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방인 Jan 16. 2020

감사하다라고 말하면 뭐 어떻습니까

'

 몇 년 전 일이다. 아내와 함께 택시를 탈 일이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요금을 지불하고 아내는 기사님께 “감사합니다”라고 얘기를 한 후 택시를 내렸다. 나는 “저 사람은 저게 자기 일이고, 돈을 받기 위해서 운전을 한 건데 뭐가 감사하냐?”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아내가 한 말은 “어쨌든 운전하느라 고생했고 나를 태워줬으니 감사하다라고 얘기한 건데 뭐 어떻냐”라고 대답을 했다.      


 집에 돌아와 혼자 낮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감사하다라고 말하면 뭐 어떻냐. 손익계산이 빠른 나는 감사하다라고 말을 했을 때 어떤 이익 혹은 손해가 있을지 머리를 굴려보았다. 우선 물질적 손해가 있는지 따져보았다. 사실 별로 감사하지는 않지만 감사하다라고 말을 하면 내 통장의 잔고가 줄어들거나 카드값이 더 나올까? 답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심정적인 손해가 있는지 살펴볼 일이었다. 사실 감사하지도 않는데 감사하다라고 말하면 내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거나, 내 자존감이 낮아질까? 혹은 기분이 나쁘거나 우울해질까? 그것도 아닌 거 같았다. 그렇다면 감사하다라고 말하는 게 딱히 손해 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이 손해만 되지 않는다고 해서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익이 되고 유익이 있어야 행동을 하는 것이 사람인 것이다. 일단 손해는 없으나 이익은 있을까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한번 해볼까, 어차피 손해는 없잖아, 내가 몰랐던 이익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실험의 첫 번째 대상은 영감을 준 택시였다. 평소 택시를 잘 타지 않지만, 감사하게도 회사의 업무택시 이용제도 덕분에 택시를 탈 기회가 종종 생기게 되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계산을 하고, 감사하다라고 얘기하고 택시를 내렸다. 나한테 어떤 이익이 생겼는지 감이 바로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후에 택시를 탈 때 다시 한번 말해보았다. 여전히 모르겠다. 세 번 네 번 말해봐도 모르겠다. 택시만 가지고는 잘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에 실험대상을 확대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곳, 회사였다. 얼굴을 대고 감사하다라고 말하기엔 뭔가 쑥스러웠다. 그래서 전화할 때 한번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해보았다. 전화를 끊을 때 사실 감사하진 않지만 그냥 감사하다라고 말하기 시작해보았다. 감사하다의 의미는 사실할 말 다 끝났습니다, 전화 끊으십시오라는 의미였다.


 나에게 어떤 이익이 생기고 변화가 생기는지 정확히 계산할 수 없고 와 닿지 않았지만, 나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실험하는 차원에서 감사하다라고 여기저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변화를 찾을 수 없다면, 외부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궁금했다. 내가 감사하다라고 말을 했던 택시기사님들, 한번 보고 아마 죽을 때까지 다시 보지 않을 가능성이 많을 그 사람들은 나를 돈 낸 사람으로 기억할까, 아니면 감사하다라고 말을 했던 사람으로 기억을 할까. 모르긴 모르지만 아마 감사하다라고 말을 했던 사람이라고 기억했을 가능성이 많을 것 같다. 택시를 내릴 때 모든 사람들이 돈을 내지만, 모든 사람들이 감사하다라고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나에게 전화를 건 사람들은 02-2124-3131로 전화를 했을 때는 감사하다라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했었지라고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자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고, (-)로의 특별함이 아닌 (+)로의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범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 삶의 행동과 태도에 관해 들었던 비유 중 중학교 때 들었던 비유가 아직 생각이 난다. 그 비유는 콩나물에 관한 비유였다. 콩나물을 키울 때는 콩나물시루에 심어놓고 물을 주면서 키운다. 물을 줄 때 살펴보면 시루 밑으로 물은 다 빠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콩나물은 날이 다르게 쑥쑥 커간다. 콩나물에 물을 주듯이 당장 생각하기에 무의미해 보이고 효과 없어 보일지라도 하고 또 하다 보면 성과가 생기고 나도 모르게 잘하게 된다라고 적용을 했을 때, 행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감사하다라고 말을 하고 다니는 일은 콩나물에 물을 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콩나물은 자란다. 콩나물처럼 나도 자랄 것이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상대를 칭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만 자라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루를 살면서 단 한 번뿐일지라도 감사하다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하루의 삶을 보람되게 생각하게 될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감사한 일을 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직 나는 실험 중이다. 손해가 되는 일이면 그만뒀겠지만, 이익이 되는 쪽으로 마음이 굳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작은 일에도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가고,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도 성장해가길 바라고 있다. 불평을 하는 사람보다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감사하다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 나아가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자 오늘도 감사하다라고 말해본다.

이전 03화 내가 싫으면 남도 싫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