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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분홍 Jan 13. 2019

첫 크루즈는 서부 지중해(1)

이거 럭셔리한 가요?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첫 크루즈 예약을 마쳤다. 정신을 차려보니 로마였다. ‘나도 참 나다’ 싶다가도 내 말만 믿고 한국에서 날아온 엄마와 언니를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낫다. 셋 중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온 것이다. 


서부 지중해 코스는 로마에서 시작해서 로마에서 끝난다.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을 7박 8일 동안 여행하는 코스다. 사실 말이 로마지, 실제 탑승하는 곳은 ‘치비타베키아’라는 항구로 로마 떼르미니 역에서 1시간 정도 떨어져있다. 크루즈 여행의 특성상 해안도시에 정박하기 때문에 감안해야 되는 사항이다. 로마에서 항구로 향하는 기차에는 대형 캐리어를 가져온 승객들이 가득했다. 오, 함께 할 동행들이라 생각하니 미리 가서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다.


창 밖으로는 바다가 펼쳐지고 기차는 힘차게 바퀴를 굴려댄다.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지중해 크루즈를 타러 간다고!! 


들뜬 우리가 수다를 떨고 있는데, 앞자리 이탈리아 청년이 한 마디 한다.


“저 한국말 공부하고 있어요”


이럴 수가! 지금이야 TV 프로그램에서 나보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들을 볼 수 있지만, 그 때는 강남스타일로 방탄소년단도 없을 때였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한국어를 총동원했다. 그 덕에 우리는 그가 일본어를 공부하다 한국 드라마를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익히게 된 것을 알았다. 역시 언어는 드라마로 배워야 하나, 웃고 떠드는 사이 기차역에 도착했다. 


이탈리아의 날씨는 사람들처럼 몹시 정열적이었다. 설상가상 기차역에는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낑낑대며 겨우 역 바깥으로 나오니 웬 아저씨가 대형 수레를 끌며 다가왔다. 캐리어 하나 당  1유로에 셔틀버스 정류장까지 옮겨주겠단다. 지금 같으면 아이코 감사합니다, 하며 팁까지 챙겨드렸을 제안이다. 심지어 캐리어 안에는 뭐가 필요할 지 몰라 다 때려놓고 온 짐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무조건 아끼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을 때였다. 정중히 거절하니 언니의 얼굴이 무표정으로 변했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셔틀버스 정류장은 햇빛에 달구어진 돌길을 20분 걸어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그래도 곧 크루즈에 도착할 거야, 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셔틀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그곳은 또 다른 아비규환이었다. 3개의 크루즈선이 동시 출항하는지라 크루즈 여행을 위해 각지에서 온 손님들이 뒤섞여 있었다. 1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버스는 몰려드는 승객들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한정적인 자리에 서로 먼저 타려고 몸싸움에 새치기는 기본이었다. 언니는 조용히 읊조렸다. ‘럭셔리 크루즈라며..’


결국 3대의 버스를 떠나보낸 뒤에야 우리는 자리에 안착할 수 있었다.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린다. 바로 우리의 크루즈, 로얄캐리비안 네비게이터 호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너무 커서 한 장에 담기란 불가능했다.


오래전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던 것도 잠시. 체크인을 하러 들어가는 곳은 가건물처럼 보였다. 분명 건물인데 아주 큰 천막으로 뒤집어 씌워놓은 모양이었다. 승객 수속만 마치면 곧 철거될 공간처럼 느껴졌다. 원래 크루즈 터미널은 이렇게 생긴것인가, 크루즈 시설은 어쩌려나 살짝 우려되었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X-Ray 검사와 수속을 마치고 승선을 하니 객실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다행히 방은 만족스러웠다. 엄마는 바로 발코니로 나가 밖을 한참이나 바라보셨다. 오랜만에 보는 소녀같은 얼굴이었다. 객실에 놓인 선상신문을 살펴보는 동안, 나는 딱 한 가지만 바랐다. 이번 크루즈 여행이 제발 럭셔리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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