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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 Sep 22. 2015

엘비스 프레슬리가 묻는
비극의 이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91

사회주의와 차디찬 결별을 고했지만, 결코 민주적이라고 보기 어려웠던 장개석(蔣介石)의 국민당 정부는 1당 독재와 우익의 백색테러로 대만의 근대화를 시작했다. 패망한 일본이 남기고 간 흔적과 중국 본토를 향한 금지된 기억 그리고 서서히 밀려드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물결을 그대로 껴안고.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전통과 이념, 이상과 현실이 한데 뒤섞인 후덥지근한 대기가 한밤에도 사람들의 숨통을 옥죄이던 어느 여름, 대만 최초의 미성년자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야간학교에 다니는 열네 살 소년이 타이베이의 거리에서 한 소녀를 무참히 살해한 것이다. 연일 대만 신문에 대서특필됐던 그 불행한 사건은 차츰 잊혀갔지만, 그로부터 꼭 30년이 흐른 뒤 양덕창(楊德昌) 감독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A Brighter Summer Day>으로 희미해진 지난 시절의 기억을 다시 더듬는다. 고립된 현대 대만의 불안한 모습에 오래전 그날의 자취가 여전히 짙고도 길게 드리워져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형체 없는 습한 무더위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기 연민과 강박에 시달리는 자신들의 표정 속에. 


대만인들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살인 사건을 통해 1960년대 초의 대만 사회를 재구성한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담담한 필치로 써내려 간 치열한 보고서다. 결코 어느 하나의 시각으로 규정하기 곤란한 시대의 무더운 공기를, 양덕창 감독은 예술가다운 통찰력으로 문학을 인용하고 영화(만들기)로 비유하며 한 개인의 소년기에 농밀하게 녹여낸다. 약 4시간에 달하는 러닝 타임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세밀한 묘사력으로 빼곡하게 채운 폭력과 갈등의 파노라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길게 펼쳐낸 그 감정의 파노라마에 속속들이 파고들어 근대의 비극을 재현하는 음악이 아닐까. 달콤하지만 아주 냉담한 표정으로. 


스코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 나열된 음악들은 어느 영화도 미처 성취하지 못한 감정의 응집력과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를 위한 음악인 스코어를 통해서는 오히려 도달하기 어려운 시공간의 생생한 현장감과 사실감에 근거를 둔다.


흔히 영화에 음악이 삽입될 때 그 소리의 진원지에 따라 영화음악을 화면 내의 음악과 화면 바깥의 음악으로 나누곤 한다. 표면적으로는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이론적인 구분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리얼리티와 음악을 결부시키는 과정에서 꼭 짚어봐야 할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다. 왜 그 음악이 그 대목에서 흘러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곡이 그 장면과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지에 따라 뜻밖의 영화적 쾌감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화면 바깥의 음악은 화면에 멜로디를 유발할만한 어떤 장치도 없지만,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인물의 심리를 은유하는 선율이 어디선가 흘러나와 관객으로 하여금 정서적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스코어의 대부분이 바로 화면 바깥의 음악이다. 반면 화면 내의 음악은 라디오나 가수 혹은 음악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특정 장소나 진원지를 영화 속에 직접 노출시킨다. 이를테면 트럼펫 선율과 함께 트럼펫을 보여주고, 피아노 연주곡이 흐르는 동안 건반을 누르는 손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음악이나 스코어에 대한 개념이 자리를 잡기 훨씬 이전인 무성영화나 뮤지컬 영화에서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던 다소 진부한 기법이다. 그러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그 진부한 화면 내의 음악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뿐 아니라 현실 속에 무심히 흐르는 한 곡 한 곡이 저마다 영화의 퍼즐을 완성하는 훌륭한 조각이 된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ㅣ Warner Music Korea(1993)


이를테면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의 단란한 저녁식사 시간. 라디오에서 일본 노래가 흘러나오자 엄마는 짜증을 내고, 큰 딸은 8년이나 일본군과 싸웠음에도 일본 집에서 일본 노래를 듣고 있다며 한탄한다. 물리적인 전쟁의 승리가 문화적인 패배로 인해 무색해지는 허탈한 순간이다.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에는 매우 짧은 장면이지만, 그로부터 우리는 집 안에 감도는 시대 정서를 살짝 엿볼 수 있다. 그런 장면은 또 있다. 로큰롤 콘서트 직전 대만 국가가 흘러나오자 새로이 규합된 소공원파 패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기를 강요한다. 그리고 굳은 표정의 사람들 틈에서 해군복을 입은 하니가 패거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맹목적인 전체주의로 경직되어버린 사회와 또각거리는 발걸음으로 그 광경을 비웃는 인상적인 제스처다. 한 나라의 국가(國歌라는 상징성이 없다면 결코 이뤄내기 어려운. 


