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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an 16. 2020

선택지를 줘보자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를 부여받는 것이고, 내가 결정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구매해야 할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선택이 없는 상황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고 자유가 없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상황대로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답답함과 억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때로는, 어떨 때는 선택을 하는 일 자체가 부담으로 느껴지고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너무나 많은 정보와 너무나 많은 종류의 상품들이 넘쳐나고 있는 세상이다. 너무나 맛있는 음식들도 많다. 구내식당이 없는 회사에서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하는 일은 너무나도 중대한 문제인 동시에 너무나도 고민이 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점심 메뉴 선정은 주로 연차가 어린 직원들한테 맡겨지곤 한다. 연인들 간의 사이에서도 이러한 일은 허다하게 발생한다. 모처럼만의 데이트를 하기로 한 경우 어떤 근사한 식당을 함께 가야 할까 고민되는 경우가 많다. 점심을 먹고 영화를 볼지, 놀이공원을 갈지, 미술관을 갈지 너무나도 많은 선택지 앞에서 어떤 스케줄을 짜야 서로에게 기쁨이 되고 서로에게 더욱더 호감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일은 선택의 기쁨보다는 선택으로 인한 고민과 걱정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에 C(choice)가 있는 것이라고. 그만큼 살아가는 데 있어 “선택”이라는 문제는 너무나도 중요하기도 하고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이러한 선택에 대한 고민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나의 선택으로 인해 상대방과의 기분과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데 점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오늘 회사에서 어떤 메뉴로 점심을 먹을 것인가 나에게 선택의 권한이 주어졌을 때 내가 어떤 것을 먹어야 만족할 것인가라는 고민이라기보다는 함께하는 직장 동료와 상사들이 내가 어떤 메뉴를 제안했을 때 좋아하고 나를 높이 평가할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의 고민인 것이다. 연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영화를 보고 싶지만, 상대방도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일까, 볼링을 치고 싶어 하지는 않을까, 드라이브를 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까 하는 무수한 선택지 속에서 어떠한 제안을 해야 상대방이 나를 더 좋아하게 될까라는 고민인 것이다.


그렇다고 나에게 주어진 선택의 권한을 상대방에게 넘겨버리는 것도 썩 바람직한 결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회사 점심메뉴를 묻는 팀장님의 질문에 “저는 다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했을 때 돌아오는 것은 “아무 생각이 없냐”라는 핀잔뿐이다. 사실 다 좋아하지도 않고 먹고 싶은 메뉴는 있지만 상대방의 기호와 기분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에 선택권을 넘겨버린 것이지만 말이다. 연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일 만나서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서로 간에 선택을 넘겨버린다면 만나고 싶은 건 맞니라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자유에 책임이 따르는 것처럼, 선택에 대한 책임도 따른다. 그러한 선택에 대한 책임을 나 홀로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사람들은 결국 선택을 포기하는 일까지 발생해 버리는 것이다.


좋은 방법이 있다. 내가 선택권을 가지면서 나 홀로 책임을 지지 않는 방법 말이다. 그것은 바로 나의 선택을 상대방과 공유하는 것이다. 오늘 점심메뉴를 물어보는 팀장님의 질문에 돈가스 어떠냐라고 대답했을 때 팀장님이 돈가스를 좋아하면 다행이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 서로 간에 어색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돈가스 혹은 김치찌개 어떠냐라고 대답을 해 보는 것이다. 1차적인 선택은 나에게 주어졌지만 무수히 많은 선택지 중에서 조금 더 편하게 선택을 할 수 있게 범위를 좁혀보는 것이다. 그리고 좁혀진 범위 안에서 상대방으로 선택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선택의 범위를 좁혀졌을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을 쉽게 할 수 있는 경향이 있다. 100가지 메뉴 중에서 골라야 되는 것이 아니라, 돈가스와 김치찌개 2가지만 비교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가 한식을 좋아하는지 양식을 좋아하는지 아직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데이트의 저녁 메뉴로 삼겹살을 제시하는 것은 너무나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삼겹살 아니면 스파게티 어떠냐라고 물어본다면 자연스럽게 더 좋아하는 메뉴를 얘기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혹은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쌀국수는 안 좋아하느냐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역으로 제안받는 놀라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나 혼자 밥을 먹거나 나 혼자 시간을 보내는 상황에서 선택은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과 함께 해야 하는 경우 선택은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그러나 선택을 공유함으로써 상대방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되고, 상대방에게 선택의 자유와 기쁨을 주는 것과 더불어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람이 될 기회도 얻게 된다. 선택이 고민이 아니라 공유가 되고 배려가 될 수 있는 기회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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