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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ul 15. 2020

“화”에 대한 고찰

살다 보면 화나는 일이 있다. 혼자 사는 게 아닌 이상,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내 생각과 다르고 내 마음과 맞지 않아서 갈등이 생기는 일이 있기 마련이고, 내가 원하던 상황과 다르고 내가 하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기분이 좋지 않음을 넘어서 화가 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미성숙한 인간인지라, 평생을 잘 사는 연습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인간인지라 때로는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늘 이성적일 수만 없는 인간인지라, 감정적인 동물일 수밖에 없는 인간인지라 때로는 웃기도 하지만 또 어떨 때는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화를 내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화를 낸다는 것”은 잘못된 일인 것일까. 화를 내지 않는 삶은 훌륭한 삶인가. 늘 웃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저 사람은 무슨 좋은 일이 있길래 저렇게 늘 웃을 수 있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 말이다. 실상은 늘 좋아서 웃는 게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는 나지만 웃음으로써 화를 컨트롤하고 억제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늘 화를 내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단순 명료 간단하다. 화가 나니까 화를 낸다. 화가 나는데 화를 내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화를 낸다. 통상 늘 웃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늘 화를 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일 거라 생각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에서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가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아니 한 명이라도 있겠는가. 부자면 부자만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그 위치만의, 놀고 있는 사람은 놀고 있는 사람만의 어려움과 화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화를 내는 것 그 자체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발전적이지 못하다. 발전적인 논의와 의미 있는 논의는 화를 “어떻게” 내느냐, 그리고 화가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어떻게” 화를 내는 게 의미 있게 화를 내는 것인지 생각해본다. 과연 저게 저렇게 화를 낼 만한 일인가 의아한 상황에 맞닥뜨릴 때가 있다. 남들이 볼 때 딱히 잘못된 상황도 아닌 거 같고, 크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가 커지고 텐션이 업되는 사람을 마주할 때가 있다. 혹은 문제가 발생했지만 충분히 해결이 가능한데, 해결이 됐는데 불필요하게 감정을 폭발시키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합리적이지 못하게”, “혹은 객관적이지 못하게” 화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좁은 길을 가다가 어깨를 부딪히거나, 만원 지하철에서 뒷걸음질 치다가 사람이 나의 발을 밟을 때가 있다. 불편하다.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고의적인 의도도 없었고, 부딪힌 어깨가 탈골되지도 않았으며, 밟힌 발의 뼈가 부러지지 않았으면 조금은 참아볼 만하다. 물론 즐겁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실수할 만한 상황이라는 것을 한번 이해해봄직하다. 나는 화가 날 수도 있으나,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이해해주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또한 나의 잘못이 아닌데 금전적인 손해를 입게 되었다던가, 예정되어 있던 일정이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경우 등 잘못된 상황에 처해지게 되었을 때에도 일단은 당황하는 마음이 먼저 생긴다. 금전적인 손해를 입었을 경우 다시 복구를 하게 되면 더 이상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일정이 연기, 혹은 취소되었을 경우 다시 일정을 잡는다면 조금은 불편하지만 크나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문제 해결을 위해 화를 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황하는 마음이 곧바로 화와 직결되고 이는 일이 잘못된 것 그 자체보다는 잘못된 것에서 비롯한 나의 마음이 불편해지는 데에 따라 화를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그 상황을 바라보자면, 측은지심의 마음을 최대한 발동해 일이 잘못된 것에 대해 불편함이 안타깝기는 하겠지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고 결국 큰 무리 없이 바로잡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하는 의아함이 든다. ‘다 해결되었는데 뭐가 문제일까?’, ‘다 해결해준다는데 왜 계속 화를 내는 것이지?’라는 의아함 말이다.


