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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분홍 Jan 10. 2019

똥은 피하는 게 상책

 나는 똥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피하는 타입이다. '아, 여기가 똥밭이구나!' 싶은 그 순간 불쾌감이 느껴지고, 점점 심박수가 올라가면서 두려워진다. 그래서 살면서 똥과 같은 상황을 만나면 무조건 피한다.


 예전 부서장이 일을 맡겨놓고 알아서 하랬다가, 말한 대로 하면 왜 임의대로 처리하냐고 할 때에도, 원룸 집주인이 공동으로 내는 가스비를 아끼겠다고 한겨울 밤에 보일러를 몰래 끌 때도 맞서지 않고 피했다. 똥이 없는 안전한 곳으로! 회사에서는 부서를 옮기고 싶다는 의중을 밝혔고, 맘에 들지 않는 집은 비용을 부담해서라도 새 집을 구해 이사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쾌적한 곳으로 환경이 바뀌었고 더불어 마음의 평화를 연속 한 달 정도는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피하는 게 상책이 아니라 맞서야 한다고도 한다. 알고 보면 된장이나 청국장일 수도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아까 말했지 않나. 나는 똥이 무서워서 피한다고. 그리고 나에게는 똥을 된장으로 만들거나 정화할 능력도 없다. 그런 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 정화조에서 해야 할 일이다. 막상 그 환경에 맞닥뜨리면 물론 냄새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가 힘들 때도 있는데, 시간이 걸려도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똥통 속에서 빠져나왔던 과거의 나를 정말 칭찬하고 싶다.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도 한 마디 남긴다면- ‘앗, 똥이다 싶을 땐 무조건 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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