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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라이터 Sep 30. 2015

내가 만든 내 브랜드 '산티아고여행가'

​김효선의 산티아고 가는 길

 대한민국에서 아줌마로 산다는 것, 아줌마를 보는 시선은? 솔직히 호의적이지 않다. ‘거칠다, 무성(無性), 억척스럽다, 밥, 품어주다...’ 대개 이런 키워드를 떠올린다. ‘아줌마’로 불리는 나는 싫든 좋든 인정하긴 하지만 그 어감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50대 김효선은 자기 자신을 색다르게 포지셔닝했다. ‘김효선은 곧 산티아고’란 브랜드를 만들어냈으니까. 똑 떨어지는 자기 브랜드를 만들 줄 아는 그는 영리한 50대다. ‘똑똑하게 튀기’ 위해서 당연히 준비 과정이 남달랐고 그의 노력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듯하다.


 

 돈과 지식으로 16년을 워밍업 하다


 아이 키우랴, 돈 벌랴, 남편  뒷바라지하랴 하루하루 바빴지만 늘 엇비슷했던 30대 그의 일상은 우울했다. 시들어가는 자신이, 세월이 아까웠던 그는 미래를 위한 두 개의 히든 카드를 뽑아 들었다. ‘비자금 통장과 공부’. 

16년간 단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적금을 부었고 영어, 세계사, 문화, 경제 같은 세계 여행의 밑거름이 될 공부를 파고들었다. 분야별로 파일까지 정리해 둘 만큼 세세히 샅샅이 읽어가며 정보를 지식으로 재구성했노라고 슬쩍 귀띔한다.  


 세계 여행의 필수품인 영어를 공부하고 학원비도 아낄 겸 두 딸에게 영어를 직접 가르쳤다는 고백을 들으며 겉보기에는 허허실실이지만 한 꺼풀 벗겨내 보면 치밀한 행동가인 그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두 딸이 대학 졸업하고 성인이 될 무렵 식구들에게 독립선언을 선포하고 지지를 얻어냈다.

 “지혜롭게 한편으로는 음흉하게 16년을 모은 비자금이 든든한 버팀목이 돼 당당히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지요.”  

길 위에서 찾은 내 안의 길을 찾다

 

1월의 맹추위를 뚫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등 북미, 유럽 각지를 원 없이 돌아다녔다. “전 세계 철도망의 4/5를 찍은 듯하다”는 과장 섞인 자랑을 할 만큼 초기 여행은 기차를 중심으로 샅샅이 훑었다.

 그러다 산티아고를 만났다. 지인이 보내준 중년의 평범한 브라질 아줌마가 산티아고를 완주한 뒤 펴낸 여행기에서 찌릿한 자극을 받아 “나도 해보자” 용기를 냈단다. 


 당시 국내에는 산티아고 여행 정보가 드물었고 뉴욕에서 산 원서 3권을 독파하며 구체적으로 여행 계획을 세웠고 곧바로 길을 나서 800km에 달하는 전 코스를 두발로 밟았다.  2006년 무렵 일이다. 그 뒤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꿈인 산티아고를 그는 지금까지 일곱 번이나 다녀왔단다. 


 산티아고는 야곱의 시신이 발견된 기독교 성지 중 하나로 길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의미도 크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순례자의 길’로 통하는 산티아고의 인기는 1천 년을 이어 오는 중이다. 종교의 힘이 막강했던 12c 당시 유럽 인구가 3천만 명이던 시절에 연간 50만 명이 순례의 길을 떠났고 요즘에도 15~20만 명의 세계인이 찾을 만큼 스테디셀러 ‘길’이다.  


 산티아고 곳곳에 마련된 공동 숙소인 알베르게의 딱딱한 1인 침대에 누워서도 그는 매일 밤 미소가 가시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고 털어놓는다. 


