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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Oct 28. 2022

레드카펫 위에서


잠옷 차림에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책가방을 멘 채 윙크를 날리는 치명적인 아이. 20년도 더 지난 사진 속 나의 행색은 누가 봐도 첫 등교의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분출시켜버리고 마는 아이의 그것이다. 그래. 힘껏 분출하거라. 너는 내일 교문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행렬을 따라 운동장에 줄맞춰 선 뒤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을 들을 것이다. 그런 다음 배정된 반 교실로 이동해 처음 보는 친구들과 애매하게 협력하며 교과서를 나눠 가질 테지. 얼떨떨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면 어젯밤의 네가 아득하게 느껴질 것이다.


처음은 늘 설렌다. 동시에 처음은 서툴고 어색하다. 모두 다 처음이라는 이유로 그런 것이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의 차이일 뿐 누구나 긴장한다. 물론 긴장마저 설렘의 일부로 여기는 담대한 사람들이 드물지만 있다. 아쉽게도 난 아니다. 오히려 극도의 긴장감을 설렘으로 착각한 게 아니었던가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으니까. 아마도 첫 등교 전 날에 품었던 설렘만이 인생에서 유일하게 순수했던 설렘이었을 것이다. 그땐 긴장을 학습하기 전이었을 테니까. 단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는 시구의 의미도 그런 맥락 아닐까.


얼마 전 이직을 했다. 이직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 회사는 처음인 만큼 역시 긴장했다. 내 모니터를 쳐다보는 동시에 옆자리 동료의 설명을 듣느라 정신이 없다. 앉은 자리에서 상체만 옆쪽으로 기울여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고 손은 부지런히 타이핑을 한다. 완벽하게 어정쩡한 자세라서 오히려 스트레칭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적응 과정은 어정쩡하지 않았다. 체계성과 융통성의 황금 비율이랄까. 실무와 문화라는 측면에서 정해진 프로그램과 자연스러운 케어가 적절히 이뤄지는 온보딩에 감동했다. 전 회사들에 비해 첫 인상이 좋았다.


당시 경험이 인상적이긴 했던 모양이다. 입사 후 꽤 시간이 지난 어느날 퇴근길에 나도 모르게 ‘온보딩’을 검색했다. 온보딩(onboarding)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배에 탄다'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새로 입사한 직원이 조직에 쉽고 빠르게 적응하도록 조직문화를 알려주고 업무에 필요한 정보·기술 등을 교육하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기업은 잘 이뤄진 온보딩을 통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한다. 첫째는 신규 직원의 이직을 막는 것. 둘째는 그가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은 “이직을 막고"라는 부분이다.


사실 ‘이직’은 첫 회사에 들어간 이래 몇 년간 버킷 리스트에서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던 단어들 중 하나다. 실제로 이직을 하고 난 직후에도 나는 다음 회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단어가 최근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온보딩의 뜻을 읽어보다가 알아챈 것이다. 이런… 나… 당분간 이 회사를 다녀도 괜찮겠다고 생각해 버린 걸까?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났다는 증거는 상대방과 함께하면서 변해가는 스스로의 모습이 자기 마음에도 드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래도 나쁘지 않은 회사를 만난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여기서 ‘이직을 막는다’는 내용은 채용에 들어간 회사의 리소스를 낭비하지 않기 위함을 의미한다. 단순히 직원을 위하는 데 초점을 맞춘 내용이 아니다. 중도에 합류한 직원이 회사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다양한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기존에 1인분을 하고 있던 직원이 자신의 리소스를 쪼개 도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조직 차원의 업무량 및 속도 조절을 요한다. 그런데 합류한 직원이 적응에 실패해 떠난다면? 모두 무의미해진다. 채용 절차에 들어갔을 리소스는 아직 언급도 안 했다.


그러니 많은 직장인이 퇴사나 이직을 꿈꾸는 것은 사실 그 자체로 회사 입장에서는 큰 손해다. 결승선이 ‘골인'이 아니라 ‘퇴장'인 사람이 100% 능력을 발휘할 리가 없으니까. 제대로 된 온보딩이 이뤄지지 않으면 회사 차원에서 관리해줄 무언가가 아예 없을 테다. 예를 들면 애사심 같은 것. 아니면 최소한 동료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라도 말이다. 첫 날부터 일감을 잔뜩 받아든 이에게 “프로는 돈 받은 만큼 하는 것. 불평불만은 자격미달.” 같은 말은 일침보다는 소음에 가깝다. 프로이기 전에 사람이란 걸 먼저 짚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온보딩의 책임은 회사만의 것이 아니다. 직원 또한 성실하게 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왜냐면 회사는 리소스를 효율적으로 쓰기를 추구하는 집단이니까. 회사가 내게 쓰는 온보딩 리소스를 손해라고 판단한다면 이처럼 신경써 주지 않았을 테다. 그전에 온보딩 자체를 허락하지 않았겠지. 그렇다면 티켓값만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대우 받는 느낌이 어색하고 송구해서 어지러웠던 속이 좀 가라앉았다. 그리고 내 역할을 잘 수행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후 반복해서 되뇌던 말. “나만 잘 달리면 레드카펫이다.”


