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추울 텐데

퇴사에 관하여

by strangecowcow

오늘은 말이죠. 동료한테 말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퇴사하겠다고 얘기하는 그에게 저도 모르게 ‘밖은 추울 텐데’라고 해버렸거든요.


사실 별 일 아닐지도 모릅니다. 밖에 춥다. 말이야 맞는 말이니까요. 요즘 워낙에 경기도 안 좋고 괜찮은 자리 구하기도 어렵잖아요. AI 기업들은 하루가 머다 하고 ‘역대급 업데이트’를 발표하죠. 기업은 채용을 하는 대신 기존에 일하던 사람들이 슈퍼맨이 되길 바라고요. 요즘엔 이런 AI툴도 있다던데? 그건 AI 배워서 한번 해보면 어때요? 우리는 AI에게 대체되길 기다리면서 AI를 배워야 하는 처지가 됐죠.


그도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같이 ‘AI 생산성’ 스터디도 했었거든요. 스터디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여타의 직장인처럼 ‘때려치워야겠다’는 얘길 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회사에 붙어있는 게 이득이다란 결론으로 끝을 보곤 했습니다. 지금 나가면 못 돌아와. 연휴도 있고 휴가도 있고 주말도 있으니 버텨보자. 어차피 때가 되면 잘릴 텐데 서둘러서 뭐 하니. 그래. 우리는 그래도 처지가 좀 낫잖아. 아직은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고, 연금도 붓고 있고, 밖은 춥고, 우린 여기 안에 있잖아.


그러니까 ‘밖에 춥다’는 말은, 우리가 이미 신세 한탄의 씁쓸한 뒷맛을 헹구려고 가글처럼 써오고 있었던 말이었던 거죠. 그런데 왜 지금은 이 말이 입안에 낀 가시처럼 계속 걸리는 걸까요.


이럴 땐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는 게 도움이 되겠죠. 만약 퇴사하겠다고 얘기한 게 나였다면, 나는 어떤 얘길 듣고 싶었을지를 한번 생각해 봅니다. 그건 왜 퇴사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죠. 제 생각에 퇴사는 보통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입니다. 여기가 못 견디게 싫거나, 더 나은 삶이 저기 있거나.


만약 제가 여기를 더 이상 못 견디겠어서 퇴사를 하려고 마음먹은 거였다면 ‘밖에 추울 텐데’라는 말은 이렇게 들렸을 겁니다. ‘너는 여기 그냥 가만히 있어. 희망? 그런 건 없어. 여기 있으니까 밥이나 벌어먹고 사는 거야.’ 겨우 실천으로 옮겨진 희망에 대한 가까운 이의 냉소. 아이고, 이건 최악인데요.


만약 제가 더 나은 삶이 저기 있다는 확신을 갖고 퇴사를 얘기한 거라면? 저는 ‘밖에 추울 텐데’라는 말을 한 사람을 조금은 측은하게 여겼을 것 같습니다. 솥 안에 든 개구리가 천천히 삶아지면서 여긴 따뜻한데라고 말하는 걸 보는 기분이었겠죠. 아, 이건 좀 부끄럽네요. 결론은 어느 쪽이 되었든, ‘퇴사하겠다는 사람에게 밖에 추울 텐데라고 말해서 좋을 일은 없다’겠고요.


저는 나름대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타인에게 공감은 못해도 최소한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치지 않아야 한다고 자주 생각해 왔고요. 게다가 우리는 꽤 친한 동료인데, 적지 않은 시간을 같이 보내왔는데, 그런 동료의 결심에다 대고 '밖에 추울 텐데'란 못된 말을 해버리다니.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을 더 함부로 하게 되는 건 어째서일까요.


어쩌면 우리가 '나'를 지키고 싶어 하면서도, '너'를 필요로 하는 모순적인 존재여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타인과 같이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이란 곧 우리의 생명이죠. 생명을 계속해서 나누다 보면 상대와 나의 경계가 흐릿해집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나는 내가 몸 담그고 있는 시간을 떠나서 살아갈 수 없죠. 이 시간엔 출근과 퇴근과 그 사이의 희로애락과 너와 내가 한데 녹아 있습니다.


제가 더 솔직했다면, 저는 '밖에 추울 텐데' 대신 이렇게 말을 했을 겁니다. 난 네가 필요해. 가지 마. 네가 없으면 나는 지금처럼 일을 잘 해낼 수 없어. 새로운 사람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줘야 할 거고 간단한 업무요청도 괜히 더 격식차린 표현으로 적으려고 애쓰게 될 거야. 그러다 보면 나는 지금보다 퇴근을 더 늦게 하게 될 거고 더 빨리 늙게 될 거야. 그러니까 가지 마. 우리 사이에 놓인, 우리가 함께 쌓아 올린 나의 안정감을 깨지마!


그래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저는 우정 때문에 그의 빈자리를 아쉬워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그냥 좋아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르죠. 누군가 있어서 편한 것과 누군가를 위해서 불편을 감수하는 것도 다르죠.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는 것과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는 것이 다른 만큼요. 나의 안녕을 바라는 이기심은 어째서 타인을 향하는 마음보다 발이 빠른 걸까요. 아, '밖은 추울 텐데'라는 말을 들은 그의 표정은 어땠는지를 기억해내려고 해도 도통 떠오르지가 않네요.


그가 퇴사하고 나면 머지않아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그 자릴 채울 테죠. 그럼 저는 그 사람과 일을 하게 될 거고요. 한동안은 좀 귀찮겠지만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는 적응해서 일을 곧잘 해낼 것입니다. 회사는 그러라고 돈을 주는 곳이고, 돈이란 건 굉장한 인센티브니까요. 새로운 동료와 저는 어느 날 퇴근길이 겹칠 수도 있을 것이고, 때마침 날이 무덥거나 너무 춥거나 하는 이유로 같이 맥주를 마시게 될 수도 있겠죠. 술집에서 신세한탄을 하다가 이렇게 얘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밖은 추울 텐데.


하지만 아직 그 시간은 오지 않았고, 그가 퇴사하기까지도 좀 남았으니 내일은 그에게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걸어봐야겠어요. 비로소 묻고 싶은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그래, 여기선 그동안 어땠나요. 상상했던 일의 모습과는 그럭저럭 닮아 있었나요. 퇴사를 결심했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홀가분하던가요, 두렵던가요, 아쉽던가요. 설레기도 했나요. 떠날 날짜를 받아두고 회사를 다니는 요즘 기분은 어때요. 나가면 뭘 할 거죠. 여기서의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 것 같나요.



풀칠러스케치1015_안과밖.jpg


매거진의 이전글인공지능 동료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