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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분홍 Jan 10. 2019

과거의 샤넬이 현재를 살린다

 2018년을 둘로 나누자면 경제활동을 했던 상반기 두 달과 소비로 경제를 활성화시켰던 하반기 열 달로 나뉜다. 조금 쉬면서 다음 행보를 모색하려던 것이 한 해가 넘어갈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서 걱정하는 주제는 비슷했다.

 

  "뭐 해 먹고살아?" 


 나의 임기응변은 '샤테크'였다. 샤넬백은 가격에 매년 오르기 때문에 중고로 팔아도 구입가보다 더 받을 수 있다고 붙여진 별명인데, 내게는 무려 8년전에 파리 여행길에 충동적으로 구매한 샤넬백이 있었다. 나는 명품 구입 욕이 없는 스타일인데, 이상하게 여행 중에 샤넬백을 꼭 사야만 할 것 같았다. 당시에는 월급을 받으면 '열심히 모아서 부자 돼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혀있을 때라, 웬만한 곳은 걸어 다니고 반찬은 최소한으로 해 먹고 밖에서는 돈을 안 쓰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었는데 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욕구를 억눌렀던 걸까. '내 나이서른도 넘었는데 이 정도도 못 사겠어'하는 오기가 생기더니 겨우 10분 지났을 뿐인데 샤넬의 시그니처인 하얀 아멜리아 꽃이 붙여진 쇼핑백을 손에 들고 서 있었다. 10분 전의 나와 10분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동안의 일념을 10분 만에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그 순간엔 몰랐다. 사람은 그렇게 한 순간에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샤넬백 소유자가 됐지만 우리 사이는 영 데면데면했다. 막상 구입하고 나니 예상보다 내부가 좁아 평소에 이고지고 다니던 내 스타일과 맞지 않았고 샤넬백이 갈 곳은 주말 결혼식밖에 없었다. 그나마 결혼식이 일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시기가 되니 샤넬백이 있어야 할 곳이 여기가 아님을 떠올렸다. 나는 돈이 필요하고, 백은 들고다닐 사람을 원하지 않겠나. 옳다구나! 8년 전 뜻밖의 샤넬백 구입 사건은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나 싶었다.

 

 실제로 중고명품숍에 방문하니 ‘샤테크’는 불가능했다. 보증서의 일련번호를 보면 구입연도를 추정할 수 있어 구입가에 따라 판매가가 책정된다. 나라도 같은 모델이면 최근에 생산된 제품을 갖고 싶을거다. 다행히 나의 샤넬백은 A+등급을 받았고, 좋은 새주인을 만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지난 8년간의 시간이 떠올라 이틀정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몇 달 뒤의 질문도 주제는 동일했다.

 

 "뭐 해 먹고살아?"

 

 나를 걱정해주는 것이 반, 좋은 방법이 있으면 나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이 반인 것처럼 느껴졌다. 잔고가 바닥을 보이면서 나도 그것이 궁금해질 무렵, 어떻게 잘 살아왔는지 헤아려보았다. 월급은 끊겼지만 일상의 소소한 사치는 일정기간 유지되었는데, 한창 급여에 의지해서 질러놓았던 덕분이었다. 단골 미용실과 네일숍에는 멤버십으로 결제해둔 금액이 남아 있어 백수 신분에도 때가 되면 염색을 하고 손발톱의 색을 바꿀 수 있었고, 큰 맘먹고 끊었던 PT 30회차는 회사 다닐 때는 시간이 없어 못 가다가 오히려 퇴사 이후에 여유롭게 누릴 수 있었다. 꿀피부를 꿈꾸며 결제했던 마사지숍은 아직도 4번은 더 관리를 받을 수 있다. 


 심지어 선후배 친구들은 식사를 하고 나서 네가 무슨 돈이 있겠니 모드로 계산대 앞에 먼저 섰으며, 잔고가 이제 정말 바닥이다 싶을 때 3년 전에 사서 묵혀두었던 주식이 올랐는데 현금화시키자마자 거짓말처럼 폭락해버렸다. 남아있는 종목들이 걱정되었지만, 나중에 또 수입이 없을 때 가격이 상승할 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다.

 

 과거의 무계획 쇼핑을 하고 몇 년 동안 오르지 않는 주식을 보유했지만, 마치 흉년에 대비해 풍년에 곡식을 저장해 둔 농부처럼 결국 과거의 소비가 현재의 나를 살렸다. 전 남자 친구에게 빌려준 돈만 받으면 완벽한데 이 또한 미래 언젠가의 일로 미루기로 했다. 올해도 분명 예상치 못한 지출들이 있었는데 자책과 후회 대신 미래의 나를 살려주리라 믿기로 했다. 고마웠다 과거의 소비 요정들. 내년에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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