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顧客 Customer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by 생각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영화 ‘택시운전사’의 대사 中


고객은 나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다. 고객이 있어야 돈고, 돈을 벌어야 먹고살 수 있다. 고객은 누군가에게 왕일 수도, 목숨일 수도, 종교일 수도 있다. 난 고객의 본질은 손님이라고 생각한다. 손님은 잠시 들르는 사람이다. 한정된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람이다. 좋은 고객을 만났다고 기뻐할 필요도, 헤어졌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결국 잠시 들렀다가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손님이니까.


손님과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주 만날 수는 있다. 고객관계의 본질은 지속성이다. 고객과 가족처럼 지낼 수는 있지만 피를 나눈 식구가 될 수는 없다. 고객관계는 기본적으로 상거래다. 우리는 가족과의 거래를 고객과의 거래처럼 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객은 가족이 될 수 없다. 고객은 손님이다. 손님이 자주 오면 단골이 된다.


고객에도 종류가 있고, 등급이 있다. 단골이 있으면 뜨내기도 있고, 열성고객이 있으면 불만고객도 있다. 고객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모든 고객에게 집중할 필요는 없다. 모든 고객이 이익을 안겨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객관계는 분류를 통해 집중도를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고객과 더 오래 만날 수 있다. 더 좋은 고객은 더 큰 이익을 주는 고객이다.


고객은 나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주는지로 구분된다. 주식회사 팀버튼은 2006년 내가 설립한 마케팅 회사다. 보통 마케팅 회사들은 외부 고객을 대상으로 일을 한다. 팀버튼은 내부 고객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는 회사다. 지금까지 약 15년 동안 국내외 큰 규모의 기업 1,500여 곳의 조직문화 활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큰 기업들은 직원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종류의 내부 마케팅을 진행한다. 복지혜택, 직원 교육, 해외연수 등이 대표적인 활동이다. 팀버튼은 200명이 넘는 예술가들과 함께 대기업 직원들의 팀워크와 기업문화를 유연하게 바꾸는 70여 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카펠라, 랩, 타악, 뮤지컬, 연극, 댄스, 탭댄스 등의 예술을 조직 활성화 프로그램으로 사업화했다.



2015년의 일이다. 팀버튼과 지난 10년 동안 거래한 고객사의 비중이 궁금해졌다. 세금계산서를 기준으로 정리해보니 약 1,500곳의 고객사와 일해왔다. 우리 규모의 회사가 관리하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였다. 집중도를 달리하기 위해 고객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우선 고객을 매출 비중으로 구분했다.


분석을 하기 전에 기준부터 만들어야 했다. 최초 거래 후, 3년 동안 거래가 없는 고객은 제외했다. 다시 방문할 확률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 50%의 고객명단이 정리됐다. 나머지 50%의 고객을 매출 금액 순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다시 하위 50%의 고객을 정리했다. 남은 고객명단을 다시 정리하다가 놀라운 통계를 발견했다.


매출 순위 상위 20%의 고객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약 30여 개의 고객사가 우리 회사 매출의 80%를 올려주고 있었다. 이 30곳의 고객과 나머지 고객의 관계는 분명히 달라야 했다.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고객은 불필요하다. 고객은 나의 이익을 올려주어야만 손님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한 후, 적은 금액이지만 꾸준히 매출을 올려주는 고객들을 다시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 분류를 통해 고객관계 강화를 위한 회사 차원의 마케팅이 마련됐다. 많은 이익을 주는 고객에겐 신제품의 할인 혜택을, 꾸준한 이익을 주는 고객에겐 추가 서비스의 할인 혜택을, 그리고 신규 고객을 핵심 고객으로 만들기 위한 멤버십 혜택 등도 함께 만들었다. 예를 들어, 10회 이상 반복적으로 구매하는 고객에게는 신규 프로그램 50% 할인의 혜택을 부여하고, 꾸준한 이익을 주는 고객들은 1년에 2회 신규 프로그램 시연회에 초청하고, 최초 구매고객에게는 10%의 할인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위의 혜택들은 팀버튼 실무자들에게 권한을 위임해서 즉각 현장에 반영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고객관계는 분류를 통해 시작되고, 혜택과 권한 위임을 통해 시스템이 된다. 빅데이터 시대의 분석도 본질은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고객 백 명의 호감보다 한 명의 열광이 훨씬 중요하다.




