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과거의 너에겐 관심이 없어. 난 현재의 너를 산거야.
난 과거의 너에겐 관심이 없어.
난 현재의 너를 산거야.
영화 ‘머니 볼’의 대사 中
선수는 프로다. 프로는 해당분야 최고 수준의 전문가다. 선수는 성공의 달콤함을 잘 안다. 선수는 실패하는 공식도 잘 안다. 선수는 성공확률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실패 확률이 낮은 사람이다. 선수는 아는 것이 많다. 선수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한다. 선수는 과거의 경험이 아니라 현재의 실력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진짜 선수는 매우 드물다.
한 분야의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선수가 되는 공식 같은 건 없다. 선수가 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노력, 그리고 인내다. 선수는 선수만 알아볼 수 있다.
2010년의 일이다. 교육 회사를 창업한 이후 가장 일하고 싶었던 큰 고객사로부터 입찰 제안을 받았다. 엄청 큰 규모의 경쟁 프레젠테이션이었다. 고객사는 국내 최상위 대기업이었다. 그 회사 신입사원 3천5백 명의 교육을 대행할 회사를 찾는다는 요청이었다. 막상 초대를 받고 나니 두려움이 앞섰다. 창업 후 6년 동안 내가 발표자로 나섰던 큰 규모의 경쟁 입찰은 모두 패배였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백전백패 대표’였다. 나의 프레젠테이션은 공감보다 설득에 가까웠다.
대안이 필요했다. 그때 한 강연 행사에서 만났던 친구가 떠올랐다.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이었다. 말 그대로 선수였다. 친구를 만나서 경쟁 입찰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친구는 흔쾌히 수락했다. 좋은 선수와 한 팀이 되었다. 드디어 발표 날. 선수의 발표는 역시 탁월했다. 발표자 옆에 앉아 있던 나는 심사위원들만 쳐다봤다. 단 한순간도 친구의 발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심사위원 모두가 밝게 웃고 있었다. 친구는 마치 콘서트를 하듯이 발표를 마쳤다. 발표가 끝나고, 고객사 담당자는 우리를 배웅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꿈꾸던 프로젝트를 시작하겠구나. 다음 날, 발표 결과를 메일로 받았다. 탈락이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분명히 현장의 분위기는 우리에게 크게 긍정적이었다. 속이 탔다. 그때, 메일 한 통을 다시 받았다. 고객사 담당자가 개인적으로 보낸 메일이었다. 다른 경쟁사들에게는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대표님이 준비해주신 제안에 놀랐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함께 있었던 상사와 동료들도 모두 놀랐습니다. 발표하신 분의 역량과 제안 내용은 분명 훌륭했고, 선정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대기업은 급한 혁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표님과 회사의 역량은 인정하지만, 아직 이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도 적고, 저희 회사와 일한 경험도 적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논의를 통해 안정적인 회사와 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저는 언젠가 꼭 대표님 회사와 일해보고 싶습니다. 오늘 보여주신 발표는 저희 회사에 꼭 필요한 제안이었습니다. 훌륭한 발표를 하시고도 탈락해서 속상하시겠지만, 제 진심을 알아주세요. 회사는 몰라도 저는 대표님과 함께 일할 기회를 만들어보겠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두고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실까요?
장문의 이메일이었다. 고객의 진심이 느껴졌다. 탈락이 안타깝긴 했지만 결과는 인정해야 했다. 우선 함께 발표를 준비한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다.
너의 발표는 최고였지만, 결과는 패배다. 책임은 나의 몫이다. 수고했고, 수고한 보상은 지급하겠다. 곧 다시 도전할 기회를 만들겠다. 분명히 더 좋은 기회를 만들겠다. 그때도 함께 하자.
그리고 고객에게도 짧은 답장을 보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약속 잊지 않고 지키겠습니다.
구구절절한 메일은 불필요했다. 진심을 확인했다면, 지금부터 다음 기회를 준비하면 그뿐이었다. 정확히 1년 후, 고객은 다시 우리에게 제안 의뢰서를 보내왔다. 결과는 승리였다. 이후 5년간 우리는 함께 일했다.
선수였던 친구는 그 이후, 나와 더 큰 규모의 정유회사 마케팅 캠페인 프로젝트 입찰을 진행했다. 1달 동안 무려 8번의 발표를 하는 까다로운 경쟁이었다. 마지막 발표는 대기업 회장님 앞에서 진행됐다. 화장실에서 친구와 나는 소변기 앞에서 서로 마주 보며 씩 웃었다. 손을 씻고 발표장으로 들어가는 친구에게 말했다.
