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콘텐츠 파워, 평범함이 주는 공감에서 나온다
스토리라이터입니다.
<윤식당> 예고편 보고 감이 왔습니다. '이 프로 뜨겠구나!'
이국적인 바다, 요리 아마추어 연예인 사단이 운영하는 식당, 한식에 대한 이방인들의 리얼 반응... 호기심 끌어당기는 요소들의 결합 때문이었습니다. 역시 핫하게 떴고, 중국에서 무단으로 포맷 복제 프로그램 방영 소식에 종영 후에도 다시 한번 주목받았습니다.
<알.쓸.신.잡> 예고 역시 유시민, 정호승, 김영하, 황교익, 유희열이란 출연진 리스트 보고 차별화를 예감했습니다. 전문성과 입담을 겸비한 인물들이 풀어낼 융합토크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역시나 화제의 중심에 섰고 박수 받으며 종영했습니다.
여행을 풍성하게 하는 법을, 지식에 연륜을 포개 설명하니 나의 흡수력이 달라진다는 사실을,어떤 사실과 사건과 시대와 공간을 단선적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여기에 덧붙여 중년 남자들의 수다 욕구가 엄청나다는 점을 알려준 어른들을 위한 방송이 알쓸신잡이었습니다.
유시민, 정재승, 황교익, 김영하, 유희열의 합(合)이 좋았고 서로가 서로를 그 분야의 베스트라고 인정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자발적으로 흡수하며 거기에다 각자의 경험치와 지식을 유머있게 플러스하는 지적인 내용들이 마치 내가 방송 한편 볼 때마다 한뼘씩 영특해 지는 듯해 뿌듯했던 방송이었습니다.
특히나 방송 전편에 흐르는 사람들끼리의 따스함, 인정(人情)이 뚝뚝 묻어난 편집 트릭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연예인의 입담, 재치, 애드립 없어도 프로그램의 호응이 좋으니 꼭 방송의 시청 타겟을 '니들이 뭐 알겠니' 식으로 초등 고학년~ 중학생 수준으로 맞추지 않아도 불특정 다수의 똑똑한 시청자들이 많다는 걸 증명해준 방송 프로그램입니다.
또 하나, 사람들이 작가가 쓴 책을 읽는 대신 저자의 강연을 선호하는 요즘 트렌드와 알쓸신잡의 등장이 묘하게 의미가 있다는 점입니다. 읽기 보다는 보고 듣기를 좋아하는 시대라 융합 지식 역시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이겠지요.
예능PD 나영석. 방송PD를 꿈꾸는 청소년들이라면 십중팔구 닮고 싶은 인물로 꼽는 스타PD입니다. (요즘에는 '무한도전' 김태호PD를 훌쩍 앞지른 느낌입니다.) 대중을 사로잡는 크리에이터의 창작 비결이란 부제가 붙은 <세상에 없던 생각> 책, 얼마 전 신문 인터뷰 기사(신문 지면 뿐 아니라 인터뷰 전문을 웹페이지에서 찾아 보며 꼼꼼히 탐구했습니다.)를 밑줄 쳐 가며 읽으며 그만의 크리에이티브를 분석하고 곱씹어 봤습니다.
나영석의 예능은 '관찰 리얼리티쇼'입니다. 아이들 혹은 인기 연예인 얼굴 마담으로 내세워 시청자 취향에 아부하는 포멧과는 분명 선을 긋고 있습니다. 내가 그의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이유는 어른 취향인데다 사람 냄새 나고 삶에 대한 성찰의 메시지를 언뜻언뜻 내비쳐 곱씹어보는 여운이 있어서입니다.
방송계 성공한 크리에이터로 꼽히는 나영석PD. '문화상품을 시청자에게 파는 사람'으로 촉이 남다른 그가 말하는 콘텐츠 비법이 무엇일까요?
타이밍>>> 이 세상에는 완벽하게 새로운 것이 절대 없습니다. 다만 전부터 있던 것, 기존 것을 변형한 것에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고 색다른 포맷을 개발해 내용을 담느냐, 그리고 언제 세상 밖으로 내 놓느냐가 관건입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너무 빨라도 외면 당하고 너무 늦으면 복제가 되니까 때를 기다려야 한다. 트렌드를 어떻게 잡아내는가는 결국 타이밍이다'
<삼시세끼>는 사실 KBS PD 시절부터 구상했지만 계속 묵혀두었다가 사람들이 휴식을 강렬하게 원하고 있는 임계점까지 기다렸다고 합니다.
나PD 프로그램은 내레이션이 없습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출연진들끼리 노는 것'을 카메라가 고스란히 팔로잉한 후 편집과 자막으로 승부를 봅니다. 출연진 한명 한명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시청자 호기심 유발할 '꺼리'를 추출해 재치있는 자막으로 스토리를 끌어갑니다. 여느 예능 프로그램처럼 게임이나 골탕 먹이기 같은 자극적인 요소 없이 잔잔한 일상을 가지고 맛깔나게 기승전결을 빚어냅니다.
나PD 스스로 본인 장점이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것이며 사람들 관찰하며 특징을 잘 잡아낸다고 말합니다. 자신만의 '한방'을 자신의 프로그램에 적절히 잘 녹여냈지요.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역시 마이너리그였던 팟캐스트의 문화 저변이 계속 두터워진 걸 보고 타이밍을 감지한 듯 보입니다.
'과연 될까?' 나PD 조차도 반산반의했는데 "늘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TV 속으로 위치를 옮겨 놓았다. 이게 시청자들에게 통하는 걸 보고 트렌드를 스스로 많이 배웠다"고 솔직하게 실토한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알.쓸.신.잡>은 이 시대 내로라하는 뇌색남인 전직 정치인인자 현직 작가, 소설가, 맛칼럼리스트, 대중음악가, 과학자가 STEAM(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예술, 수학의 시선을 가지고 종합적으로 바라보기)적 관점에서 풀어낸 입담이 퍽 흥미롭습니다. '저 사람은 이걸 저렇게 해석하는 구나, 내 생각과는 이렇게 다르구나 혹은 내 생각도 똑같구나' 처럼 엿보고 싶었고 각자의 생각과 대비해 보고 싶었던 대중 심리를 제대로 저격합니다.
나영석PD는 어느덧 나영석사단을 키워 현재 49명의 작가, PD가 팀으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매일 시청률과 싸우고 '나영석 망가지는 구나'라는 소리 듣는 게 두렵다"는 그. 그만큼 예리한 촉을 늘 곧추세우고 있겠지요.
변화무쌍한 콘텐츠 트렌드를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사람들이 감정의 질척거림조차 귀찮아하는 시기가 올 거라 생각한다. 앞으론 좀 더 건조하면서도 단순하고 쿨한 방식으로 변할 것 같다" 즉 캐릭터나 설정 같은 모든 게 소거된 다큐멘터리 스타일. 온갖 MSG가 제거된 팩트, 정보 중심의 콘텐츠라... 어렴풋하게 머릿속에는 그려집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주는 공감이 예능의 미래다. 지금은 과도기적이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그런 예능 프로그램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가 예능의 궁극적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연예인과 일반인, 리얼리티와 판타지, 예능과 다큐멘터리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1인 미디어는 지나가는 바람이 아닌가 봅니다. 억지로 상황을 연출하려 들지 말고 관찰하되 나름의 관점과 메시지 포인트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이야기 끌고 가기로 내 나름의 정리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