별 거 있나요? 무릎이 좀 싸면 돼요.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의 대사 中


고객은 예측 불가능한 손님이다. 성격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선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고객은 친절하지 않다. 고객이 되면 누구나 대접받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객관계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평소에 선하던 고객도 돌변하기 일쑤고, 똑같은 서비스를 똑같이 대접해도 불만이 나오기 마련이다.


2010년 가을의 일이다. 회사를 시작하고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평소 1년 매출에 상응하는 거래였다. 거래 규모도 컸지만, 내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스토리텔링 마케팅 프로젝트였다.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도 거머쥘 수 있었다. 무려 8번의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어렵게 수주한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를 의뢰한 고객은 국내 굴지의 정유회사였다. 당시 우리 회사는 큰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해 본 경험이 전무했다. 그런데 고객사 담당자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고, 미팅을 통해 큰 입찰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1차로 4번에 걸쳐 고객사 담당자들에게 컨셉을 설득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이후 담당 임원을 설득하기 위해 캠페인 계획안을 3번에 걸쳐 프레젠테이션 했다. 꽤 좋은 계획이라는 평가를 들었고, 이제 실행을 준비할 차례였다. 그런데 갑자기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그룹 회장님 앞에서 마지막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난감했다. 몇 번의 밤샘 끝에 15분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고, 3번의 박수와 7번의 웃음을 만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캠페인의 주제는 ‘인사이트’였다. 우리 주변의 좋은 인사이트를 발굴해서 정유회사의 고객들에게 보여주고, 공유하게 만들자. 그렇게 정유회사의 브랜드에 ‘인사이트’라는 인식을 심어보자는 전략이었다. 이제 실행만 잘하면 더 많은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는 기회였다. 캠페인은 초기 1달 동안 문제없이 흘러갔다. 성과도 기대했던 수치보다 2배 이상 높게 나왔다. 그런데 1달 후,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졌다. 모든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는 온통 연평도 사건으로 뒤덮였다. 이런 이슈가 터지면 기업의 캠페인은 관심을 받지 못하기 마련이다. 관심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캠페인의 성과도 크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프로젝트는 애초 기대치보다 절반 이하의 성적으로 마무리됐다. 완벽한 패배였다.


연평도 사건이 터지고 캠페인을 마무리할 때까지의 1달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함께 일하던 매니저는 스트레스로 턱이 빠질 정도였다. 고객이 요구하는 업무는 매일 강도가 높아졌다. 캠페인은 결국 마무리됐지만, 아직 고객과의 관계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잔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를 믿고 함께 일해준 파트너들에게 남은 비용을 지불하려면, 나부터 고객에게 잔금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일의 결과는 형편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시작됐다. 그리고 최종 결과 보고회 날이 돌아왔다.


고객사가 비용을 지급하지 않을 일은 없었다. 굴지의 대기업이었고, 계약서 상으로도 지불에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약속된 날짜에 받을 명분이었다. 비용 지급이 늦춰지면 나도 난처하고, 나와 일한 파트너들도 힘들어진다. 최종 보고가 끝나고, 고객이 나에게 물었다. 이번 캠페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고객과 파트너들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돌발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건, 캠페인을 총괄했던 저의 불찰입니다. 결국 제 잘못입니다. 유구무언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석고대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내가 사과하면 고객의 감정은 다치지 않는다. 그러면 잔금은 제때 받을 수 있다. 내가 무릎을 한 번 꿇으면 고객도 살고, 파트너들도 살고, 나도 산다. 감정은 순간이다. 하지만 진심을 담아야 한다. 내가 진짜로 잘못한 것이 맞다. 가장 큰 이익을 얻었으면서, 멀리 보지 못했으니까. 나의 진심을 담아 크게 사과하자. 석고대죄를 하자, 무릎을 꿇자.


고객은 나를 일으키고는 쫑파티를 하러 가자고 했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우리는 새로운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비용 정산이 끝날 무렵, 나는 내가 고용했던 캠페인 디렉터에게 제안했다. 나는 이 캠페인의 패장입니다. 당신이 앞으로 당신 회사에서 이 캠페인을 맡아 주세요. 패장이 떠나야 전쟁이 마무리됩니다. 조건은 없습니다. 인사이트 캠페인을 살려주세요. 그렇게 캠페인은 다음 해에도 다시 이어질 수 있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객은 더 좋은 파트너를 만났고, 나는 또 다른 고객을 만났다. 고객은 끝까지 돌봐야 할 손님이다. 회사는 고객 없이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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