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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Oct 23. 2020

맞는 건 맞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용기

1. 나와 친한 사람이 있다.


1-1. 나와 친한 친구가 최근에 겪었던 일에 대해 얘기를 하였다. 직장 상사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본인을 힘들게 했다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인지 모르지만 사이가 틀어져서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다고 한다. 9시가 출근시간임에도 불구하고 8시 30분까지 오라고 하고, 퇴근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업무지시를 내리며 오늘 마무리하라고 하질 않나, 퇴근 후에도 수시로 전화를 해서 업무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 있다고 한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되지 않겠냐, 사이가 안 좋더라도 상식에 맞는 지시를 해야 되지 않겠냐며 하소연을 한다. 맞는 얘기다. 감정은 감정인 거고 업무는 업무이다. 합리적이고 합당하게 업무지시를 내려야 한다며 맞장구 쳐주었고,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로해주었다.


1-2. 나와 친한 친구가 최근에 겪었던 일에 대해 얘기를 하였다. 직장 상사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본인을 힘들게 했다는 것이었다. 어제까지 중요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는데, 다른 밀린 업무가 많아 마무리하지 못해서 꾸지람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본인이 노느라고 일을 안 한 것도 아니고, 게을리한 것도 아니며 다른 일이 많았기 때문에 못한 것이므로 억울하다고 말하며, 그렇게 혼낼 거면 상사가 직접 하지 그러냐며 나에게 분풀이를 했다. 부하를 도와주는 게 상사의 역할 아니냐며 아쉬움도 토로하였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조금 헷갈렸다. 그래도 너에게 주어진 일은 완수해야 되지 않겠냐라고 얘기했다가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될 것 같았다. 그래. 조금 동의하기는 힘들지만 친구의 말이 맞겠지라고 생각하고 같이 욕을 해주었다.


2.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2-1.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우연히 얘기를 하게 될 기회가 생겼다. 이런저런 얘기를 어쩔 수 없이 하던 도중 최근 밤늦은 시간에 층간소음으로 화가 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층간 소음을 겪어보았으므로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충분히 상상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사람이 힘든 상황이라는 게 어째서인지 싫지 않았다. 밤늦은 시간에 쿵쿵거리는 건 윗집의 잘못이라는 걸 모르진 않았으나, 이 사람의 잘못도 있지 않을까 애써 머리를 굴려보게 되었다. 그 결과 이 사람을 위로해주기는 커녕 “여러 사람이 같이 사는데 서로 이해해야지요”라고 말했다.


2-2.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우연히 얘기를 하게 될 기회가 생겼다. 이런저런 얘기를 어쩔 수 없이 하던 도중 비보호 좌회전은 직진신호가 빨간 불일 경우, 맞은편 차가 오지 않을 경우 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무슨 말이냐, 비보호 좌회전은 직진 신호일 때 하는 것이라고 큰 소리를 내며 얘기를 하였다.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며 내 마음이 요동쳤다. 잘 걸렸다, 이런 기회에 실컷 핀잔을 주고 이런 기회를 빌어 실컷 화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친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맞지 않는 말이라고 해도 편을 들어주고 싶고, 맞는 것처럼 느끼고 싶다. 무슨 말을 하냐 이전에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나와 친하지 않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하는 얘기는 맞지 않으면 당연히 맞지 않는 말이고, 심지어 맞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내가 싫어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무슨 말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두 가지의 경우 모두 객관성이 결여되었다는 건 분명하다.


나와 얘기한 내용을 제3자에게 얘기했다라고 가정해보자. 나와 친한 사람이 한 맞지 않는 말은 당연히 맞지 않다라고 할 것이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한 맞는 말은 당연히 맞는 말이라고 할 것이다. 제3자는 나와 얘기를 한 사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말 그 자체로만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의 친구가 나에게 얘기를 한 의도 또한 배제된 상황일 것이다.


조금 맞지 않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친구가 힘들다고 얘기한 것은 그 상황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 상황으로 인한 자신의 고민에 대해 같이 공감해주고 위로를 받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 친구에게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라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망치는 일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아무리 맞는 얘기를 한다 한들, 그 얘기가 맞고 틀리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1+1=2이다라는 수준의 명백한 사실을 얘기한다 한들 뭐가 중요하겠는가. 1+1은 2라는 걸 증명할 수 있냐라고 꼬투리를 잡고 싶은 생각만 든다. 그냥 그 사람이 말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맞는 얘길 하던 틀린 얘길 하던 맞지 않는 얘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고 어쩔 수 없이 얘기를 하게 되었지만 얘기는 빨리 마무리하고 그 사람과 마주하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친한 사람과 하는 얘기는 친하니까 할 수 있는 얘기이다. 그래서 조금 맞지 않는 얘기를 했을 때 맞다라고 해도 그 순간 맞장구 쳐주는 건 사실 크게 문제 될 건 없어 보인다. (물론 직장 상사에게 바른말을 하지 못한다거나, 고위급 간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틀린 결정에도 반대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스스로가 원해서 관계를 맺고 있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맺어진 관계라는 점을 감안하여 조금 예외로 생각해보기로 한다.) 문제는 친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에서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친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틀린 얘기를 지적하는 건 문제없겠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맞는 얘기를 틀리다라고 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잠시 잠깐 본능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잠시 잠깐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잠시 잠깐 망각해볼 필요가 있다. 관계보다도 하는 말 그 자체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맞장구쳐줌으로 인해 내 자존심에 심각한 스크래치를 낼 수 있다라는 아집을 조금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 맞는 건 맞고, 틀린 건 틀리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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