마음먹은 대로 다해, 내가 책임질게.
15분으로 예정되었던 발표는 회장님의 박수소리와 함께, 질의응답이 30분을 넘어 45분까지 늘어났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발표를 마치고 나오는데, 입장 전에 그렇게 조마조마해하던 고객이 말을 건넸다.
회장님의 이런 반응은 처음 봅니다.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친구와 나는 짧게 목례를 하고 고객사 정문을 나서면서 서로를 마주 보고 말했다.
낮술이나 먹으러 가자!
그날 우린 술과 승리에 맘껏 취했다. 선수는 늘 공부하는 사람이다. 언제 만날지 모를 프로젝트를 위해 늘 준비한다. 선수는 팀을 중시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선수는 경쟁을 피하지 않는다. 경쟁 없는 승리란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선수도 실수한다. 하지만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 선수는 실수를 통해 진정한 고수가 된다.
이 아이는 저에게
가장 큰 실망을 안겨준 비서입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녀를 채용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멍청이입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대사 中
선수는 편을 만든다. 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한 명의 적을 이기려면 백 명의 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는 약속을 지킨다. 아무리 작은 약속이라도 반드시 엄수한다. 선수는 돈 문제에 명확하다. 돈을 주고받는 거래에 당당하고 투명하다. 선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일보다 사람이 먼저다. 선수는 패배를 인정한다. 지는 법을 알아야 이기는 법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메종 샤넬의 창립자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 그녀의 애칭은 코코 샤넬이었다. 코코 샤넬은 행동파 디자이너였다. 그녀의 집은 가난했고, 어려서 고아원에 맡겨졌다. 수녀원 생활은 그녀의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
코코 샤넬은 원래 뛰어난 모자 디자이너였다. 뛰어난 실력은 점점 소문이 퍼졌고, 귀족들의 사교파티에 초대받을 정도로 유명해진다. 당시 사교파티의 드레스는 코르셋을 입은 바로크 스타일이었다. 샤넬은 돈도 없었고, 코르셋이 싫었다. 그래서 집에 있는 검은색 커튼으로 드레스를 만들어 입었다. 그 유명한 더 리틀 블랙 드레스(The Little Black Dress)는 그렇게 탄생했다.
1920년대 검은색 드레스는 형벌의 의상이었다. 미망인들이 입는 건전하지 못한 상징이었다. 샤넬은 과감한 행동을 디자인했고, 검은색 커튼으로 혁신을 창조한다. 이후 이 드레스는 사교계의 주류가 된다. 이후에도 코코 샤넬은 끊임없이 행동한다. 1953년 뉴욕의 부잣집 딸인 마리 엘렌은 드레스를 고르고 있었다. 샤넬이 본 엘렌의 드레스는 뭔가 불편했다. 춤을 추기도 힘들고, 지나치게 화려했다. 샤넬의 눈에 거실 한 켠의 빨간색 커튼이 들어왔다. 샤넬이 디자인한 엘렌의 빨간 커튼 드레스는 미국 사교계를 감탄시킨다.
선수는 버릴 줄 안다. 채울 때가 있으면 비울 때도 있다는 본질을 잘 안다. 사람들은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표현을 많이 쓴다. 운이 있을 때 돈을 벌어보자는 뜻이다. 그럼 반대는 뭘까? 물이 빠질 때 배를 버리는 일이다. 물 들어오는 순간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데 반대의 상황은 알아도 잘 인정하지 않는다. 금방 지나갈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배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아깝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막연한 기대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물 들어오던 시절이 다시 돌아올까 봐 배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에 물은 더 많이 빠지고, 배는 낡아간다. 배를 버리는 일은 포기가 아니다. 바다를 버리고 단단한 땅을 밟는 모험이다. 선수는 버려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이다.
버리는 일은 어렵다. 사랑했던 배를 버리는 행동은 쉽지 않다. 나는 12년 넘게 교육 회사를 경영했다. 회사는 나의 배였고 생업이었다. 하지만 나의 꿈은 영화였다. 회사를 계속 경영하면 생활은 안정된다. 하지만 꿈과는 점점 멀어진다. 배를 버릴지 말지 고민이었다. 결정이 필요했다.
주식회사 팀버튼은 200명이 넘는 예술가를 싣고 다니는 배였다. 12년간 이 회사의 키를 잡은 사람은 나였다. 나의 선택과 판단이 그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내가 배를 버린다면? 그건 무책임한 행동이다. 배를 버리지 않고 배에서 내릴 수는 없을까?
