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대사 中
체계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실수를 줄이는 일이다. 시스템은 짜임새가 있다. 하지만 어떤 시스템도 완벽할 수 없다. 시스템은 그릇이다. 그릇은 결국 깨지기 마련이다. 깨지지 않는 그릇을 만들 수는 없다. 그릇이 깨진다는 것을 믿고, 더 나은 그릇을 준비하는 일이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계속되는 진화를 통해 완성된다.
인간은 실수하는 동물이다. 시스템은 실수를 방지하는 기술이면서 생활을 편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시스템에 투자하는 사람이 더 오랫동안 성과를 만든다. 사람도 시스템이다. 사람의 체계는 가장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으로 설계되었다. 인체의 시스템은 마치 우주를 닮았다.
사람의 몸은 시스템이다. 생명은 가장 완벽한 시스템이다. 우리의 몸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세포 하나하나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세포라는 최소 단위로 구성된 우리의 몸은 10계의 체계로 구분된다. 골격계, 근육계, 순환계, 호흡계, 소화계, 신경계, 피부계, 비뇨기계, 생식계, 내분비계가 그것이다. 각각의 계(系)는 매우 정밀하게 짜여 돌아가며 생명을 움직인다. 우리 몸처럼 회사도 유기체고 시스템이 필요하다.
골격계는 회사의 핵심경쟁력이다. 기업의 핵심경쟁력은 제품 또는 서비스의 경쟁력과 사람의 경쟁력으로 구분된다. 우리 몸의 골격계는 척추와 치아로 구성된다. 제품과 서비스가 척추라면, 인재는 치아다. 척추의 역할은 지탱하는 것이고, 치아의 본질은 분쇄하는 것이다. 핵심경쟁력은 문제를 분쇄하는 인재와 회사를 지탱하는 제품이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근육계는 조직문화다. 근육은 움직이지 않으면 힘이 약해지고 퇴화한다. 근육은 양쪽과 위아래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균열이 생긴다. 기업의 조직문화는 사람을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성장에 맞춰 근력을 키우고, 서로 다른 조직을 만나게 해서 균형을 맞추고,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조직문화는 성숙된다.
순환계는 심장, 동맥, 정맥, 모세혈관, 혈구와 혈장으로 구성된다. 경영의 순환계는 생산 시스템이다. 혈구와 혈장은 제품과 서비스다. 제품과 서비스는 심장을 통해 동맥과 정맥, 모세혈관까지 순환한다. 심장은 제1공장이고, 동맥, 정맥, 모세혈관은 생산라인이다. 제품의 선순환 시스템이 생산이다.
호흡계는 폐와 기도다. 경영의 호흡계는 인사 시스템이다. 인재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는 회사는 죽는다. 소화계는 유통 시스템이다. 소화계는 대장, 소장, 쓸개, 위, 췌장으로 구성된다. 유통은 제품과 서비스를 고객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일이다. 고객이 제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고객을 찾게 만드는 일이 유통이다.
신경계는 눈, 코, 입, 귀다. 경영의 신경계는 마케팅 시스템이다. 고객의 의견을 듣고, 보고, 맡고 나서 회사와 제품의 이야기를 말하는 순서다. 마케팅은 회사의 자리에 제품을 놓고, 제품의 자리에 고객을 놓고, 나의 자리에 너를 놓는 시스템이다. 마케팅 시스템은 24시간 신경 쓰는 일이고, 365일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피부계는 브랜드 시스템이다. 피부는 내피와 외피로 구분된다. 브랜드란 제품의 외피이자, 제품 내면의 철학이다. 피부는 건강상태와 외부환경에 민감하다. 브랜드는 살아 숨 쉬는 피부와 같다. 좋은 화장품을 바른다고 피부의 본질이 좋아지지 않는다. 좋은 제품과 건강한 철학이 브랜드를 빛나게 한다.
비뇨기계는 콩팥, 방광, 요도다. 경영의 비뇨기계는 관리 시스템이다. 경영의 과정에서는 불순물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경영의 부산물을 거르고 걸러 사내에 축적하거나 사외로 배출하는 일이 관리의 본질이다. 관리는 생산과 마케팅을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생산과 마케팅의 추진력을 높여줄 수 있어야 한다.
