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을 기념하는 마음에 관하여
언젠가 피라미드를 보러 갔었다. 동행 중엔 전직 가이드가 한 명 있었다. 그는 가이드답게 아는 것도 많고 말도 많았다. 피라미드로 가는 불편한 지프 뒷자리에서 그는 내게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를 지은 이유를 이야기해 줬다.
이집트인들에게 사막은 무한한 공간이었다.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사막은 그들을 두렵게 했다. 이집트인들은 이 두려움을 관리하기 위해 꾀를 냈다. 원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이 원 안에 점을 찍어두면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고 낸 묘안이었다. 사막을 알 수 없다면 사막 안에 우리가 알고 있는 무언가를 남기자. 그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렇게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세웠다.
피라미드를 떠올린 건 달력을 보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어느새 1년이 다 되었단 걸 깨달아서다. 보잘것없는 1년이었다. 부자가 되지도 못했고, 유명해지지도 못했고, 행복을 찾지도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럭저럭 살아내는데 급급했던 1년을 돌아보는데 피라미드처럼 대단한 건축물이 떠오르다니, 이 무슨 과대망상인가 싶었다.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른 피라미드의 상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는 내 지난 1년이 피라미드의 옆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궁리를 시작했다.
일단 나는 피라미드를 인수분해해 보기로 했다. 전체끼리야 비교가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지만, 세부 요소는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먼저 피라미드를 짓는 보통사람들의 땀과 근육통과 나의 안구건조증과 만성피로. 둘은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노동의 애환이란 점에서 본질적으론 같을 것이다. 진흙을 게고 돌덩이를 나르는 동안 가슴속에 일었다 사라졌다 하는, 피라미드가 자신들을 구원할거란 믿음과 나의 일하다 보면 언젠간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란 희망 혹은 불안. 이 둘을 나란히 두는 건 합당한 처사다. 사막에서 강가의 집으로 돌아가며 아직은 보잘것없는 돌무덤 뒤로 떨어지는 해를 보며 느낀 감정과 내가 지하철 창문으로 붉게 물든 한강을 보며 느낀 감정. 이 둘을 구별하는 건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부분의 유사성이 크니 내 1년도 피라미드 옆에 나란히 자리할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인수분해가 억지라면, 다른 전략도 가능하다. 이 전략의 이름은 ‘도찐개찐’이다. ‘피라미드나 나의 지난 1년이나 어차피 실패이므로 도찐개찐이다!’라는 게 이 전략의 핵심 주장이다. 가이드가 얘기해 준 기획의도-사막의 무한함에 대한 두려움 극복-가 참이라면, 피라미드는 실패작이다. 피라미드를 짓는다고 해서 사막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피라미드 위에 올라간다고 해서 사막의 끝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피라미드는 그냥 거기 서 있을 뿐이다. 피라미드 같은 블록버스터 기획도 실패하는 마당에 지난 내 1년이 성에 안 차는 것쯤이야 뭐 대수일까. 어쩌면 애초에 어떤 문제들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인지도 모른다. 사막의 무한함, 계획대로 술술 풀리는 삶 같은 것들 말이다.
이제 나는 피라미드만큼이나 위대하고, 또 보잘것없는 지난 1년을 기념하기 위해 맥주 네 캔을 사고 있다. 우주의 시각에서 보면 피라미드와 별 차이도 나지 않을 맥주 네 캔. 이집트인들이 무한한 사막에 피라미드를 세웠듯이, 나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인생의 선 위에 맥주 네 캔으로 성대한 축제를 열 것이다.
집에 돌아가면 최선을 다해서 맥주를 마실 거다. 분명 한 캔도 다 마시지 못하고 잠들겠지만 오늘은 1주년이니까 평소보다 조금 더 진심으로 또 조금은 일렁이는 마음으로 마실 것이다. 이렇게 별 것도 아닌 일을 기념하며 삶에 눈금을 남기는 순간을 이어 만들어진 무늬가 결국엔 내 삶이겠거니, 우리 모두가 이렇게 저마다 우주의 무한함 속에서도 절대 뭉그러지지 않을 고유한 무늬를 만드는 중이겠거니 생각하며 집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골목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피라미드를 본 날에도 맥주를 마셨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