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 안부를 물어올 때가 있다. 내가 휴가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고 회사 동료가 휴가 즐겁게 보냈냐라고 물어볼 때가 있다. 내가 중요한 계약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친구가 계약 잘 마쳤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고민이 되었다. 안부를 묻는 말에 잘 지낸다라고 대답을 해보았다. 휴가 즐겁게 보냈다고 대답하고 계약 잘 마쳤다고 대답해보았다. 예상했던 대답이고 뻔한 대답이고 재미없는 대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앞에 간단한 말을 덧붙여 보았다. “덕분에” 잘 지낸다라고 대답을 해 보았다. “덕분에” 휴가를 즐겁게 보냈고 “덕분에” 계약을 잘 마쳤다라고 대답해보았다.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 상대방이 웃은 것이다. 재미없는데 웃는 일은 없다. 기분이 나쁜데 웃는 일은 없다. 내가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내 덕분이라고 말하는 이유와 저의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하는 사람도 없었고 따지는 사람도 없었다. 돌아오는 건 상대방의 웃음소리와 함께 다행이다라는 말이었다.
사실이다. 나의 안부와 일처리에 상대방이 사실 도움을 1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분에”라는 말을 덧붙여본 이유는 어쨌든 물어보는 그 순간만이라도 나의 안부를 걱정해주고, 나의 일에 궁금증을 가져 준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감사인 것과 동시에, 구구절절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얘기함으로써 재미없는 대화로 전락하고 마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간단한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물론 내가 상대방 덕분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는 있다. 가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거짓말처럼 보일 수도 있으며 상투적인 말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상대방에게 건강 괜찮냐라고 물어봤을 때 상대방이 나에게 염려해준 덕분에, 신경 써 준 덕분에 괜찮다라고 대답이 돌아온다면 나는 내가 해 준 것도 없는데 왜 가식적으로 말하느냐라고 따지고 싶은 생각보다는 상대방의 상태가 괜찮다는 데에 안도하는 마음이 앞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의 생각도 나랑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심이냐고 따지고 싶은 생각보다는 그냥 자연스러운 웃음으로 화답하고 싶은 생각과 잘 지내는 것 같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될 것 같다. 혹은 심지어 다음에는 상대방이 “진짜로 내가 좀 도와줄 게 있을까 생각해봐야겠다”라는 놀라운 생각을 이끌어내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물론 안부를 묻는 상대방의 질문 자체도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상투적인 수단에 불과했을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도 “덕분에”는 상투적인 물음에 대해 상투적으로 화답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우에도, 저런 경우에도 단 세 글자 “덕분에”라고 앞에 덧붙이는 일은 상대방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결과로 다가온다는 확신이 들었다. 심지어 재밌기까지 하다. 좋은 결과로 다가오고 재밌기도 한 일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앞으로도 계속 “덕분에”라고 말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