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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라이터 Nov 28. 2017

역사로 사람을 잇는 오덕만 문화살림 대표

혼을 담아 ‘문화재 속 한국인 혼’ 지킨 20년

 ‘우리 문화재는 한국인의 혼’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20년간 문화재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는 오덕만 문화살림 대표를 보면 직진하는 불도저가 연상된다.


 성균관, 창덕궁, 풍납토성, 석촌동고분군, 몽촌토성, 한양도성... 숱한 우리 문화재마다 그의 애정 어린 손길이 닿았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것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다.

 “아직까지 우리는 문화재 보존과 관리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원형보존을 위해 문 걸어 잠그지만 말고 문화재를 잘 활용해 많은 사람들이 가치를 느끼고 영감을 얻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강조하는 다짐이며 오 대표는 이를 꾸준히 실천에 옮기고 있다.

 

모범 사례로 꼽히는 성균관, 창덕궁 문화재지킴이 활동

  2013년부터 시작한 성균관 문화재지킴이가 큰 호응을 얻어 2015년부터는 창덕궁까지 확대할 만큼  문화재지킴이 활동에는 그의 소신이 담겨있다.

 가족 단위로 문화재지킴이 신청받아 먼지 뽀얗게 앉은 전각들을 쓸고 닦아 윤기 반질반질 나게 가꾼다. 여름이면 무성하게 올라오는 풀을 뽑고 구멍 숭숭 뚫린 문에는 창호 작업을 다 함께 하며 살뜰하게 가꾸며 모니터링 보고서도 매년 발간한다. 


 1년간 매월 1~2회씩 토요일마다 하는 봉사활동이 녹록지 않지만 참가자들은 우리 문화재와 자주 만날수록 바라보는 시선이 따스하게 바뀐다. 창덕궁은 80여 명, 성균관은 30여 명의 가족지킴이들이 활동하는데 해마다 참여하는 이들도 꽤 여럿이다.


 형 따라서 시작해 3년째 꼬박꼬박 참여하고 있다는 왕용배(방산고 2) 군 역시 그중 한 명이다. “처음에는 봉사시간 채우려 시작했지만 1년, 2년, 3년 햇수가 쌓이니까 창덕궁과 정이 들어 계속 청소하러 나와요. 자주 보니까 마룻바닥 부서진 거며 보수할 곳이 꽤 눈에 띄어요. 우리 궁궐을 좀 더 잘 가꿔 예쁘게 보전했으면 좋겠어요.”

 

문화재지킴이들의 변화에 보람을 느낀다는 오 대표. 뙤약볕 내리쬐는 한여름에도 칼바람 부는 초겨울에도 꽃피고 단풍 들어 모두들 나들이 떠나는 봄가을에도 그는 어김없이 잡초 뽑고 궁궐 마룻바닥을 기름 걸레질하며 현장을 진두지휘한다. 이런 진정성 덕분에 성균관과 창덕궁지킴이는 우리나라 문화재지킴이 활동의 롤모델로 꼽힌다. 


 아이들에게 영감 주는 오감으로 현장에서 배우는 역사

 문화재를 활용한 역사 체험 교육에도 그는 발 벗고 나섰다. 조선시대 최고의 국립대학 격인 성균관에서 유생체험을 하고 달밤 아래 석촌동 고분군과 몽촌토성을 투어 하며 풍납토성 경당공원에서는 다양한 백제 역사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오 대표는 때로는 엄한 훈장이 돼 개구쟁이 유생들과 명심보감을 강독하며 예절과 효의 가치를 설파한다. “제대로 의관 갖춰 입고 유적지에서 오감으로 배우는 역사는 교과서로만 배우는 역사와 분명 다릅니다. 개구쟁이들이 세월이 흘러 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게 됐다거나 역사 관련 직업을 갖게 됐다고 인사 올 때 뿌듯하지요.”


