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방인 Jun 29. 2021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왠지 모르지만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의 마음에 드나보다. 그렇다면, 나를 좋아하는 그 사람에 대해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남녀상열지사만의 일을 얘기하자는 건 아니다. 남, 녀, 노, 소를 떠나 사람과 사람의 호감에 관해 얘기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1.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고 나도 그 사람을 좋아한다.

최상의 결과이다. 잘 몰랐지만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나와 비슷한 점도 많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다. 웬걸, 심지어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네? 할 얘기가 무궁무진하다. 같이 할 수 있는 일, 같이 하고 싶은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 서로 만나는 일이 잦게 되고, 서로 의지도 하게 된다. 업무를 할 때도 많은 조언을 구하게 되고 같은 부서에 배치받기라도 하면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된다. 바람직한 현상이고, 즐거운 일이다.


2.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데,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게 싫어한다라는 말과 같지는 않다. 어떠한 이유로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나를 좋게 봐준다는데 당연히 싫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싫지는 않지만 딱히 좋지도 않다. 그 사람이 나에게 보여주는 호감만큼, 나는 그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냥 아는 사람이고, 그냥 가끔 마주치는 사람일 뿐이다. 어쩌다 같이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며 굳이 어제는 뭐했니, 요즘 기분은 어떻니 등등의 일상적인 안부까지 물어보며 지낼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꾸만 물어본다. 약간 부담까지 느껴진다.


남녀 사이의 일일 경우 한 사람만 좋아하고 한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 현상이 굉장히 슬프고 굉장히 안타깝게 느껴진다. 밤 11시에 ‘자니?’라고 보낸 카톡에 답장을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이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밤에 자는 건 당연한 일인데 굳이 자냐라고 물어본다는 건 내가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같이 얘기를 나누고 싶다라는 표현이라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으므로 일단 이 사람의 호감은 확인이 되었으나, 이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은 아직 잘 모르겠거나, 혹은 필요 이상으로 친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가 된 상황이라면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밤 11시에 굳이 대화도 나누고 싶지가 않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학교, 직장 등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상황일 수 있다. 친구가, 동료가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데 그 호감이 기쁜지 부담스러운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누구인지 알고는 있지만 사실 딱히 친하다고까지 생각은 들지 않는 선배가 점심식사라도 같이 하자라고 제안을 해왔을 때, 어떻게 해야 되나 너무나 고민스럽다. 거절을 하자니 나를 좋아하는, 혹은 좋아하려는 단계에 접어든 사람의 호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께름칙하고, 그렇다고 같이 먹자고 하기에는 같이 있는 그 시간과 공간이 너무나도 어색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게 뻔하다. 아직 그 사람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내가 먼저 나설 생각은 없었지만, 어쨌든 잘 알지 못하던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나에게 호감이 있는 사람과 친해져서 나쁠 것도 없으니 ‘네, 좋아요’라고 말할 용기가 생기면 다행이다. 그럴 용기가 생기지 않을 때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것은 나의 성격 탓일 수 있다. 나같이 내향적인 사람들은 남들이 베푸는 호의를 호의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담스럽게 느끼거나 어색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이 싫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모르는 사람과 어색함을 이겨내는 그 과정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매일 보게 되고, 매일 만나게 되면(학교에서 같은 반이 됐다거나, 회사에서 같은 부서가 됐다거나 등) 그러한 어색함이 자연스럽게 희석될 수 있겠으나, 자연스럽게 마주치지는 않는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호감을 표시해 올 때는 부담이 느껴진다. 그런 어색함에 개의치 않거나 활달하고 외향적인 사람은 그런 일을 즐길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더불어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은 현재 나의 상황 탓일 수도 있다.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은 분명히 들지만, 현재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사람 사귀는 일에까지 여유가 없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아 사람 사귀는 일이 조금 두려워졌을 수도 있으며, 병든 가족이 있어 슬픈 마음에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쓸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그러한 나의 상황을 알고 다가오는 건 아닐 테지만, 현재 저는 상황이 이렇게 때문에 죄송하지만 사람들과 친해질 여유가 없어요라고 설명하는 것도 망설여지게 된다. 친한 사람이면 이해할 테지만, 친해지자고 다가오는 사람은 이해 못 할 수도 있고, 그간의 호감이 비호감으로 변질될까 하는 우려도 생기기 때문이다.


대놓고 친해지자고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은연중에, 은근슬쩍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호감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게 자연스럽겠지만, 때로는 억지로라도 마음보다는 머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때도 있다. 계산적으로 사람을 만나자는 말이 아니라, 어색함과 낯설음이라는 마음을 호감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라는 생각과 호감을 표시한 용기에 대해 화답해야 한다라는 머릿속에 드는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라는 말이다. 나의 성격과 나의 상황만 중요한 게 아니라, 손을 내민 사람의 성격과 상황도 중요하고, 그 손을 잡는게 결국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좋은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20.4.6)”에 대한 후속작으로 써 본 글이다. 이 글이 여전히 내가 쓴 글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있다라는 점에 대해 의아함을 가지면서 말이다.



이전 07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