다행히 나에겐 12년 동안 회사를 함께 키운 임원이 있었다. 마침 안식월 휴가 중이었다. 휴가기간 동안 회사를 인계할 준비를 했다. 첫 번째 행동은 임원의 마음을 사는 것이었다. 두 번째 행동은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 행동은 천천히 떠나는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팀버튼은 여전히 순항 중이다. 대표가 된 임원은 나와 전혀 다른 스타일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나와 다른 스타일이 보이면 나는 침묵한다. 대신 대표가 초심이 흔들리면 짧게 조언한다. 그리고 내가 더 잘하는 일은 직원의 입장이 되어서 돕는다. 그렇게 나는 배에서 내리는 중이다.
선수는 비울 줄 아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욕망이 있다. 욕망을 버리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 양손에 은 덩어리를 들고 있으면, 눈 앞의 금 덩어리를 집을 수 없다. 은을 버려야 금을 얻는다. 채우면 비워지듯이, 비우면 곧 다시 채워진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
하지만 죽을 날을 모르는 게 나아.
삶의 신비를 만끽하며 후회 없이 사는 거야.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대사 中
선장은 선수 중의 선수다. 선장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을 보면 충직한 갑판장 '깁스'가 선장인 ‘잭’에게 묻는다. 은잔과 눈물과 영원한 젊음을 선사하는 샘물까지 다 가졌는데 왜 마시지 않았느냐고. 잭이 대답한다. 영원한 삶도 좋지만 자신의 마지막을 모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선장은 배를 지키는 사람이다. 잭은 그다지 좋은 선장이 아니다.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가기 일쑤다. 잭은 나쁜 두목이다. 선원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잭은 이상한 선장이다. 엉뚱한 결정을 자주 내린다. 하지만 잭은 결코 배를 버리지 않는다. 배와 함께 죽는 것이 선장의 권리이자 의무라 굳게 믿는다. 해적선 '블랙 펄'은 잭이 꼭 지켜야 할 회사 같은 존재다.
선장의 리더십에 정답은 없다. 좋은 리더에 대한 기준도 없다. 물론 나쁜 리더에 대한 명확한 연구도 없다. 리더십이란 주어진 시대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낯선 조류 같은 것이다. 지금 시대에 나폴레옹의 리더십이 통할까? 잭 웰치의 리더십이 다시 GE를 부흥시킬 수 있을까? 잡스가 과연 삼성을 구할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를 일이다.
지금 같은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는 성공이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성공은 과정일 뿐이다. 선장의 최종 목표는 생존이다. 온실을 벗어난 화초는 금방 시든다. 하지만 섬에서 홀로 자란 야자수는 대대손손 바다를 지킨다. 누구나 말하는 성공의 리더십은 잊자. 이미 고인이 된 리더들은 더 이상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선장은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 성공을 맛볼 수 있다.
선장은 경쟁을 즐긴다. 선장은 경쟁자를 아낀다. 선장의 리더십은 라이벌을 만날 때 비로소 빛난다. 헥터 바르보사는 해적 선장 잭 스패로우의 영원한 라이벌이다. 원래 잭의 부하였던 바르보사는 선상반란으로 해적선 <블랙 펄>의 주인이 된다. 바르보사는 잭이 보물섬의 위치를 알려주자마자 선장이었던 잭을 배신한다.
배신의 대가는 참혹했다. 반란을 일으킨 후, 잭을 무인도에 버리고 보물섬을 발견한다. 하지만 욕심 때문에 달빛이 비치면 추악한 모습으로 변하는 저주에 걸린다. 심지어 선원들도 모두 저주에 걸린다. 비겁한 리더를 따른 선원들은 평생을 저주에 걸려 비참하게 살아간다.
외딴섬에 버려진 잭을 지탱시켜 준 힘은 자신의 배 <블랙 펄>에 대한 집착이었다. 버려진 잭에게는 마법의 나침반이 있었다. 그 나침반의 바늘은 북쪽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원하는 방향을 가리킨다. 마음이 안 잡혔을 때는 빙빙 돈다. 잭의 나침반은 언제나 블랙 펄을 가리킨다. 잭의 마음과 같았다.
바르보사의 꿈은 보물섬을 찾는 것이었고, 잭의 꿈은 보물선을 찾는 것이었다. 회사가 없으면 이익도 없다. 큰 이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좋은 팀이 필요하다. 팀이 모여 있는 곳이 회사다. 비겁한 리더는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본다. 현명한 리더는 달이 빛나는 이유를 묻는다. 보물섬을 찾으려면 보물선이 먼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