대한 익룡이었다.


이에 맞서는 인간은 나약하기만 했다. 극 중에서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은 연극을 공연한다. 연극 제목은 <스타워즈(Star Wars)>다. 지금부터 백 년 후, 사람들은 <타이타닉>과 <스타워즈> 중 어떤 영화를 기억할까? 영화는 <스타워즈>를 선택했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는 이 지점에서 시작됐던 게 아닐까? 백 년 후에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절실함. 나는 그 생각이 아바타를 탄생시켰다고 믿는다.


생각에는 예술가의 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값을 받을 수 있다. 예술혼이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표면적 외형을 추구하는 정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가치를 추구하는 예술에 대한 열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수련하는 도인이다. 나의 삶은 유한하지만, 내가 남긴 예술은 무한하다는 믿음이 바로 예술혼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실재한다. 당신의 마음속에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가사 中


나는 주인공의 운명이 아니다. 나의 직업은 프로듀서다. 프로듀서는 그림자다. 그림자는 주인공을 꿈꾸지 않는다. 그림자는 박수받는 직업이 아니다. 그림자는 주인공에게 박수받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캐머런 매킨토시, 그는 세계 4대 뮤지컬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이다. 1946년생인 매킨토시는 20세의 나이에 뮤지컬 프로듀서로 데뷔했다. 흔히 세계 4대 뮤지컬이라 불리는 <캐츠>,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은 모두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다. 그는 현재 영국에 7개의 극장을 소유하고 있다.


매킨토시는 수백 편의 뮤지컬을 제작했고, 그중 단 4편(4대 뮤지컬)만으로 지금까지 10조 원 가까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1995년 문화수출의 공로를 인정받아 퀸즈 어워드를 수상하였고, 1996년에는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하지만 매킨토시가 위대한 이유는 단지 돈과 명예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뮤지컬의 기존 질서를 바꾼 사람이다.



1970년대, 당시 영국 사람들은 뮤지컬을 상당히 가벼운 예술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나라 영국은 연극이라는 전통예술에 심취해 있었고, 새롭게 등장한 뮤지컬을 예술의 영역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인식은 영국 출신의 뮤지컬 작곡가들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후 1981년까지 영국 뮤지컬은 길고 긴 휴경(休耕)기에 접어든다.


이런 뮤지컬 침체기에 웨버와 매킨토시가 만난다. 둘의 만남은 뮤지컬 <캣츠>의 성공신화로 이어진다. 이후 세계 뮤지컬의 본좌라 불리는 미국 브로드웨이는 영국 뮤지컬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영국 뮤지컬은 브로드웨이를 거쳐 전 세계 140여 개 국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영국 뮤지컬의 황금시대가 열린 것이다. 무려 30년 넘게 이어진 뮤지컬의 르네상스였다.


매킨토시는 이러한 성공의 원인을 코크란(Cochran)의 자서전 ‘흥행사는 위를 본다(A Showman Looks On)’를 통해 설명한다. 코크란은 그의 자서전에서 젊고 야망 있는 제작자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절대로 관객을 위해 쇼를 올리지 마라. 오히려 항상 너 자신을 위해 올리되 최선을 다해서 제작해라. 그러면 아마 관객이 보러 올 것이다.


이 말은 매킨토시가 공연을 만드는 좌우명이다. 그래서 나도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생각은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 손님의 심장을 터지게 만드는 생각만을 최선을 다해 만든다. 그러면 손님들이 파도처럼 몰려올 것이라고 믿는다. 생각식당에서 나는 목숨을 걸고 생각을 만든다.




영화는 어른이 아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영화를 만든다. 나는 영화가 생각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을 가장 잘 펼쳐놓을 수 있는 결정체. 나는 스타워즈를 보며 영화를 꿈꿨다. 5살 어린아이의 눈에 처음 들어온 스타워즈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스타워즈를 넘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이 꿈을 놓은 적이 없다. 영화는 내가 생각을 펼치는 캔버스이자 전쟁터이고, 내가 아이의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비상구다.