 이 같은 역사 교육에는 유아, 초등학생을 비롯해 청소년, 교사, 학부모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우리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한다.


  그의 전직은 목사다. 20년 전 대안교육에 관심 갖고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들, 딸 손잡고 박물관, 유적지 찾아다니며 현장 체험학습하다가 역사교육에 눈을 떴다. 알차게 진행되는 역사 체험 프로그램이 입소문 나면서 참가자들이 계속 불어났다. 아예 1999년에는 현 문화살림의 전신인 위례문화역사연구회를 세웠다. 사재 털어가며 청소년 역사 동아리, 봉사 조직을 꾸리고 성인 대상으로 문화해설사, 문화플래너, 방문교사 양성 교육을 꾸준히 펼치며 ‘역사체험 교육의 씨앗’을 지치지 않고 뿌렸다.

 

그의 열정과 노력은 2016문화재지킴이 전국대회 국무총리 표창, 문화재청장상을 연거푸 수상하며 전국적으로 인정받았다. 


 문화살림에서 15년간 동고동락하며 가까이에서 오 대표를 보좌해온 윤영선 부대표. 그가 지켜본 ‘오덕만’은 어떤 사람일까? “한결같고 변하지 않는 분이에요. 생각이 깊고 다른 사람들 말에 귀 기울일 줄 알지요. 역사로, 문화로 사람을 잇겠다는 소신이 변함없으니까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계속 찾아옵니다. 그러다 보니 사업이 점점 커지네요.” 


“20년 버티니 뜻한 바 이루더라”

 여럿이 힘을 보태야 우리 문화재 보존과 활용을 더 잘할 수 있다는 소신으로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다양하게 모으는데 적극적이다. ‘같이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문화살림 대표 직함 외에 한국문화재지킴이 단체연합회 상임이사, 한국문화유산활용단체연합회 부회장, 서경문화유산포럼 회장, 한양도성문화제 추진위원장, 한성백제문화제 추진위원까지 이력이 다채롭다. 모두 발로 뛰어야 하는 직함이라 숱한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해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를 모으고 의견을 조율해 문화재청이나 지자체에 끈질기게 건의한다.


 “나는 인맥도 없고 천성적으로 남한테 도와달라는 말도 못해요. 내 믿음대로 내 식대로 한우물 팠습니다. 예전에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지닌 사회적기업의 젊은 대표들이 역사 아이템으로 멋진 체험 프로그램 풀어내는 걸 보고 솔직히 ‘나는 왜 저렇게 못하나’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20년 세월이 흘러 주변을 보니 다 사라지고 우리 밖에 없더군요. 이제는 역사나 문화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 만나면 20년 우직하게 버티면 뭔가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그랬으니까요.”   


  오 대표는 한양도성, 조선의 궁궐, 종묘, 성균관 같은 서울의 수많은 유물과 유적 가운데서도 유독 1997년에 발굴된 풍납토성에 애정이 깊다. 

 송파에서 45년 산 토박이로서 자연스러운 끌림이다. 송파구 풍납동 일대는 한성백제 왕궁터로 땅 밑에 온갖 유물이 고스란히 잠자고 있는 한국판 폼페이 유적지다. 지금은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토지 보상 문제로 발굴과 유적지 복원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지만 오 대표는 ‘멋진 미래의 어느 날’을 머릿속에 그리며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한성백제 체험 프로그램부터 차근차근 전개해 나간다.

 가진 에너지를 오롯이 쏟아붓는 ‘역사’가 그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자라나는 아이들, 그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필요한 ‘진짜 교육’을 역사를 통해서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젊은 시절부터 교육 운동, 공동체 정신에 관심 많았고 이제는 역사로 그걸 실천하는 거지요.”


 ‘역사와 문화로 세상을 살리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단체 이름을 문화살림으로 짓고 우직하게 실천하려 애쓰는 오덕만. 그는 분명 50대의 불타는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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