생식계는 연구개발 시스템이다. 생식계는 조직의 신성장동력을 탄생시키는 시스템이다. 생식하지 않는 조직은 노화되어 도태된다. 조직의 노화를 막는 방법은 없다.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또 다른 성장동력을 탄생시켜야 한다. 연구개발이 없는 조직은 빨리 늙고 일찍 죽는다.
내분비계는 호르몬이다. 경영의 호르몬은 리더십이다. 호르몬은 우리 몸의 각 기능을 정상적인 상태로 유지시켜 주고, 인체를 성장하게 하거나, 인체의 특징을 드러나게 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호르몬은 혈액을 타고 표적기관에 작용한다. 최고경영자의 역할은 모든 호르몬을 관장하는 뇌의 시상하부다.
체계를 만들었다면 이제 전원을 켜야 한다. 시스템의 전원을 켜는 일을 절차라고 부른다. 절차는 일을 치르는 데 거쳐야 하는 순서나 방법이다. 입으로 들어온 음식이 식도를 타고 위를 지나 대장과 소장을 거치는 것처럼, 시스템은 정해진 원칙대로 작동해야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절차는 약속이고 지키는 일이다.
절차는 만드는 일보다 내재화가 훨씬 중요하다. 절차의 내재화는 경영시스템의 내분비계를 관장하는 호르몬, 즉 리더십의 역할이다. 리더는 모든 절차의 과정을 구성원 누구보다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하며, 절차가 어긋나거나 멈추면 그에 맞는 호르몬을 표적에 산포(散布) 해야 한다. 회의와 보고 등이 모두 절차의 과정이다.
일은 구성원들이 한다. 리더의 일은 호르몬을 산포 하는 것이다. 리더는 환경의 변화와 회사의 상황에 맞추어 절차를 재구성해야 한다. 리더가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하면 돈은 벌 수 있다. 하지만 꾸준히 돈을 벌고 싶다면 절차를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피터 드러커는 말한다.
경영자는 심리학, 철학, 경제학, 역사학, 물리학은 물론 윤리학에 이르기까지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지식과 통찰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 다시 말해 지식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아픈 환자를 치료하고, 학생을 가르치고, 다리를 건설하고, 사용자 친화적인 시스템을 설계하고 판매해야 한다.
시스템은 회사가 생명을 다할 때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체계는 리더가 만든다. 회사의 리더는 경영자다. 경영자는 신이 아니지만, 인간을 초월해야 한다. 리더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은 아무나 만들 수 없다.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영화 ‘엑스 마키나’의 대사 中
시스템은 생각이 만든 약속이다. 2008년, 기업교육 프로그램이 한창 잘 팔리던 시절이었다. 국내 최초로 만든 예술을 활용한 조직활성화 프로그램이었다. 1년에 수백 회나 스케줄이 잡혔다. 매출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엉뚱한 사건이 터졌다. 울산에 출장을 가던 매니저에게 전화가 왔다. 교육이 취소됐다는 연락이었다.
당일에 교육을 취소해? 분명한 갑질이었다. 화가 났지만 함부로 응대할 수 없었다. 굉장히 큰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생각을 시작했다. 고객의 잘못이지만, 우리도 노쇼에 대응하는 체계가 없었다. 시스템 없이 3년을 영업한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노쇼를 막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참고할 회사도 별로 없었다.
우선 회사의 시스템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제품 개발은 문제가 없었다. 고객사 피드백을 바탕으로 시장의 욕구에 기반한 제품이 개발되고 있었다. 히트상품의 비율도 일반 제조업보다 높았다. 마케팅 시스템에도 문제는 없어 보였다.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광고, 홍보, 영업, 상담이 매우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고객을 끌어들이고 만족시키는 시스템은 정상이었다. 하지만 불량 주문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다. 모든 주문을 불량 주문으로 상정하고 시스템을 만들면 기존 고객의 불만이 커질 수 있었다. 고민은 의뢰로 쉽게 풀렸다. 시스템의 내용 이전에 홈페이지에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체계적으로 쌓자고 결정부터 하고 웹에이전시를 찾았다.
