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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분홍 Apr 04. 2019

로맨틱 코미디 좋아하세요?

넷플릭스 영화『어쩌다 로맨스』

로맨틱 코미디의 필수요소는? 



일단 잘생기고 다정한 데다 재벌급의 재력을 가진 남자 주인공이 필요하다. 여자 주인공은 자다 깨도 머리와 화장이 완벽하고, 엄청나게 덜렁대지만 사람들은 그런 점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직장의 여자 동료와는 라이벌 구도인 반면 베스트 프렌드는 게이다. 그의 역할은 딱 하나, 섹시한 여주인공 돕기! 그의 직업과 인생관은 중요하지 않다. 여주인공이 곤란에 빠지거나 연애전선에 문제가 있을 때 나타나서 해결해주면 그만이다. 친구였던 남자가 알고 보니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결말은 항상 슬로모션으로 달린다. 결혼식을 깨고 그를 되찾으려고!






넷플릭스 영화 『어쩌면 로맨스』는 이런 전형적인 공식을 반박하면서 시작된다. 주인공 나탈리는 영화『프리티 우먼』을 보며 로맨스를 꿈꾸던 소녀였다. 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저런 일은 현실에선 없어. 거울을 봐. 넌 줄리아 로버츠가 아니야."라며 남자가 너를 만나는 이유는 비자 때문 일거라는 더 심한 말을 내뱉는다. 동심이 파괴된 나탈리는 건축가로 성장하지만 여전히 사랑에는 회의적이다. 위의 로맨틱 코미디 공식을 줄줄이 읊으며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시도 때도 없이 넘어지지만, 현실에서 그러면 근육위축증인 줄 알아!"라는 그녀에게 동료는 마음을 좀 더 열라고 조언을 한다. 하지만 마음을 열기도 전에 접근한 사람은 지하철 강도.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라며 핸드백을 대차게 감싸 쥐고 뒤돌아서지만 바로 기둥에 머리를 부딪힌다. 동시에 그녀의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로 바뀌어버린다. 무려 13세 관람가로.


바뀐 인생에서의 그녀는 스타 건축가가 되어 있었고 너무 당연하게도 재벌 남자 친구가 생긴다.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뉴욕 시내가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고층 아파트에는 방마다 가방과 신발이 그득하다. 인생 조언은 당연히 게이 친구 담당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욕을 해보지만, 그럴 때마다 트럭의 '삐'소리와 절묘하게 겹치고 야한 장면도 계속 패스된다. 13세 관람가의 위엄이란! 예상대로 하이라이트는 그동안 친구로만 여겼던 남자동료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결혼식장으로 달려가는 장면이다. 나탈리는 슬로모션으로 달려가서 결혼식장의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모델 같은 신부 옆에 있는 신랑에게 외친다.

"인정해, 난 절대 저 여자처럼 보이진 않겠지. 하지만 난 똑똑하고 친절하고 재밌어! 넌 날 선택해야 돼, 날 사랑해야 돼!! 왜냐하면 난.."


그런데 이상하게 뒷 말이 나오지 않는다. 문득 정말 행복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은 재벌 남자 친구와 함께 있을 때도 아니었고, 남자동료와 일상을 나눴을 때도 아니었다. 제일 신났던 순간은 자신감 있게 일을 마치고 사람들에게 능력을 인정받았을 때였다. 가라오케 파티에서 용기를 내서 못하지만 노래를 불렀고 결국은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도 떠올랐다. 진심으로 소중한 시간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녀가 주체가 되었을 때였던 것이다.


“이럴 수가, 난 나를 사랑해! 난 여태껏 날 사랑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왔어. 그런데 난 날 사랑해야 했던 거야!!” 


이 단순하고도 중요한 진리를 깨닫자마자 그녀는 결혼식장 문을 박차고 다시 나선다. 결혼을 깨고 신부의 자리를 차지하는 대신, 스스로를 제일 사랑하기 위해. 문 밖에 마련된 웨딩카를 집어타고 파이팅 넘치게 달려보지만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장애물에 부딪혀 운전선의 에어백이 터짐과 동시에 나탈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낡은 거리에 있는 아파트도 그대로였고, 회사에서는 자연스럽게 일을 넘기는 동료들도 변함없었다. 바뀐 게 있다면 나탈리의 마음이었다. 그녀는 일을 미루는 동료에게 자신감 있는 말투로 당신 일은 직접 하라는 말을 하고, 회의에 들어가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주도권을 잡는다. 은근히 마음을 표현해왔던 남자 동료에게도 곁을 내준다. 환경은 그대로였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 것이다.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반박하면서 시작한 영화지만 반전 있는 결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용은 뻔해 보일지라도 주제가 주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인생을 한 편의 영화라고 한다면 나는 스스로를 완성해 나가는 주인공이기를 원한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나를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길 기대하기보다는 주체적인 인생을 사는 것이 더 근사한 법이니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사랑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다른 사람도 동일하게 존중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시대의 로맨스물을 만난 것 같아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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