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에 대하여

by 김선혜

“철학의 쓸모”, “역사의 쓸모”, “수학의 쓸모”, “쓸모있는 디자인”, “AI 시대, 외국어 학습의 쓸모”, 하다못해 “쓸모있는 사람”이 되라는 충고 아닌 충고까지, 여기저기에서 “쓸모”에 대해 강요 아닌 강요를 해댄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보통 “쓸모”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어딘가에 쓰이게 되는 것”, 즉 “useful”의 관점에서 “쓸모”를 생각을 하게 되고,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봐도 “쓸 만한 가치나 어떤 것에 쓰이게 될 분야나 부분”이라고 “쓸모”를 풀이하고 있다. “쓸 만한 가치”라는 것은 유용하거나 필요한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고, “쓰이게 될 분야나 부분”이라는 것은 실제로 사용되거나 활용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나 저러나 쓸모라는 것은 쓸모있어야 하고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 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버림받지 않기 위해 더럽고 치사해도 용을 쓰며 버티는 것이 이놈의 “쓸모”라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도 “쓸모”를 만드는 일이다. 쓸모있는 것의 쓸모, 쓸모있을 것 같은 것의 쓸모를 더 쓸모있는 것으로 만드는 직업이다. UX 디자이너, 경험 디자이너, 이름도 그럴 듯하다. 더 나은 경험, 더 가치있는 경험을 사용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이런저런 정량/정성 분석을 통해 본질을 탐색하고, 문제를 발견해서 정의하고, 이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로 쓰임을 정의 또는 재 정의하고 솔루션을 이리 포장하고 저리 포장해서 “쨘!” 이 세상에 쓸모있는 제품과 서비스로 환골탈퇴시키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텍스트만 보면 상당히 그럴 듯 하고 엄청 의미있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이해관계자들이 원하는 산출물을 내는 작업이다. 그래서 “유용지용(有用之用), 쓸모있음의 쓸모있음”을 제대로 만든다기 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목표와 성과에 사용자의 만족을 버무리고 잘 포장해서 납품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간혹 정말 진정성있는 파트너분들을 만나 제대로 쓸모를 만드는 경험을 할 때도 있긴 하나 20년 디자인 인생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상당히 드문 일이다.


그럼, 쓸모있는 것의 쓸모, 유용지용(有用之用)만이 정말 쓸모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걸까?

어린 시절 아파트 뒷 공터에 버려져 있는 빨간 벽돌을 갈아 고추가루라고 하면서 재미나게 소꿉놀이를 했고, 부러진 나뭇가지는 하이킹할 때 아주 요긴한 스틱이 되어 주었다. 버려진 트럭 방수천을 멋진 패션 아이템으로 재탄생시킨 프라이탁(Freitag)과 같은 업사이클링 제품들이 환경 보호와 가치 소비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을 하고 폐기물로 작품을 만드는 정크 아트도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잡고 있다.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음의 쓸모있음,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도 용도를 바꾸거나 재가공을 하면 쓸모와 가치가 다시 정의될 수 있고, 쓸모있음의 다른 가치로 재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본질을 탐구해서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을 발견하고 쓸모없음을 쓸모있음을 만들어갈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 이득을 가져다 주지 않는 것들을 쓸모없음으로 여기고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치부한다. 쓸모있는 것의 쓸모만 알고, 쓸모없는 것의 쓸모는 잘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제대로된 쓸모를 가려내는 혜안이 없는 것일수도 있겠지. 그래서 맨날 “그 나물에 그 밥”인 상황이 되풀이되고 다람쥐 챗바퀴 돌리는 삶을 반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득 지인의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가 떠오른다. “안락(安樂)한 삶을 위해 안 락(樂)한 삶을 사는 중…” 볼때마다 피식 웃음이 난다.

유용지용(有用之用)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안 락(樂)하지는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무용지용(無用之用)인 글쓰기를 하면서 더 안락(安樂)함을 느끼고, 잘 가공된 다이아몬드같은 사람보다는 원석같은 사람을 발굴해서 보석으로 만드는 작업을 더 즐긴다. 현실적으로 글쓰기는 당장에 나에게 돈도 명예도 아무런 실질적인 이득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리고, 회사는 원석보다는 보석을, 게다가 저렴한 값으로 쓰려는 도둑놈 심보를 보이고, 제대로 줄을 서야 쓸모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이 더 쓸모가 있을지 무엇이 더 안락한 삶을 가져다 줄지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건 함부로 “쓸모없음”과 “쓸데없음”의 정의를 내려서는 안되고, 내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무용지용(無用之用)의 가치를 창출하는 경험 디자인도 해 보고 싶고, 책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드럼 치고… 당장에 금전적인 이익 창출에 기여하지 못하더라도 개인적인 안락(安樂) 삶을 위한 활동들도 계속할 생각이다. 다른 이에겐 쓸모없음(無用)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그 누군가에게는 쓸모있음(有用)으로, 안락安樂)함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나에게 그러한 것 처럼. 그리고, 또 모르지? 브런치 10주년 팝업 전시를 함께 할 기회를 얻게 될지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PM/PD 업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에 일을 대하는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