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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분홍 Jan 13. 2019

첫 크루즈는 서부 지중해(2)

크루즈 여행이 원래 이런 건가요?

제노바, 이탈리아


첫 크루즈 여행의 첫 기항지는 이탈리아의 제노바였다. 생소한 곳이지만 왠지 모르게 좋았다. 이탈리아 북부 공업 중심지답게 항구에서부터 강인함이 느껴졌다. 콜럼버스의 출생지이며 일본 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리’의 배경이 되기도 한 제노바. 밀라노나 친퀘떼레, 포르토피노 등 주변 도시를 방문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이 곳을 찬찬히 걸어보기로 했다.


However, please take note that Genoa is built on hills.


선상신문에서 제노바를 설명할 구절이다. 우리는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맸다. 언덕이 높다면 곧바로 올라가지 않고 지그재그로 걸어가면 쉽다. 항구 옆에는 유럽 최대라는 아쿠아리움이 있었지만 입장하기에는 줄이 너무 길었다. 아쿠아리움을 지나 찬찬히 걸어가니 바로크 양식의 교회들이 모여 있었다. 각 교회의 프레스코화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거리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가리발디 거리에 들어서니 흰 궁전과 붉은 궁전이 보였다. 과거의 궁전과 현대의 공업시설이 공존하는 곳이라니. 마지막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언덕위에 올라가 도시를 조망해 보았다. 콜럼버스도 이 언덕 위에 올라와 바다 너머를 꿈꾸었을까?



빌 프랑쉐, 프랑스


두 번의 밤이 지났다. 눈을 뜨자마자 발코니에 나가보니 어라, 아직 바다 한가운데인데?

항구는 분명 가까이 보이는데 배는 육지가까이 갈 기미가 전혀 없다. 항구가 작거나 수심이 얕은 곳은 크루즈선을 정박할 수 없어 작은 보트인 텐더를 통해 승객을 나른다. 배에서 배로 옮겨타는 경험을 해보고 싶어 우리의 걸음이 빨라졌다. 승선시간은 배에 도착하는 시간이라 돌아올 때는 텐더에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해야 했다.


빌 프랑쉐는 니스와 모나코 사이에 위치한 요지다. 이동시간은 각 30분씩 소요된다.  일단 모나코에 들러 왕궁과 카지노를 방문하기로 했다.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버스정류장이 그려진 지도를 받았지만 이상하게 잘 보이지 않았다. 간단한 영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물어물어 찾았는데, 버스에 같이 올라 탄 현지인 아주머니는 엉뚱한 곳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어쩔 수 없이 가까운 카지노를 방문했다. 세계적인 유명세답게 으리으리했다. 하지만 오픈은 2시간 뒤 오픈이라니 너무하잖아. 우리는 한국에서부터 왔다고요. 아쉬운 마음에 근처 명품거리를 찾아갔다. 그래, 첫날 럭셔리 크루즈를 생각하며 실망했던 마음은 아이쇼핑으로 채우면 되지. 매장에는 한국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신상들이 가득했다. 아름다운 것들을 눈에 가득 담고 나니 거짓말처럼 다시 걸을 힘이 생겼다.


왕궁에 도착했을 때, 우리 셋의 표정은 똑같았다. ’ 정말 왕궁이 맞나?’ 작은 광장을 앞에 둔 단출한 건물. 작은 대포 여러 대가 있는 걸 보면 제대로 찾아온 것 같긴 한데, 외양으로는 아까 본 카지노가 더 왕궁 같았다. 근처의 직원에게 물어보니 정말 왕이 거주하는 왕궁이 맞단다. 왕궁 옆에 있는 성당도 자그마했다. 그레이스 켈리가 이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고, 같은 장소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었다. 그녀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뒀을법한 소담한 꽃들을 보니 모나코를 조금 알게 된 듯했다.


성벽을 따라 다시 걸어 나왔다. 작은 해변이 보였다. 모래가 까끌해 보이지만 청년들은 아랑곳 않고 작은 수건 위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걸어가면서 보이는 항구에는 요트가 가득했고, 농도가 다른 레몬색으로 칠해진 집들은 따스했다. 워낙 작은 나라라 F1 경기 때는 모든 도로를 막고 진행한다고 한다. 화려함과 소박함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에 자연스럽게 그곳에 녹아들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국경을 넘었다. 1시간이 넘어가자 초조해졌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승선 시간이 임박했다. 니스 해변에 내리자마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경보를 시작했다. "여기는 거리, 저기는 해변, 프랑스니까 마카롱은 꼭 사자, 늦었으니 뛰어" 헐레벌떡 겨우 크루즈에 승선해서 열어보니 마카롱은 이미 다 부서져 있었다. 뭐 아무렴 어때. 마카롱은 부서져도 마카롱인 걸!


바르셀로나, 스페인


우리의 기항지 관광은 갱웨이 오픈과 함께 시작해서 닫기 직전까지 계속 되었다. 빡빡한 일정의 최고봉은 바로 여기, 바르셀로나! 항구에 내리자마자 콜럼버스 동상이 반겨준다. 어, 엊그제 봤던 제노바 출신인데? 이태리 사람이지만 스페인 여왕의 후원을 받아 탐험을 했던 이유일까. 실제로 스페인이 지배했던 중남미 곳곳에도 콜럼버스 동상이 있는데 특이한 점은 어느나라에 있든 그의 동상은 항상 바다를 향하고 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는 유명 관광지답게 시티투어버스 노선이 잘 되어 있었다. 티켓 한 장으로 레드와 블루로 나뉜 두 가지 노선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유명 관광지를 전부 들리는 노선인데다 승하차를 무한 반복할 수 있어 몹시 애정하는 방식이다. 이후에도 기항지에 시티투어버스가 있는 곳에서는 무조건 버스를 탔다. 


처음 선택한 곳인 고딕지구였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을 시작으로 해서 가우디의 유명 건축물들을 차례로 순례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감동을 받고 구엘공원으로 옮겼다. FC 바르셀로나 경기장은 버스에서 구경하고, 블루라인으로 버스를 갈아탔다. 케이블카를 타고 몬주익 언덕을 다녀오니 그새 저녁이 되었다. 또 뛰어서 배에 타야 한다. 놀라운 사실은 관광하느라 외부에서 점심도 먹지 않고 하루 종일 다녔다는 것.


이것이 크루즈인가?


우리는 매일 아침 일찍 관광을 나섰고 시간을 꽉 채워 귀가했다. 돌아와서는 저녁 정찬과 쇼를 즐기기 위해 화장을 새로 하고 옷을 차려입었다. 누가 크루즈는 한가하고 여유롭다고 했던가. 우리는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 매일 달렸더랬다. 다행인 것은 60대인 엄마가 딸들보다 잘 걸으셨다. 구석구석 도보관광은 현지인 생활을 많이 볼 수 있어 좋아하셨다.


세 번째 기항지 관광까지 하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언니, 크루즈 여행이 원래 이런 건가?"


"낮에 수영하고 밤에는 술 먹고 춤추고 놀다가 아침에는 쉬느라 밖에 안 나가는 애들도 있대"


"헐, 여기까지 와서? 아깝다"


이 때는 몰랐다. 모든 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리고 8년 뒤의 나는 ‘낮에 수영하고 밤에 놀고 아침에는 쉬느라 밖에 안 나가는’ 그런 애가 되어 있을 것을. 심지어 “이런 게 진짜 크루즈 여행이지!”라고 외칠 줄은.


정말 인생은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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