참을 수 있을 만한 문제라던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기 어렵다. 물론 참을 수 있을 만한 문제라는 것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틀릴 수도 있겠으나 화를 내는 행위 자체가 단순 나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과 나의 문제이기 때문에 다름에 대해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고 양보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불필요한 데 지나치게 화를 내는 것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면 내가 내는 화는 상대방과의 갈등을 야기하고야 만다.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면 상대방과의 갈등 상황 시 상대방의 이해도 구하기 어렵고 제3자에게 나에 대한 지지도 이끌어내기 어렵다. 화를 낼 만한 일에 화를 내고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게 이해가 된다라고 생각해줄 만한 일에 화를 내는 것은 자연스럽고 공감이 간다. 그래야 합리적으로 화를 낸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미 화가 나버렸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 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화에 대한 대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나는 화가 있고, 다른 사람과의 갈등에 대해 상대방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나 자신에 대한 화는 긍정적인 요소가 있고 발적적으로 대처할 가능성이 많다. 나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으로 시작해 다음에는 이러지 말아야지, 다음에는 더 잘해봐야지라는 각오와 다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다만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바람직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학대(담배, 술, 약물 등)로 이어지는 경우도 가끔 있고 나아가 너무나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가끔 접하게 된다. 누가 봐도 잘못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화는 어떤가. 일단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은 충분히 어필을 할 수 있다. 일이 잘못됐을 경우 적절한 감정표현을 통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잘못된 일에 대한 경각심과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는 것은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같은 사항에 대해 여러 번, 지속적으로 화를 내는 것은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일이 잘못된 것에 대해 당장 화가 나서 한 번쯤 화를 내더라도 거기서 그치는 게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했던 말 또 하면 듣기 싫고 냈던 화 또 내면 상대방도 화가 난다. 화와 화가 부딪히면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그뿐만이랴.  A에게서 난 화를 B한테 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상사한테 깨지고 나서 부하직원한테 화를 내는 경우는 화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다. 오늘 출근하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다. 화가 날 수 있다. 그러나 화가 나면 화가 나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고, 그 이유를 해소하는 것이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엉뚱한 데 화풀이해봤자 내 화가 진정되기 어려울뿐더러 다른 사람까지 화가 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해봤자 종로에는 변화가 없다. 종로에서 뺨맞았으면 종로에서 다시 뺨을 때리든지 종로에서 용서를 해주든지 해야 된다. 다른 사람한테 혼나고 엉뚱한 사람들한테 화를 내봤자 아무도 이해 안 해준다. 화가 났으면 화가 나게 된 상황과 화를 유발한 사람에게서 대처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어떻게 화를 내던지, 화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던지 마음에 크고 작은 생채기는 남기 마련이다. 화를 내고 난 다음 마음이 후련하고 편안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화를 내고 난 후 느끼는 상대방에 대한 어색함과 조금만 더 참아볼 걸 그랬나 하는 후회와 부끄러움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정도 남기 마련이다. 화가 나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한번 화를 내보지 않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화를 내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뿐만 아니라, 나의 감정과 삶에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급한 일이 없는 이상 차를 천천히 몰고 가는 편이다. 혹여나 사고 났을 때 처리를 하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조금 느리게 감으로써 빨리 가지 못한 것과 비교하여 허비된 시간과, 빨리 감으로써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대한 시간과 노력을 비교형량 해보았을 때 후자가 더욱 아깝고 번거롭고 싫기 때문이다. 화를 표출했을 때 발생하는 관계의 어색함, 민망함과 화를 내지 않았을 때 내 마음속에 쌓이는 답답한 감정 중에 나는 후자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속에 꾹꾹 담아둠으로써 나중에 폭발하는 잘못된 결과도 가끔씩은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참아보고자 한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나 혼자 짧게 화내고 그쳐 보고자 한다. 자연스럽게 드는 화나는 마음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화가 나는 마음을 최대한 빨리, 그리고 되도록이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소해보고자 한다. 잘못된 일이야 빠르게 수정하면 되는 것이고, 감정으로 생긴 변화는 즐거운 감정으로 대체하면 된다. 지금 내가 화를 내는 것이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으며 결국 나만 손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회피와 도피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직접 마주하고 빠르고 효과적으로 해소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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