웹에이전시와 계약을 하자고 제안했다. 웹에이전시 대표는 금액이 크지 않으니 발주서로 대체하자고 역으로 제안했다. 발주서가 뭐지? 처음 듣는 시스템이었다. 발주서는 고객이 제품을 주문할 때 보내는 의뢰서였다. 평소 입찰제안 의뢰서(RFP)만 알고 있던 내게는 매우 재미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발주서의 절차였다.
발주서는 고객이 우리 회사로 보내는 문서다. 그런데 우리 고객들의 성향상 발주서를 보내는 시간은 오래 걸릴 것이 분명했다. 대기업의 특성상 결제도 받아야 하고, 문서의 형식도 모두 달랐다. 생각을 바꿔보았다. 우리가 발주서를 만들고, 역으로 고객에게 보내달라고 하면 어떨까? 수신처와 발신처만 바꾸어 우리가 절차를 간단하게 만들어주면?
사실 우리 제품은 계약서를 쓰기에는 금액이 크지 않았다. 계약서를 쓰는 것이 거래의 기본이지만, 모든 절차를 지키면 속도 경쟁력이 떨어졌다. 발주서는 그런 측면에서 매우 유용한 시스템이었다. 발주서를 도입한 이후, 노쇼는 사라졌다. 발주서를 받지 않으면 스케줄을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발주서 시스템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노쇼라는 실수는 발주서라는 시스템을 만나서 영원히 사라졌다.
그대들에게 가짜일지 몰라도
나에겐 진짜 왕이다.
영화 ‘광해’의 대사 中
시스템은 약속이다. 사업의 약속은 계약이다. 사장과 직원도 계약서를 쓰고, 회사와 회사도 계약서를 쓴다. 계약서는 믿음의 징표이자, 배신을 예방하는 보험이다. 믿을 수 없어서 쓰지만, 믿기 위해 쓰는 것이 계약서다. 계약서는 회사의 시스템을 대표하는 문서다. 그런데 모든 회사에 똑같이 적용되는 계약서의 절차가 있다.
갑과 을. 계약서 첫 문장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다. 하나가 갑이면, 하나가 반드시 을이 되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아무 의심 없이 쓰고 있는 관습이다. 갑과 을로 계약하는 순간 평등은 사라진다. 계급이 생기는 순간 믿음은 약해진다. 믿기보다 눈치를 보는 일이 많아진다. 계약서의 갑을 표기는 고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나도 사업을 시작하고 7년 넘게 계약서에 갑을을 표기했다. 내가 돈을 받으면 ‘을’이 되고, 내가 돈을 주면 ‘갑’이 되는 방식이었다. 아무런 의심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회사와 제휴를 맺게 되었다. 그 회사가 보내온 계약서 초안에는 갑을이 없었다. 대신 ‘친’과 ‘구’가 적혀 있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상대 회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이런 시스템을 만드셨나요? 상대 회사 대표도 10년 넘게 아무 의심 없이 갑을을 썼다고 했다. 그러다가 ‘갑’으로부터 심한 갑질을 당하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처음 어떻게 관계를 설정하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본질이라고 했다. 그래서 본인 회사의 하청계약부터 ‘친구’로 명칭을 바꾸었다고 했다. 이후 나도 고객사와의 계약서를 자연스럽게 바꾸었다.
지금도 우리 회사의 기본 계약서는 ‘친’과 ‘구’로 병기한다. 계약서를 다시 꺼내 볼 때마다 흐뭇하다. 친구가 한 명 더 생긴 기분이다. 이후 우리는 절차를 진화시켰다. 계약의 성격에 따라 ‘영’과 ‘웅’ 또는 ‘상’과 ‘생’등으로 응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부’와 ‘부’로 명기한 계약서도 생겼다. 시스템은 파괴다. 썩은 것을 부수고 새롭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