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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분홍 Feb 11. 2019

10억 나눠드립니다

복권이란 무엇인가

단언컨대 복권만큼 최고의 선물은 없다. 단, 받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주는 입장에서 말이다. 



일단 기본 룰은 대다수의 푼돈을 모아 극소수의 사람에게 목돈으로 몰아주기이다. 언뜻 계모임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액수가 조금씩 다를 뿐 돌아가면서 받기 때문에 수령 확률은 100%다. 단, 계주가 도망가기 전까지는. 복권은 계주가 도망가면서 생기는 온갖 잡음과 그에 따른 사회질서가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국가에서 나선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나라 정기발행 복권의 시작은 1969년 9월 15일에 국민주택기금 조성을 위해 발행된 주택복권이다. 당시 가격은 장당 100원이었고 당첨금은 300만 원이었다고 한다.)



"준비하시고 쏘세요~" / 출처: 경향신문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는 차라리 도망간 계주를 잡아서 횡령한 돈을 받아낼 확률이 더 높겠으나, 현실이 팍팍하게 느껴질 땐 그 희박한 확률이 나에게 오면 100%가 된다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특히 로또 복권의 경우에는 1에서 45까지의 숫자 중 6개를 선택하는데, 직접 숫자를 고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설령 당첨이 되지 않더라도 그것은 희박한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예지력이 없는 나의 탓처럼 느껴져 재도전을 거듭하게 된다.



로또 복권 최고 당첨금은 2003년 4월, 407억 원으로 세금을 제외한 실 수령액은 318억 원이었다. 당시 1등 당첨자들은 급격히 변한 환경 차이로 인해 신변을 걱정하며 해외로 도피(?) 하기도 했다. 최근 1위 당첨금은 최고 당첨금 대비 3~5% 정도 수준인 1~20억 원 선으로, 해외까지는 아니지만 서울에 아파트 한 채 구입하고 자동차는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인간 생존의 기본인 의식주 중에서 특히 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생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걸 주저하게 된다. 오죽하면 집 살 돈이 없어서 결혼 못하겠다고들 하지 않는가. 



이렇게 집을 한 채 장만할 수 있는 기회인데! 복권을 선물한다는 것은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정신이 충만하지 않고서야 여간 어려운 일이다. 만약 ‘그게 뭐라고. 어차피 안 될 텐데’라는 마음으로 준다면 그것 또한 선물을 주는 자세로서 올바르지 않다. 그런 마음이라면 차라리 다른 선물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차피 당첨 안 될 거야’라는 마음으로 선물했는데, 막상 1등에 당첨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 것인가? “어우, 너무 잘 됐네요! 이렇게 잘 될 줄 알았어요. 큰 보탬이 되어서 저도 기뻐요”하며 쿨하게 축복해 줄 자신이 있는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가 더 쿨하게 “감사해요”라는 말로만 인사를 전한다면 동일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가? 분명 동네방네 사돈의 팔촌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내 얘기 좀 들어보라며 구구절절 얘기하는 것도 모자라 이런 경우에 법적으로 지분이 있는지 변호사를 찾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법.

 


이러니 주는 입장에서 마음을 표현하는 최고의 선물은 복권이 되겠다. 이 어려운 일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최근 참석한 4주짜리 독서모임을 마무리하면서 기념 선물로 준비한 것이다. 이 독서모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 모임 오는 것이 한 주의 가장 기쁜 일이라고” 서로 고백할 만큼 분위기가 좋았다. 마침 모임을 하는 곳의 가까운 지하철 역에 복권가게가 있었다. 무려 “1등 당첨자”가 나왔던 집! 이전 당첨자의 기운이 나에게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내 차례가 다가오면서 숫자를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되었다. 



‘번호는 자동으로 할까, 수동으로 할까?’

‘5명인데 다 다른 번호로 했는데 한 명만 되면 어떻게 하지?’

‘그 한 명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다른 번호로 사면 나만 당첨되기를 바라야 하나? 그럼 복권을 주는 의미가 있나?’

‘동일한 번호로 5장을 살까? 1등 당첨자가 많아지면 실 수령액이 적어지는데’

‘실 수령액이 적으면 인생의 운을 이런 데다 썼다고 원망 듣진 않을까’



통계를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복권가게 앞에서 이러는 내가 몹시 우스웠겠다. “모두 당첨 안될 거니 그냥 사”라고 조언을 해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까도 말하지 않았나. (희박한 확률이) 나에게로 오면 확률 100%라고! 



결국은 될 놈 됨(될 놈은 어떻게든 된다)의 법칙에 맡기기로 했다. 1등 당첨자가 나왔던 집답게 우아하게 머리를 올린 여사장님이 시크한 표정으로 복을 나눠주셨다. 자동으로 선택한 복권 5장을 손에 쥐고, 반드시 우리 중 누군가가 당첨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색동 봉투에 한 장씩 넣었다. 나는 미래의 희망이 든 봉투를 펼치며, 각자의 행운을 골라가도록 했다. 그때 보았다. 1등 당첨의 꿈으로 발그레하게 상기된 볼들을. “당첨되면 인간적으로 밥은 한 번 삽시다” “밥이 뭐예요, 거하게 내야지” “아냐,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고 1년 정도는 평소대로 지내줘요”라며 덕담도 나누었다.



번호 유출을 막으려는 필사적인 연필 한자루



곧 결전의 날이 다가온다. 우주의 랜덤한 운이 우리에게 꼭 임하기를! 그리고 이왕 당첨될 거면 옛날 옛적 계모임처럼 돌아가면서 당첨되기를 감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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