“너 내 동료가 돼라"는 말의 무게를 아는 회사가 좋은 동료를 얻는다. 가만, 내가 막 잘 났다는 얘긴 아닌데... 쑥쓰러우니까 ‘좋은 동료를 만들어낸다’로 바꿔본다. 입사 초에 쓴 일기만 봐도 긴장감에 뚝딱거리는 내 모습이 읽힌다. 그게 귀엽게 느껴지는 건 이제 그만큼 긴장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해소된 긴장감은 어디 가지 않는다. 고스란히 설렘으로 돌아왔으니까. 그래서 요즘의 나는 잠옷 차림으로 책가방을 멘 어린 시절과 비슷한 마음으로 출근한다. 레드카펫 위에 서서 다짐한다. 오늘도 잘 달려보자고.






파주

제게 ‘이직’하면 연관검색어처럼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직에 성공한 날부터 이직을 준비해야 한다’라고 비장하게 말하던 선배죠. 최근에 또다른 곳으로 이직한 그 선배와 연락을 했습니다. ‘요즘 이직 준비 해?’ 인사 대신이었죠. 선배는 답하더군요. ‘이번 회사에 4개월차인데 아직 회사 욕 안 했어.’ 아마 회사가 내쫓을 때까지 다닐 거라는 의미겠죠. 궁금해졌습니다. 선배가 회사에 출근하고 욕을 내뱉었던 최단 기록이요. 선배는 말했습니다. ‘음... 3시간?’ 오전 근무만 해도 회사가 본인에게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회사가 정상인지 엉망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사례가 바로 온보딩의 중요성을 내포하는 게 아닐까요? 쓸 만한 녀석을 배에 무사히 태우고 잘 다독여서 밥값을 하게 하는 것. 지독한 저니맨(이를테면 그 선배)을 원클럽맨이고 싶게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채용이라는 중대한 프로젝트의 성공 기준이라 할 수 있겠죠.



야망백수

'나만 잘하면 레드카펫'이라는 말이 인상 깊네요. ‘각자도생’이 ‘국룰’인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고점인 것 같아서요. 새 직장이 아매오님에게 신뢰를 얻는데 성공했나 봅니다. 그러니까...<알아서 살아남아라>에 신뢰 한 스푼 넣고 잘 구워주면 <나만 잘하면 되겠어>가 되는 거군요...!


한편으론 아매오님이 남을 신뢰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라 새 직장에 잘 '온보딩' 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배에 타자마자 뛰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입에 쓰면 당장 뱉어야하는 모난 성정 때문이지요. 회사에서만 그런 게 아니에요. 유치원도 다닌 지 하루 만에 자퇴했으니까 말 다 했죠. 물론 탈주의 순간마다 신뢰하지 않을 나름의 이유를 쥐고 있긴 했지만, 때려친 대가는 온전히 제가 치러내야 하더라고요. 그러다보면 좀 더 믿어볼걸, 좀 더 버텨볼 걸하며 자책하게 되기도 하구요. 남을 믿지 못하면 결국엔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게 되나 봐요.


올해는 저도 불신지옥 생활을 청산해보려고요. '믿지 않으면서 살기’ 난이도가 생각보다 더 높네요.(잘 있어라 따뜻한 지옥불아!) 그동안 박차고 나온, 제게 믿음을 주는데 실패했던 배들의 순항을 기원하며, 저한테도 운이 따르길 빌어봅니다. 성공적인 온보딩 축하합니다.



마감도비

이토록 순탄한 온보딩이라니, 부럽습니다. 물론 아매오님이 그에 걸맞은 실력과 적응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겠죠. 경력직으로 이직하고서 두세 달 정도 꽤나 고생했던 사람으로서 온보딩에 대한 정의는 뼈아프네요. 저는 이직 첫날부터 실무를 받아들고서 “얼마큼 일할 줄 아는지 보자”는 말을 들어야했거든요. 그 땐 그게 억울한 일이라는 것도 몰랐네요.


새로 합류한 사람이 새로운 시스템과 문화에 적응할 수 세심하게 신경써주는 것만큼 조직의 질서정연함과 여유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도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 더더욱 “‘너 내 동료가 돼라’는 말의 무게를 아는 회사가 좋은 동료를 얻는다”는 문장 깊이 공감해요. 더 넓게 보자면 동료의 소중함을 아는 조직이 발전하는 거 같아요. 부끄럽지만 저는 반대의 경우를 얼마 전에 지켜봤어요. 모종의 이유로 동료 한명이 퇴사를 하게 되었는데 지켜보는 입장에서 마음이 좋지 않더라구요. 물론 건강상의 이유도 있었지만 직장인의 건강을 업무 강도와 떼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자의반 타의반 떠나는 동료를 보면서 좀 매정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을 시킬 때 열정적이라면 보낼 때도 열정적인 게 맞겠죠. “언젠간 나도…”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습니다.


아매오님, 연간 버킷리스트에서 ‘이직’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올해, 레드카펫 위에서 마구 달리시길 바라겠습니다. 화이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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