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 강의하는 영화감독
나는 앞날을 점치는데 관심은 무지하게 많지만 선뜻 점집으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껏 살면서 딱 한번 점을 봤다. 40대에 접어들자 젊지도 늙지도 않는 애매한 나이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막막한 마음에 여동생이 추천해 준 곳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용산의 부촌 아파트에서 만난 점쟁이는 내 또래의 댄디한 느낌을 주는 남자로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컴퓨터에 입력한 후 묘하게 생긴 그래프를 보여주며 내 앞날을 풀어해 주었다. 50대에 접어들면 지금 보다는 훨씬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편안해질 것이라는 덕담과 함께 40대 초반에는 여러 분야를 두루두루 공부하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점집 문을 나서며 족집게처럼 짚어 주기 보다는 내 속마음을 속시원 하게 까보이며 심리 카운슬링을 받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주역, 사주명리학으로 풀어내거나 신 내림을 받은 무당집이 아니라 별자리, 즉 점성학을 공부해 상담해 주는 곳이었다. 그러다 최근 별자리 강사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170cm쯤 되보는 늘씬한 키에 시원시원한 외모만큼이나 털털하고 논리적인 말솜씨가 돋보이는 주인공이었다. 현직 영화감독인 그는 유학 다녀온 후 이상하다 싶을 만큼 하는 일마다 안 풀렸다고 했다. 지인 권유로 별자리 상담을 갔다 자신의 운명을 천문해석학으로 풀어보니 이해가 되었다고 했다.
당최 납득 가지 않는 내 인생의 꼬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물병자리인 내가 고교시절까지 의사를 꿈꾸다 영화감독으로 진로를 바꾼 이유부터 그 당시 인생이 꼬인 이유까지 논리적으로 납득이 갔습니다. 어떻게 다음 스텝을 준비해야 할지 방향이 보이니까 여유로워지더군요.” 그때부터 선생님 찾아다니며 별자리 공부하고 원서 읽으며 갈증을 풀었다고 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강의까지 열게 되었다는 그에게 사람들이 왜 별자리를 공부하는지가 궁금하다고 물었다.
“30대 후반부터 40~50대 쯤 되면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요. ‘내 인생은 왜 이리 꼬일까’라는 자괴감을 털고 싶거나 자식이나 배우자, 부모 등 가족, 직장 상사 같은 사회 관계망을 잘 풀고 싶을 때 혹은 자녀 진로 때문에 고민인 분들이 별자리를 공부하러 옵니다. 결석생도 거의 없어 가르치는 나조차 놀랄 만큼 배움의 열의가 높습니다. 속내를 살펴보면 사실 이 연령대는 의무와 책임이 몰리는 시기며 노동의 강도 또한 셉니다. 이 시점에서 자신의 내면, 운명을 돌아보고 싶다는 목마름이 공부 원동력인 듯싶어요.”
동양의 사주명리학에 해당되는 게 서양의 점성학(astrology)이다. 기본 원리는 무엇일까? 인간사는 변화무쌍하지만 태양, 달, 행성은 변함없이 규칙성을 갖고 움직인다. 고대인들은 이 점에 주목해 천문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수천 년 동안 데이터를 쌓고 체계화시켜 지금의 천문해석학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마다 태어난 생년월일시, 장소에 따라 사람의 기질, 성격이 고유 바코드처럼 찍힌다고 이해하면 쉽다. 그는 아주 명쾌하고 간단하게 설명해 준다.
양, 황소, 쌍둥이자리 등 12개 별자리와 태양, 달, 수성, 금성 등 10개 행성을 가지고 사람이 태어난 그 순간에 하늘의 별들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었는지 출생차트를 그리며 해석방법을 배우는 게 별자리 공부. 우선 12개 별자리 기질, 특성 이해가 공부의 시작이란다. 그 다음은 대략 30년 주기로 찾아오는 인생의 사계절을 이해하면 된다고 그는 말한다.
인생의 봄,여름,가을,겨울 알면 길흉에 얽매이지 않는다
“인생의 봄, 여름은 열심히 씨 뿌려 가꾸는 시기라면 가을은 수확의 계절로 절정기를 맞는데 가을의 마지막 1년에 주목해야 합니다. 정점을 찍은 후 ‘화려한 시절’을 그리워하며 우울증을 앓기도 하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죠. 사실 전성기가 이미 지났기 때문에 뭘 해도 과거 만큼 잘되지는 않아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지요. 겨울이 가장 중요합니다. 쉬면서 성찰하고 새로운 공부를 하며 신구 교체기를 준비해야 하지요. 이 같은 순환의 이치를 깨우치면 길흉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긴가민가하며 듣다가 길흉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말에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모든 사람이 길을 원하고 흉은 피하고 싶어하는 데 인간사 길흉을 초월한다면 해탈의 경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인간 군상들의 희로애락을 스크린에 옮기는 직업이 바로 영화감독, 그의 본업을 떠올리며 사람의 본질을 꿰뚫는 툴로 별자리 공부가 요긴하겠다 싶었다.
“약 6개월 별자리 공부해 내 인생의 굵직한 흐름을 알 수 있다면 썩 괜찮은 투자 아닌가요?”라고 호탕하게 웃는 그를 보며 내심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그토록 알고 싶어 하는 나의 미래를 내가 직접 공부해서 풀어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은 오락가락한다. 별자리 공부할까? 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