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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ul 08. 2020

 가만히 있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

* 오지랖이 넓다 : 무슨 일이고 참견하고 간섭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내가 겪어본 일이고, 혹은 내가 더 잘 아는 것 같고, 또는 내 생각과 달라서 한마디 하고 싶어 참견하고 싶은데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용기. 어쩌면 나서는 일보다 더 담대해 보이고 더 적극적으로 여겨진다. 어떤 때는 참견이라고 표현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오지랖이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남의 일에 간섭하는 일. 입이 근질근질해 한마디 하고 싶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입을 떼고야 마는 사람들이 있다.


(1) 내가 겪어본 일

분명 내가 겪어본 일이고 해 본 일이기에 저렇게 하면 안 되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 돼, 이렇게 해야 돼”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직 상대방이 경험이 미숙한 것처럼 보여 나의 경험을 공유해주고 좀 더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려는 선한 의도로 얘기를 해 주고 싶은 것이리라. “내가 해봤는데”, 혹은 “내가 겪어봤는데”로 말문을 떼기 시작한다. 어찌할 바를 전혀 모르는 상대방한테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리저리 해보고 실패하는 과정 중 단시간에 좋은 방법을 찾는 지름길을 제공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 상대방도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있고, 누군가 조언해줬으면 좋겠다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는 전제 하에. 스스로 찾아보고 싶고,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또한 소중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런 조언은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옆에서 입이 근질근질한 사람은 상대방이 정말 나의 조언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 일에 대해서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때로는 라떼는 말이야로 들려지고, 꼰대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2) 내가 더 잘 아는 일(사실은 잘 아는 것 같은 일)

어떤 자신감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상대방보다 내가 이 일에 대해 더 잘 아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상대방이 더 잘아는지 내가 더 잘아는지 한번 진지하게 자웅을 겨뤄본 후에 더 잘 아는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하자라고 하는 과정이 있었으면 불편한 상황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오지랖이, 참견이 어디 그런 속성이 털끝만큼이라도 느껴지는 단어인가.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상대방은 잘 모르는 것 같아 보이고, 합당한 이유는 없지만 내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하기에 기어코 조언을 가장한 지시가 입 밖으로 나오게 된다. “왜 이렇게 하는 게 낫지요?”라는 질문의 대답은 “너가 잘 모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이다. 진짜가 나타났을 수도 있다. 진짜 내가 더 잘 아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불편한 상황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내가 더 잘 안다라는 근거를 제시하고 오지랖과 참견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대부분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대부분은 과정은 생략되고 “이렇게 해라”라는 결론만 얘기한다.


(3) 내 생각과 다른 일

오지랖과 참견의 정점에 달하는 일이다. 오렌지주스를 마실 때는 유리컵에 마셔도 되고, 플라스틱 컵에 마셔도 된다. 그뿐이랴. 파란색 컵에 마셔도 되고 노란색 컵에 마셔도 된다. 결론은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일에 굳이 참견을 해서 오렌지주스는 찬 음료이니 유리컵에 마시면 물기가 생길 수가 있어 플라스틱 컵에 마시는 게 좋다라고 말해버린다. 물기가 생기는지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유익한 조언이 될 수 있겠으나, 물기가 생기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고 유리컵이 더 좋아서 유리컵에 마시고 싶은 사람이라면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유리컵도 있고 플라스틱 컵도 있는데 유리컵을 더 좋아하나 봐?”라고 물어본다면 불편한 상황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유리컵에 마셔”라고 해서 문제가 발생하고 불편함이 발생해버리는 것이다. 그런 것까지 참견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이 들 수 있으나, 그런 것까지 오지랖을 떠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한마디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지하철을 타도 되고 버스를 타도 되는데 지하철이 낫다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고, 전화부터 하고 메일을 보내도 되는데 메일을 보내고 난 후에 전화하라고 지시하는 상사가 있으며, 8시 50분에 출근해도 문제가 없는데 8시 30분까지 출근하라고 하는 팀장도 있다. 답은 없다. 서로가 생각하는 좀 더 나은 방법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생각이 다르지만 결과에 큰 문제가 없는 일이라면 그냥 두면 된다. 오지랖을 통해 내 생각을 얘기하고, 나아가 내 생각을 강요하게 되면 갈등만 있을 뿐이다.


어떤 경우이든, 무슨 상황이든 다른 사람의 간섭과 오지랖은 행복한 결과로 나타나는 일이 드물다. 내가 겪어봤지만, 내가 더 잘 알지만 혹은 내 생각과 다르지만 상대방이 스스로 하도록 놓아두고,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 주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참견하지 않는 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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