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풍경들
2123년.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엔 주말이란 것이 존재했다. 당시의 인구 중 정규분포에 포함되는 이들은 평일 5일 동안 일하고, 2일은 쉬었다. 일을 하지 않는 2일을 일컬어 주말이라고 불렀다. 주말엔 회사에 출근하는 대신 도시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소비를 하거나, 밀린 빨래를 하거나, 침대에 하루 종일 드러누워 있는 것이 당대의 일반적인 생활상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주말에 쉬는 것은 아니었다. 주말은 공식적으로 휴일이긴 했지만 나름의 사정으로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당시는 이미 복잡하게 분화된 후기 자본주의 시대였기에 이들의 특징을 하나로 꼽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대체로 주말에 일하는 이들은 주말 휴식을 철저히 보장받는 이들에 비해 경제•정치•문화•보건적으로 약자인 경우가 많았다. 100년 전의 <주말>이란, 일종의 정상성의 성곽이기도 했다.
<주말>은 본 박물관의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로, 서로 다른 3명의 표본에게서 추출된 주말의 기억을 응축해둔 것이다. 관람객들은 표본의 기억에 접속해 2023년의 주말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세 표본들은 모두 지난 주말에 무엇을 했냐는 질문을 받았다. 각각의 기억에 접속하기 위해선 음성 명령어를 입력해야 한다. 명령어는 기억들이 놓인 선반에 적혀있다.
“당신이 주말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내게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주말01
표본 1의 주말은 원룸에서 시작한다. 바닥엔 싱글사이즈 매트리스가 프레임도 없이 놓여있고, 매트리스의 머리맡엔 핸드폰이 놓여있다. 오전 10시. 해가 뜬지는 오래지만 볕이 잘 들지 않는 원룸은 여전히 어두컴컴하다. 알람이 울린다. 이불 꾸러미 속에서 손이 나온다. 손은 머리맡을 한참 뒤적거리다 겨우 핸드폰을 잡는다. 알람을 끄고 웅크리고 휴대폰 화면 속을 들여다본다.
짧은 동영상이 재생된다. 근육 키우는 법. 춤추는 젊은 여자. 커뮤니티에서 퍼 온 ‘썰’들. 다시 춤추는 젊은 여자. 그러다가 스탠퍼드 대학 출신의 뇌과학자가 등장해서 집중력을 망가뜨리는 습관을 소개한다. 짧은 동영상을 보는 것이 뇌를 망가뜨린다는 내용의 짧은 동영상을 보고 나서야 표본 1은 침대 밖으로 나온다. 막 잠에서 깨어난 20대 중반의 젊은 육체는 기지개를 켜고, 창문을 열고, 소변을 누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책상 앞에서 심호흡을 한 번 크게 쉬고, 핸드폰을 킨다.
공부시간을 기록하는 앱에 접속한다. 그의 스터디원들은 벌써 초록불이다. 이미 3시간 넘게 공부 중인 초록불도 있다. 표본 1도 평일이라면 이미 3시간 정도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주말. 표본 1이 주말 위해 남겨둔 유흥은 8시간 이상의 수면이다. 다시 크게 내쉬는 숨. 문제집을 편다. 앱에 공부시간이 기록되기 시작한다. 핸드폰 화면 속, 표본 1의 이름 옆에 초록색 불이 켜졌다. 이날 표본 1의 초록불은 11시간 16분 동안 켜져 있었다.
주말02
표본 2의 주말. 배경은 깔끔한 오피스텔이다. 점심시간이 넘었지만 표본 2는 아직 자고 있다. 2시가 넘어서야 일어난 표본 2.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으로 음식을 시킨다. 배달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비스듬히 누워서 짧은 동영상을 본다. 춤추는 젊은 여자. 남자가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슈퍼카를 타고 다니는 백만장자의 인터뷰. 춤추는 젊은 여자. 광고. 동영상을 보는 동안 배달기사가 떡볶이를 문 앞에 두고 갔다. 옷도 입지 않은 표본 2는 문을 살짝 열고 떡볶이를 챙겨온다. 침대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표본 2는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미안, 일 때문에 오늘 못 가겠다. 안부 전해줘’ 문자메시지를 보낸 표본 2는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메모장을 켜고 ‘오늘 할 일’이란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하는 표본 2. 표본 2가 작성한 오늘 할 일은 다음과 같다.
