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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 Sep 19. 2015

피아니스트 전성시대의 빛과 그늘

뤼미에르 형제의 활동사진 상영을 시작으로 피아노는 영화 상영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에 가까워집니다.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진 다른 무성영화들도 사정은 비슷했죠. 언제나 음악이 필요했고, 그 음악은 모두 피아노(혹은 오르간) 연주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무성영화의 태동기에 유년 시절을 보낸 영국의 영화 감독이 자시나리오 작가인 세실 밀튼 햅워즈는 자신의 회고록 『여명기로: 영화 개척자의 회고록 CameTo Dawn: Memories of a Film Pioneer』에 무성 영화를 관람했던 기억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것은 6개의 슬라이드와 40피트 분량의 필름으로 이루어진 <폭풍 The Storm>이라는 짤막한 활동사진이었다. 나의 누이는 피아니스트였는데, 우리는 산책 삼아 가끔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그 영화는 평온한 바다를 보여주는 장면과 더불어 로베르트 슈만의 곡으로 짐작되는 달콤한 멜로디로 시작됐다. 멋진 구름들이 두둥실 떠있는 다른 바다의 풍경으로 넘어가면서 선율이 점차 빨라졌다. 그리고 다시 장면이 바뀔 때마다 은막 위의 폭풍은 더욱 거세졌고, 그와 함께 연주되는 음악도 험악해져서 동굴 입구로 성난 파도가 몰아치는 장면부터 폭풍우가 멈출 때까지 그런 격한 멜로디가 이어졌다. 그리고 음악은 어느새 슈만에서 아돌프 옌센의 곡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피아노가 영화 상영에 반주로 사용되었던 만큼, 그 선곡에 있어서도 자연 고전 음악가들의 피아노 곡들이 중심이 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같은 피아노 곡이라도 은막에 비치는 영상에 따라 서로 다른 분위기의 멜로디가 연주됐다는 사실도 엿볼 수 있지요.


초창기 무성영화의 상영 모습. 한 명의 피아니스트를 기용하는 것이 가장 흔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수많은 악기 중에서 영화 상영 시 굳이 부피도 크고, 이동도 어려운 피아노를 애용하게 됐을까요? 스위스의 음악학자인 한스요르크 파울리는 무성영화에서 피아노의 활약에 대해 특별히 호기심을 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결론에 다다랐죠.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로 일정 수준의 연주 실력을 지닌 피아니스트가 다른 악기 연주자들보다 더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 둘째,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막간에 여흥을 돋우기 위해 출연하는 가수의 반주로도 피아노의 활용도가 높다는 것. 셋째로 소리의 강도나 울림이 다른 악기보다 조절하기 수월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몇 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악단보다 한 명의 피아니스트를 고용하는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였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 가장 찾아보기 쉬운 음악 관련 학원은 피아노 교습소입니다. 음악에 재능이 별로 없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다른 악기에 비해 기본적인 연주 기술을 습득하는데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피아노는 20세기 초에도 대중과 가장 가까운 악기였고, 서부 개척시대에도 선술집 한 켠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자리하고 있을 정도로 보급률도 높은 편이었습니다. 물론 보관 상태도 형편없었고, 조율도 제대로 안된 피아노가 대부분이었지만 연주자만 찾을 수 있다면 피아노가 놓여있는 곳 어디서든 영화 상영이 가능했습니다. 애초 뤼미에르 형제가 카페라는 장소를 영화 상영에 최적의 장소로 꼽았던 이유 중 하나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아직 음반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 당시 카페와 바에서는 손님을 위한 접객 서비스로 피아니스트가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했으니까요.


30초 짜리 활동사진 상영과 보드빌을 결합한 쇼의 극장 광고 


파울리가 지적한 이유 중에서 눈 여겨 볼 만한 대목은 가수의 반주를 맡은 피아노의 경우입니다. 지금처럼 영화 한편을 보고 끝내기엔 러닝 타임도, 상영 시간도 무척 짧았던 초기의 무성 영화들은 상영 자체가 하나의 이벤트에 가까웠습니다. 프랑스를 떠나 영국을 거쳐 마지막에 미국으로 도착한 활동사진은 영화가 발명되기 이전부터 미국인들의 여흥을 책임졌던 버라이어티 쇼인 보드빌(Vaudeville)의 한 꼭지로 활용되었고, 영화 상영 전후로 막간을 이용해 등장한 코미디언과 마술사, 가수들이 연기와 노래를 선보이고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흥을 돋우기 위해 계속 음악을 연주해야 했습니다.


한편 소리의 강약 조절에 있어서 피아노라는 악기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바로 해설자 때문입니다. 그 옛날 우리의 변사(辯士)처럼 영화가 상영되는 중간중간 극의 내용을 해설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끼어들었고, 그때마다 피아노 연주자는 여린 멜로디로 해설자의 목소리가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볼륨을 슬쩍 낮췄죠. 그리고 내레이션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영화에 몰입시킬 수 있도록 피아니스트는 신나게 건반을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잠깐, 신나게 두드렸다고요? 그렇습니다. 


1920년대 극장의 모습. 피아니스트를 중심으로 현악기 연주자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으로 건너온 무성 영화는 이제 더 이상 슈만이나 옌센 혹은 베토벤이 아니라 당시 대중적으로 유행했던 래그타임(Ragtime: 재즈의 전신)과 쿠플레(Couplet: 풍자가요) 같은 대중적인 가요들을 영화 상영 시 반주로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은 공연의 대가로 터무니없이 싼 가격을 받는 어린 여학생부터 노련한 솜씨를 지닌 연주자까지 나이도, 성별도, 실력도 모두 제각각이었죠. 피아니스트의 수요에 비해 공급은 넘쳐 났던 것입니다. 영화가 상영되는 곳 여기 저기서 피아니스트를 고용했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했던 피아니스트들은 영화 상영이 없는 시간에 일자리를 따로 구해야 했을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역사학자 레이첼 로우는 무성 영화 시절 박봉에 시달리는 피아노 연주자들의 고단한 모습을 자신의 책 『영국 영화사 History of British Film』에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이 시기 중요한 음악은 대부분 피아노 음악으로서 그 예술적인 의도가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적합한 음악을 만들려는 시도는 아직 없었다. 피아니스트들은 오후 2시부터 11시까지 일하고 고작해야 주급으로 25실링 내지 30실링 정도의 보수를 받았다. 오전에는 주로 부업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영화 상영 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에서 우스꽝스럽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기도 했고, 멘델스존의 ‘봄노래’가 스케이트를 지치는 겨울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고 해도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즉흥 연주에 뛰어난 몇몇 피아니스트들은 주 당 3파운드의 거액을 받기도 했지만, 나이 어린 소녀들은 겨우 15실링에 만족해야 했다. 상황이 이럴진대 피아니스트들이 자비를 들여 새로운 악보를 구입한다거나, 첫 상영에 앞서 미리 영화를 보며 음악을 맞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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