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째 집에 돌아오지 못한 위안부소녀들이 전하는 아픈 울림
영화 <귀향>을 개봉 첫 날, 첫 상영을 봤다. 솔직히 나는 사회참여형 성향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꼭 봐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기에 극장을 찾았다.
2010년 우연히 경기도 광주에 있는 위안부할머니들의 지원시설 '나눔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길을 가던 나를 군인들이 납치해 트럭에 태워 끌고 갔다"는 위안부할머니의 생생한 육성 증언을 들으니 소름이 돋았다. 나눔의 집 한 켠에는 위안부 시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전시관도 있었다. 나눔의 집은 관념적으로 알던 아픈 역사를 가슴으로 느끼게 해 준 '현장'이었고 그날 이후 내 가슴 속 묵직한 곳에 자리잡았다.
영화 <귀향>은 할머니들의 증언을 고스란히 영상으로 옮겨놓았다. '꽃다운 소녀들이 일본군에게 유린되었다'고 한 줄로 기록된 역사적 실체가 얼마나 참혹한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첫 생리를 시작하지도 않은 14살 어린 소녀들까지 끌려간 기막힌 역사다. 생각해 봐라. 지금으로 치면 초등 6~ 중1 정도의 어린 아이들이다.
전쟁터에서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일본군은 힘 없는 절대적 약자인 소녀들을 짓밟고 지독하게 매질하며 자신들의 공포의 광기를 푼다. 카메라가 부감 앵글로 보여주는 위안소 풍경은 지옥이다.
'조선인들은 암캐일 뿐아리며' 한밤중에 찬 이슬 아래 소녀들을 발가벗겨 세워놓는 만행을 저지르고 패망 후 '소각명령'이 떨어지자 소녀들을 단체로 총살하고 구덩이에 불태우는 충격적인 장면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집에 가자" 소녀들이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말로 영화 내내 참 많이 나오는 대사다. 하지만 이 소녀들은 거의 집에 가지 못했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 가장 끝단의 힘 없는 백성들이 어떻게 유린되는 지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정민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엄마에게 받은 생명의 부적같은 '괴불노리개'를 공포에 떠는 친구를 안심시키기 위해 손에 쥐어준다. 두 명 중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살아남은 얄궂은 운명. 혼자 살아남은 친구는 평생을 부채의식에 시달리며 괴불노리개를 만든다.
아마도 살아 돌아온 238명의 위안부할머니들도 이처럼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속으로 분노와 공토를삭이며 살았으리라. 1995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되기 전까지는 아마도 우리도 아픈 역사를 알면서도 외면했다.
조정래 감독이 75270명의 시민 후원으로 14년에 걸쳐 완성한 영화 귀향이 또 다시 시민들의 힘을 보탠 덕분에 상영관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나는 오늘 딸과 함께 이 영화를 봤다. 영화 보는 내내 펑펑 울었다.많이 슬프다. 관심있는 분들은 꼭 보시기 바란다.
덧붙여
문화콘텐츠는 역사적 사실보다 힘이 세다. 조정래감독이 뚝심으로 만든 귀향의 메시지는 분명하나 자본, 제작 여건의 한계 때문에 영화적인 완성도는 거칠다. 우리나라에도 <쉰들러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작품성, 메시지를 고루 갖춘 더욱 강력한 또 다른 귀향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본다.
뻔뻔스럽게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정부에 냉정하고 논리적이며 강력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위안부 문제 대처 국민운동'이 조직적으로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이 문제는 한때의 흥분이 아니라 집요하고 끈질기게 파고들며 고발해야 할 야만적인 국제범죄이기 때문이다.
영화제작을 위해 조 감독이 14년간 고군분투할 때는 관심조차 없다가 국민적 반향이 심상치 않으니까 총선을 앞두고 생색내기용 숟가락 올리기 하려는 '정치꾼'들에 대한 삼엄한 경계도 잊지 말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