1.결혼식 가기
2.대청소 및 빨래
3.업무 정리하기
3.레퍼런스 서치, 기획안 초안 작성
4.독서
5.운동
6.일기 쓰기
7.영어 공부
표본 2가 이 문서를 완성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 어느새 태양의 고도는 낮아졌다. 방 안으로 찾아든 주황색 햇볕에 표본 2는 다시 침대에 올라가 벽에 기댄다. 누운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자세로 눈을 감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그러나 뭔갈 해야만 해. 이 세 가지 생각들이 표본 2를 벽에 못 박아버린 듯. 주말 오후의 마지막 햇살이 방 안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내내 표본 2는 그렇게 멈춰 있었다. 먹다 남은 떡볶이가 침대 머리맡의 바닥에서 굳어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말03
손을 맞잡은 연인들이 보행자 전용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날씨는 하루 종일도 걸을 수 있을 만큼 쾌적하다. 길 건너편의 공원에선 바이올린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연주를 하고 있나 보다. 아이들은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뛰어다닌다. 보행자 전용 거리의 한 가운데에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서 있다. 그 한가운데 표본 3이 있다.
표본 3은 온몸이 꽁꽁 묶여있다. 구속복을 입고 그 위로 쇠사슬을 칭칭 두르고 있다. 온몸이 묶인 채로 주말의 나들이객 앞에 서 있는 표본 3. 온몸이 묶여있는 표본 3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말한다.
“저는 15년 동안 이 거리에서 공연을 해왔습니다. 그동안 친구들은 다들 직장도 가지고, 결혼도 하고, 참 멋지게 살더군요. 하지만 대한민국에 저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이 거리가 제겐 직장이고, 이 공연이 제겐 전부입니다.” 다시 박수를 치는 사람들.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후원으로 저는 생활을 이어갑니다. 공연을 재밌게 보셨다면 후원을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얼마를 후원하면 좋을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알려드리겠습니다. 혼자 오셨다면 김밥 한 줄이 요즘 오천 원이더라고요. 오천 원을 후원해 주시면….” 사람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하지만 노련한 거리의 예술가인 표본 3은 사람들이 동요할 틈을 주지 않고 바로 공연을 이어간다. 15년 동안 주말에서 수천 번 넘게 공연을 하며 갈고닦은 실력으로 몸을 격렬하게 꿈틀거리는 표본 3. 쇠사슬이 그의 어깨에서 흘러내린다. 한쪽 팔이 자유로워졌다. 이번엔 구속복 속으로 몸을 한껏 웅크린다. 인체 구조상 불가능할 만큼 몸을 웅크린 표본 3이 괴성을 지른다. 탈출의 이미지가 되고자, 구속복 속으로 15년째 출근하는 표본 3 머리 위로 주말의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든다.
<주말>-구원의 희망은 희귀하지만 일상적 쾌락은 공장식으로 공급되던 100년 전 주말의 멜랑꼴리한 이미지들-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영원한 주말을 향유하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주말>의 인기는, 어쩌면 우리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대가로 삶의 진실 한 귀퉁이를 잃어버렸다는 것의 방증인지도 모른다. 이 퇴적된 노동의 단층에서 유실된 조각을 찾는 여정을 이어가는 데 흥미가 생기는가? 그렇다면 눈길을 옮겨보자. 벽면의 안내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다음 콘텐츠는 <월요병>입니다. 즐거운 관람되십시오. 접속을 위한 명령어는 ‘출근 개싫어’입니다."
풀칠 155호 2123년 노동사 박물관에서(23.09.14) 전문 읽기
credit
야망백수
밥벌이 그 이상의 풀칠을 위하여, 풀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