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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옷장지기 소령님 Mar 18. 2019

영리와 비영리 사이에서 길을 잃다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제4화.

아무래도 설명이 조금 늦은 듯 하다.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라는 앞뒤가 맞지않는 이 글의 타이틀에 대해서 말이다.  


'비영리단체'라 함은, 소유주나 주주가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대신에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는 단체를 말한다. 라고 백과사전에 나와있는 그대로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start up'이라 함은, 실리콘벨리에서 생겨난 용어로 소규모 신생 벤처기업, 특히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인터넷 기술 기반의 회사를 뜻합니다. 라고 역시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누구나 알고 있는 흔한 용어조차 1년여 전만해도 몰랐던 우리가 어떻게 '비영리로 스타트업하자'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을 하자면 우리 열린옷장 사람들에겐 '영리'이든 '비영리'이든, '비영리단체'이든 '스타트업'이든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영리법인을 만들고 스타트업으로 활동을 했어도 아마 지금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을 하기전까지 꽤 길고 무거운 내부 논의의 시간이 있었다. 논의라기 보다는 '자기 고백'의 시간이 있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열린옷장의 이상향을 하나의 지점으로 모을 수 없으면 함께 먼 길을 떠나기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이다. 월급쟁이에서 벗어나 사업가로서 돈과 명예를 꿈꾸는 사람이 어찌 지금의 열린옷장에서 버틸 수 있겠는가... 


우리 각자에게 처음 던져진 질문은 이것이었다. 


"너, 진짜로 하고 싶은게 뭐야?"

"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가 뭐야?"


스스로 질문을 던져놓고 10분여 동안 아무도 말이 없었다. 각자 어렴풋했던 생각을 투명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이 생각이 정말 진심인가 묻고 또 묻고 있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아마도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을 것이다.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ㅎㅎ


'어...내가 하고 싶었던 게 뭐였더라... 지금보다는 스트레스 덜 받고 자유로우면서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었지. 당연히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을만큼 돈도 벌고 싶지... 그렇다고 큰 돈 벌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돈보다는 뭔가 더 의미있는 걸 찾고 싶은데... 돈을 쫓다보면 절대 찾을 수 없는 그런거...''


정말 운 좋게도(!) 우린 모두 비슷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공유경제 스타트업으로 인큐베이팅까지 받았던 열린옷장은 난데없이 서울시 인증 '비영리민간단체'가 되었다. 


우리의 소식을 들은 주변의 스타트업 선후배 동료들은 대부분 황당해하며 다시 한번 생각하기를 권했다. 열린옷장은 보완해가다보면 충분히 성공 가능성있는 비즈니스 모델인데 왜? 비영리? 너희들 진심이야?


비영리법인과 영리법인은 해산할 때 그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 

영리법인이 해산할 때는 남은 수익을 주주들이 나눠갖지만, 비영리법인이 해산할 때는 모든 재산이 국가에 귀속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내 것이 되는게 아무것도 없다면 얼마나 힘빠지겠는가? 재산을 불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절대 해서도 할 수도 없는 게 바로 '비영리'다. 수익을 앞서는 꼭 이루고 싶은 가치가 있는 사람만이 비영리조직에서 즐기며 일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열린옷장'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 


누군가가 보낸 정장 기증박스를 여는 순간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보내온 응원 편지의 감동을.

몸에 잘 맞는 수트를 입고 자신감있게 활짝 웃는 청년구직자의 표정을. 

덕분에 꿈꾸던 회사에 합격했다고 음료수 몇 병과 함께 보내온 감사 메시지를.


조금은 다르게 해보겠다는 비영리조직으로서의 꿈도 가지고 있다. 비영리조직이지만 스타트업 못지않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로 무장한 경쟁력있는 조직이 되고자 한다. 


기증받은 정장이지만 일반 정장대여점을 뛰어넘는 품질과 관리상태를 유지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온라인으로도 내 몸에 꼭 맞는 수트를 고를 수 있는 혁신적인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개발 중이기도 하다. 완성되면 필요한 사람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오픈소스로 공유할 계획이다. 정장 전문 디자이너, 세탁전문가, 웹개발자, 웹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분들이 긴밀하게 열린옷장을 서포트해주고 계신다.  


우리는 '영리한 비영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만큼이나 앞뒤가 맞지않는 말이지만, 그만큼 세상에 없던 새로운 비영리조직으로 지속가능하기를 꿈꾸고 있다.


조금은 더 재미있고, 조금은 더 살만한 세상을 위해

이런 돌아이들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아니한가!      







Tip for your start.

비영리민간단체 등록하기 전에, 잠깐!


비영리단체 신청시 가장 중요한 점은 진행하고자 하는 주무관청을 선정하고 주무부서의 담당자와 효율적인 협의를 하는 과정이다. 열린옷장의 경우 서울시가 주무관청이다. 업종이나 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주무부서의 담당자와 미리 논의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면 서류 작성은 물론이고 단체 승인까지의 시간도 단축시킬 수 있다. 이후에 행정적으로 요청이 필요한 부분이 발생했을 때 연락을 취하는데 더 수월해지기도 하니, 신청 전이라면 반드시 주무부서의 담당자에게 문의하고 서류를 준비해보도록 하자.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 4화 끝.

* 본 글은 2013년 <다음 스토리볼> 연재본을 리라이팅하여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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