양덕창 감독은 영화로부터 떨어져서 그 안에 음악을 슬쩍 흘려보내고, 진정한 현실에 도달하기 불가능했던 근대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서 음악이 가장 커다란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은 제목에 영감을 주고, 또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리스트를 채우는 로큰롤을 통해서다. 영화에 흐르는 로큰롤은 소년들의 삶을 연결하고, 60년대 대만이라는 희미한 틀 안에 얽히고설킨 그들의 관계를 밝게 조명하기 때문이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긴장감은 전통과 근대 사이의 거리감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의 거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태로울 만큼 가까이에서 혼재되어 있다. 전통은 본토에 뿌리를 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중국이나 일본 또는 미국의 문화에 대비되는 대만 고유의 가치일 수도 있다. 본토로부터 이주한 후, 국어 과목을 낙제하는 바람에 야간학교로 떠밀려나 군복을 입고 로큰롤을 듣는 샤우스의 존재란 바로 그 모든 것의 혼합체다. 그리고 그의 일부를 이루는 로큰롤은 어른과 아이들의 삶을 유일하게 구분 짓는 매개체이자 그들 자신의 목소리다. 하지만 그마저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로큰롤에 열광하는 소년들의 표정이란 근대의 비극을 초래한 이전 세대의 모습을 흉내 내는 것과 다르지 않기에. 이상을 동경하면서도 폭력으로 현실을 제압하고 또 좌절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음악을 통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영화와 사운드트랙 앨범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Why'는 그 모순과 비극의 까닭을 묻는 가장 직접적인 질문일 것이다. 영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두 소년의 사랑 노래는 로맨틱한 이상의 이미테이션일 뿐, 여성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캣의 가성처럼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달콤한 노래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사이에도 무대 뒤편에서 또 다른 갈등이 폭발하는 살벌한 세계다.


로맨틱한 노래와 냉혹한 시대의 날카로운 대비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또 다른 곡 'Don't Be Cruel'에서도 마찬가지다. 소공원파의 새로운 우두머리인 산동과 하니가 담판을 짓기 위해 한적한 공원을 거닐 때, 산동은 달려오는 차에 하니를 떠밀어 비열하게 살해한다. 무대에 선 로큰롤 밴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잔인하게 굴지 말기를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노래하지만, 현실에서 하니는 더없이 잔인하게 죽음을 맞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밝은 눈을 가진 이가 그렇게 사라진 뒤 처절한 응징과 복수가 잇따르고, 사람들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뒤틀린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다른 이면에 존재할 것이라 믿어왔던 사랑과 폭력이 로큰롤 리듬 위에서 아무렇지 않게 봉합되는 순간이다. 


애초에 그것은 근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오해와 묵인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끔찍한 복수 후, 샤우스의 누나는 영어를 모르는 캣을 위해 'Are You Lonesome Tonight'의 가사를 발음으로 받아 적어준다. 하지만 이 영화의 영문 타이틀이자 노랫말의 일부인 "the bright summer day"를 들으며 "a brigher summer day"라고 쓴 그녀는 잘못 알아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오류를 가볍게 눈감아 버린다. 그리고 그때 샤우스의 아버지는 비밀경찰에게 연행된다. 


인간의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밝은 미래를 꿈꾸지만, 그리 밝지 않은 현실은 아버지를 두려움에 떠는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고, 샤우스로 하여금 절망의 끝을 맛보게 한다. 사랑이라 믿었던, 이상이라고 생각했던 샤오밍의 실체가 결코 바뀌지 않는 징그러운 현실임을 발견한 순간 샤우스는 소녀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다. 수감된 샤우스를 찾아온 캣은 엘비스의 사연과 함께 그의 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가져오지만, 그것은 간수의 손에 의해 그대로 쓰레기통에 처박힌다. 현실이 이상에 다가갈 수 있는, 혹은 두 세계가 화해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마저 폐기되어 버린 것이다. 


반복되는 비극의 순환고리처럼 영화는 첫 장면처럼 신입생 명단을 호명하는 라디오 멘트로 끝을 맺는다. 무수한 이름들 속에서 주간 학교 외국어부에 합격한 샤우스의 이름을 듣는 순간 엄마는 깊은 상실감에 휩싸인 채 흐느낀다. 그러나 그녀의 상실감은 단지 샤우스 가족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전통과 근대가 만나 미래와 이상을 향해 다가가야 할 중요한 시점에 대만 역시 서로 화해하고 스스로 바꿀 수도 있었던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뤄냈지만, 여전히 고립된 섬나라인 대만을 돌아보는 양덕창의 눈빛은 쓸쓸한 연인을 향한 엘비스의 로큰롤처럼 아련하다.




01 [02:34] Why

02 [02:27] Poor Little Fool

03 [03:27] Angel Baby

04 [02:00] Don't Be Cruel

05 [03:51] Mr. Blue

06 [02:40] Why(Guitar Instrumental)

07 [02:34] Are You Lonesome Tonight

08 [03:03] The Magic Moment

09 [02:35] Never Be Anyone Else But You

10 [02:24] Only The Lonely

11 [02:23] Peggy Sue

12 [03:03] Are You Lonesome Tonight(Guitar 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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