1975년, 세계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했다. 당시 신예였던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가 연출한 <죠스(Jaws)>. 죠스는 미국 최초로 1억 달러 이상의 흥행수입을 올린다. 이후 블록버스터는 북미 지역에서 연 1억 달러 이상, 세계적으로는 4억 달러 이상의 매표 매출을 올린 영화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된다. 원래 블록버스터는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폭격한 4.5톤짜리 폭탄의 이름이었다.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죠스다. 하지만 블록버스터라는 용어를 정착시킨 작품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Star Wars)>다. 죠스보다 2년 늦게 개봉한 스타워즈는 죠스를 능가하는 1억 8천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세계 영화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죠스와 스타워즈 이후, 미국의 메이저 제작사들은 블록버스터 제작에 앞다투어 뛰어든다. 이런 영화자본의 흐름을 타고 루카스는 1980년과 1983년에 연이어 스타워즈 시리즈 2편을 세상에 선보인다. 최초의 블록버스터 시리즈 영화, <스타워즈 오리지널 3부작>은 그렇게 탄생했다.


스타워즈 시리즈 이후 15년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황금기였다. 지금 극장에서 보는 거의 모든 상업영화의 포맷이 이 시기에 완성된다. 그리고 1997년 겨울 나의 24번째 생일날, 이 황금기의 종결자가 탄생한다. 바로 제임스 캐머런의 대작 <타이타닉>이다. 타이타닉은 그 어떤 블록버스터와도 비교를 거부했다. 제작비와 매출의 규모도 기존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후 12년간 타이타닉의 영광은 21세기 新블록버스터의 시초라 불리는 영화 <아바타>가 등장할 때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마블과 어벤저스의 시대다. 어벤저스 시리즈가 영화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생각의 경쟁은 돌고 돈다. 이기고 지고 다시 이기고. 하지만 피 흘리는 사람은 없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 뿐이다. 1990년 3월 26일, 80세의 동양인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를 양 옆에서 부축하고 있는 두 사람은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미국 블록버스터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는 거장들이 저렇게 극진하게 모시는 사람. 그는 도대체 누굴까? 그의 이름은 구로사와 아키라, 일본의 위대한 영화감독이다.


그는 '일본 영화계의 천황'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그는 일본과 서구의 양식을 융합한 천재였다. 그는 가부키 등 일본의 전통예술을 영화를 통해 서구에 널리 알렸다. 대표작은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 <산다는 것>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구로사와 감독 특유의 화면 속의 운동감, 회화적인 색채감과 뛰어난 구조화 또한 적절한 몽타주, 롱테이크를 통해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이는 기법 등이 미국의 영화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구로사와의 영화에 영향을 받은 미국의 영화감독은 루카스와 스필버그뿐만이 아니다. 대부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택시 드라이버의 마틴 스콜세지, 명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이 그를 스승으로 모신다. 마틴 스콜세지의 경우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에 화가로 출연할 정도로 열렬한 팬이었다.


그럼 구로사와 아키라의 스승은 누굴까? 1910년에 태어난 구로사와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 러시아 문학을 탐닉했다. 이후 미국 서부영화의 일인자라고 불리는 존 포드(John Ford) 감독의 영향으로 <밑바닥> 등의 문예영화와 <7인의 사무라이> 같은 시대극을 연출한다. 러시아와 미국의 영향으로 거장에 오른 동양인 감독, 그리고 이 동양인 감독의 영향을 받아 거장이 된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 동서양의 문화가 마찰 하나 없이 섞이고, 다시 태어난다. 이처럼 영화의 생각에는 국경이 없다. 그리고 좌우도 없다. 생각은 죽는 순간 사라진다. 하지만 영화는 영원히 남는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메멘토 모리’를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이는 ‘당신이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당신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를 담은 의식이다. 나의 생각도 이와 같다. 나는 어떻게 살지 보다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하며 산다. 모두가 살기 위해 노력할 때,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생각식당은 나의 생업이다. 목숨을 걸고 생각을 만드는 작업장이다.


사람들이 묻는다. 생각 값을 받는 일은 사기 아니냐고. 맞다, 사기다. 그럼 모든 사기는 나쁜 것일까? 좋은 사기도 있지 않을까? 생각은 설득하는 일이 아니다, 증명하는 일이 아니다. 나에게 생각은 에너지다. 그래서 유한하고 값어치가 있다.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 값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시작했을 뿐이다. 지금까지 생각식당에는 300분의 손님이 다녀가셨다. 모두 가격을 지불했다. 손님들이 지불한 가격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면 사업이 된다. 그렇게 난 생각으로 돈을 번다.


아침이 끝나고 사람들이 점심을 서두를 무렵,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메뉴는 세 가지뿐. 하지만 마음대로 질문하면 가능한 대답해주는 게 나의 영업 방침이다. 영업시간은 정오 12시부터 저녁 8시 정도까지. 사람들은 이곳을 생각식당이라고 부른다. 손님이 오냐고? 그게 꽤 많이 오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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