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어려서부터 내가 특별히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주위의 사람들이 먼저 나에게 다가오는 일이 많았고 나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법,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잘 터득하지 못했고, 친해지는 과정이 굉장히 낯설고 서툴다.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에게 다가갔다가 실망한 적도 많았고,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긴 적도 많았던 것 같다. 내 마음속에는 “친하다”라는 경계선이 굳게 쳐져 있는 것 같다.
친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어간다는 의미 이리라. 물론 100명의 친구보다 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단 한 명의 사람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을 알고 많은 사람들과 두루두루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은 사회생활을 잘할 가능성이 많다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겠다. 어차피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이고, 학교나 직장도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이 되느냐에 따라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한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단순히 알고 지내는 것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너무나 다른 개념이라는 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다. 이름과 얼굴을 안다는 것이 곧 그 사람을 안다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한쪽은 단순히 아는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쪽만 친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는 그 사람을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서로 알아가고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장기간 함께 하지 않는다면 친하다는 말은 사실 쓰기 굉장히 조심스러운 단어이다.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사이는 친한 사이일까? 반대로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거절하면 친하지 않은 사이일까? 나를 책망하는 사람은 나와 친하지 않은 사이일까? 내 칭찬만 하는 사람은 나와 친한 사람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어떨 때는 너는 나와 친하니? 라고 직접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친하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을 때 저게 정말 저 사람의 본심인지 아닌지 궁금해진다. 나와 친하냐고 물어봤을 때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안 친하다라는 말은 너를 잘 모른다. 나에 대해 너는 모른다. 조금 더 나아가면 나는 너와 맞지 않다로 확장되어 생각이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사실 안 친하다라는 말을 내뱉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친한지 안 친한지 굳이 구분을 해야 하는 것인가? 알고 지내고 원만하게 지내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친함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기준에 부합한지 미달되는지 구분하는 일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조금은 다른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모든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는 사람은 친함이라는 경계선이 희미하다. 주위에 늘 사람들이 있고 내가 원할 때는 누구라도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사람들 말이다. 반면에 조금은 내성적인 사람들은 친하다라는 경계선은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다. 친한 사람이 아니면 나의 마음을 나누는 일이 굉장히 어색하고 굉장히 어렵게 느껴진다. 어떨 때는 친하지 않은 사람은 나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방어벽으로 작동할 때도 있다. 말을 하기 전에 말의 내용보다는 말을 듣는 상대와 나와의 관계를 다시 한번 설정하는 일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 있어 조언이 아닌 위로를 받고 싶을 때, 화나는 일이 있어 그 일에 대해 욕을 하고 싶을 때, 기분 좋은 일이 생겨 내 기분을 나누고 싶을 때, 아무 이유 없이 우울해져 그냥 아무 얘기나 하고 싶을 때 등 큰 의미 없이 큰 목적 없이 큰 부담 없이 마음을 나누고 털어놓고 싶은 순가에 친한 사람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친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주절주절 얘기를 털어놓았을 때 시큰둥하거나 어쩌라고 등 예상외의 반응이 돌아오면 괜히 얘기했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친한데 이런 시덥잖은 얘기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 않나라는 실망감도 든다. 한번 든 실망감은 금방 없어지지 않는다. 다음번에는 그 사람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진다. 친하다고 생각해서 얘기했는데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얘기했을 때의 반응이 돌아온다면 당황스럽고 실망할 수밖에 없다. 친해서 더 많이 바라고 더 많이 실망한다는 내용의 글을 쓴 적도 있는 것처럼.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건 소유욕에서 비롯된 마음인 것 같다. 나와 친한 사람은 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친해지는 과정은 저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인 것 같다. 그래서 모든 사람과 친한 사람은 그 누구와도 친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 또한 든다. 공공재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내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다. 모든 사람과 친한 사람은 모든 사람의 소유이고 내 소유가 아니다. 내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필요할 때 활용은 할 수 있겠지만 애지중지 다루지도 않고, 그 사람 또한 내가 없어도 상관없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친한지 안 친한지 구분하는 일, 아니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일.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