 완주 4~5일을 앞두고는 모든 여행객들이 아쉬움 때문에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밤마다 함께 길동무했던 사람들 찾아 선술집을 전전하며 아쉬움과 뿌듯함이 교차하는 눈인사를 나눈다는 추억담도 들려준다. 여행객들끼리 길을 걷는 내내 ‘내가 너의 고통을 안다’는 동병상련의 유대감이 만들어준 끈끈함 덕분이란다. 


 그가 800km를 걷는 50여일 내내 여행객들과 더불어 행복했던 이유는 특유의 친화력과 아줌마다운 열린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여행의 불청객은 발에 잡힌 물집입니다. 고통스럽죠. 나는 바늘에 면실 끼워 물집 터트리면 재발하지 않는 노하우를  터득했고 ‘나의 시술’ 덕을 본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국적 불문하고 수많은 여행객들이 나를 찾았어요. No license라고 아무리 외쳐도 다들 나를 의사로 알았다니까요(웃음).” 툭툭 던지는 말 속에서 길 위에서 그의 활약상이 짐작된다.


 나는 그의 여행 스토리도 흥미진진했지만 여행 후 그의 행보에 훨씬 관심이 많다. 50대 이후의 인생을 도보여행가, 여행 작가로서 리셋하고 ‘김효선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공부하듯 열심히 탐색했다.


 산티아고를 걸으며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을 세밀하게 기록으로 사진으로 남긴 그는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유럽을 만나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포르투갈을 만나다>, <산티아고 가는 길>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대중들에게 김효선을  각인시킨 건 산티아고를  다녀온 뒤가 아니라 산티아고 관련 책을 펴낸 뒤였다.   


 사실 하루 수십 km 씩 걷는 여행지의 고단한 일상을 매일 기록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걸 나도 한 달간 여행하며 뼈저리게 경험했기에 그의 노력과 노고를 값지게 평가한다.



 “산티아고가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주었다. 산티아고가 원래부터 있었던 하드웨어라면 난 길에서의 경험담으로 수많은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라는 그의 고백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여행(제1의 소프트웨어)과 여행기(제2 소프트웨어) 출간으로만 끝나지 않고 때마침 불어온 산티아고 열풍(운도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따라온다는 건 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과 함께 전국 각계각층 사람들의 니즈에 맞춘 ‘강연’이라는 제3의 소프트웨어로 풀어냈고 이 과정에서 그는 신문, 잡지, 방송 같은 미디어를 영리하게 활용할 줄도 알았다.  물론 거기에는 산티아고 전도사로서 ‘진정성’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낯선 이들에게도 본인의  책뿐 아니라 산티아고 지도, 손수건 같은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자료를 자청해서 한아름 가지고 와 나눠줄 만큼 후덕한 인심을 지녔다. 그런 천성이 좋은 에너지를 전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김효선에게 열광할 테지만.


 여행가, 여행 작가로서 그의 브랜드는 계속 외연을 넓혀가는 중이다. 스웨덴 쿵스레덴, 일본의 시코쿠 88 사찰 길을 순례했고 지난해에는 26박 27일 일정으로 하루 4~5그릇의 우동을 먹으며 일본의 109곳 우동집을 취재하며 <사누키우동 순례> 책까지 펴냈다. 

 

 끈기, 집요함, 좋아하는 것에 올인할 줄 아는 열정 코드가 그의 에너지원이라는 걸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내가 곧 콘텐츠’라는 시대의 맥을 정확인 읽은 후 자기 콘텐츠로 승부를 보겠다고 달려드는 그의 근성을 나는 꼭 벤치 마킹하고 싶다.

 

30%의 긍정으로 70%의 부정을 깨부수며 산다

 

‘30%의 긍정으로 70%의 부정을 깨부수며 산다’는 그의 패기가 마음에 든다.  갈지(之) 자 인생을 사는 나 스스로가 가끔씩 못 견디게 못마땅할 때마다 그의 금언을 되새기려 한다.


“꿈을 꾼 건 10대, 꿈을 만든 건 30대, 그리고 꿈을 이룬 건 50대”라는 그처럼 50대에는 나도 내 꿈을 꼭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하고 다짐한다. 나의 보약은 역시 사람인가 보다. 그것도 열정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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