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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라이터 Sep 30. 2015

‘손의 힘’ 한데 모으는 공간지기

 이루다손의 좋은 기운 만드는 사람

나는 복합문화공간 북카페를 열고 싶은 50대의 꿈을 향해 나는 ‘공간’ 탐방을 부지런히 다닌다. 내부 인테리어 사진 찍고 특이사항 메모하며 스토리라이터의 데이터베이스를 ‘미래의 그 날’을 위해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자본이 듬뿍 투하된 럭셔리한 공간 보다는 아기자기하고 맛깔나게 꾸민 곳이 훨씬 정이 간다. 내 주머니가 가뿐하니 그럴 테지만, 호호.


 그러던 중 이루다손이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일단 네이밍이 재치 있었다. ‘이루다? 뭘로, 손으로!’  주인장은 1976년생 전직 패션 디자이너이자 자연주의 삶을 실천하려 애쓰는 7살, 4살 남매를 둔 엄마다. 


 이루다손을 품은 공간은 주인장의 집 한편이다. ‘자기 집을 선뜻 내놓다니?’ 서울 집값이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재테크 관점으로는 불가사의한 결단을 용기 있게 내린 그가 무척 궁금했다.


일상용품 ‘내 손’으로 만드는 즐거움

 

송파구 가락동 동네 공원으로 마치 정원처럼 품고 있는 5층 건물 2층이 이루다손 보금자리다. 홈메이드를 좋아하고 손을 움직여 보람을 찾는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 도심 속 마을을 가꾸는 게 이루다손의 정신이란다. 방 2개, 거실 겸 주방, 화장실이 있는 공간은 동네 사랑방으로 아늑하게 꾸며 놓았다. 어린 자녀와 함께 주부들을 위해 아담한 놀이방까지 갖췄다. 


 이곳으로 목공, 가드닝, 천연화장품, 뜨개질 같은 손작업을 배우러 동네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온다. 내공과 스토리가 남다른 동네 이웃들을 수소문해 모신 강사진의 면면도 재미있다. 타고난 손재주로 딸들 옷을 직접 만들어 입혀 키웠고 지금은 손주 옷까지 만들며 블로그에 노하우를 공개하는 35년 경력의 할머니가 뜨개질 강의를 맡고 있고 취미 삼아 시작한 목공에 빠져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목수로 전직한 공방 대표가 목공 수업을 진행한다.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책 읽기 모임, 강연회가 꾸준히 열린다.


 추억이 담뿍 담긴 집을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가락동 토박이 공간지기는 25년간 살았던 낡은 단독주택을 허물고 오빠, 남동생 삼남매가 새로 건물을 완공했다. 유년의 추억이 담뿍 담긴 집이라 설계부터 시공까지 전 과정을 꼼꼼히 챙기고 마감재, 페인트도 친환경만 고집하며 공들여 지은 집이다.


 “애착이 많은 집이라 남에게 세를 주기 보다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쓰고 싶었어요.” 은행 대출금 같은 현실적인 문제는 뒷전으로 미룬 채 눈 질끈 감고 마을예술창작소를 오픈했다.

  스무 살 무렵,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한날 한시에 잃은 뒤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지 냈다는 그는 울긋불긋 염색하거나 희한한 옷 입고 다니며  마음속 깊은 슬픔, 허망함을 달랬노라고 한다. 그러다 프랑스로 유학 가 값비싼 것, 새 것이 아니라 오래 묵은 패션의 멋스러움을 일상 속에서 녹여내는 파리지앵의 미적 감각을 보며 신선을 충격을 받았노라고 그는 고백한다. 그때부터 서서히 자연주의 삶의 가치에 눈 뜨게 되었다고. 

 

결혼 후 딸과 아이를 낳을 때도 가정 출산을 고집했고 건강한 먹거리를 챙기며 잉여를 남기지 않는 적정 소비를 실천하려 애썼다. 운 좋게 두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자신과 가치관이 비슷한 7명의 엄마들을 동지로 얻었고 여덟 명이 의기 투합해 이루다손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13년간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그는 이루다손 마을지기로서 동업자들과 재미나고 의미 있는 실험을 원 없이 시도 중이다.  “7살 딸, 4살 아들이 꼽는 가족의 개념이 엄마, 아빠를 넘어 이 공간을 찾는 친구 가족까지 확대되는 걸 보고 내심 흐뭇하죠. 동네 어른들에게도 붙임성이 좋고요. 어릴 적 내가 이 동네에서 자라며 느꼈던 감성을 내 아이들도 공유할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큰 선물이죠.”

 


 이루다손은 아날로그 감성과 홈메이드 가치에 목말라하던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 나고 있다. “우리 일상은 모든 걸 사서 쓰게 되면서 돈에 우리의 삶이 휘둘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뭐든 사서 쓰지 말고 각자가 ‘꼭 필요한 만큼만’ 만들려 합니다. 내가 공들여 만든 헝겊 인형을 우리 딸과 아들이 가지고 놀면서 엄마의 감성, 기운을 고스란히 느끼더군요. 신기했습니다.” 8명의 멤버들은 이웃과 함께하는 ‘건강한 공동체’를 목표로 천천히 순항 중이다.


  부모님 사고 이후 뾰족한 마음으로 20대를 보냈던 그는 청소년 상담에도 관심이 많아 밤에는 방통대에서 상담학을 공부하고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진짜로 바쁘다고 웃는 그를 보며 공간은 역시 의지 강한 ‘사람’이 만든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가 지향하는 가치가 꺾이지 않고 오래오래 지속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이루다손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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