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방인 Aug 27. 2021

말 안 할래요 비밀이에요

비밀. 뭔가 신비스러운 느낌이 들고 호기심이 생기는 단어이다. SECRET. 영어로 하면 뭔가 더 그럴듯해 보이고 더 있어 보이는 느낌도 든다. 비밀, SECRET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이고 어두운 느낌으로 쓰이는 일은 많지가 않다. 비밀의 화원, 비밀의 숲 등의 제목으로 드라마, 영화 등이 만들어지면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신비스럽고 아련하고 무언가가 반전이 있을 것 같기도 하는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등 긍정적인 느낌으로의 이미지가 연상되기 쉽다. 그렇다면 비밀이 많은 사람은 어떠한 느낌이 들까. 비밀이란 말에서 원래 느껴졌던 신비한 느낌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람이라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답답한 느낌도 드는 게 사실이다. 말하기를 꺼려하고 쉽게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개수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비밀로 하고 싶은 일도 있다. 비밀이란 무엇일까. ‘숨기어 남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말아야 할 일’ ‘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비밀이라고 한다(네이버 어학사전 고마워요). 숨기어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능동적인 개념이겠다.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거나, 알리지 말아야겠다고 적극적으로 생각한 결과이다. 반면 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수동적 개념이겠다. 굳이 숨기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말할 기회가 없었다거나, 이건 비밀이에요!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능동적이던 수동적이던 어쨌든 한 가지는 공통점이 있고 한 가지는 확실하다. 들어줄 상대가 있어야 비밀도 성립한다는 것이다.


쉬는 날 출근도 하지 않고 약속도 없어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거렸다. 점심은 라면을 끓여먹고 저녁에는 치킨을 먹었다. 나 혼자 집에서 있고, 나 혼자 한 일이다. 내가 오늘 치킨을 먹었다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는 않은 내용이다. 그렇다고 비밀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얘기할 사람도 없고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다. 나 혼자 오늘 내가 치킨을 먹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야겠다라고 해봤자 아무도 그걸 비밀이라고 생각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니 애당초 비밀로 할 일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할 것이다. 혼자만의 비밀 같은 시적인 표현들이 가끔 노래에서는 쓰인다 할지라도 혼자 있을 때의 비밀이란 건 없다. 여러 명이 있을 때 비밀이란 건 성립하는 것이다. 혼자 있는 집에서 이건 비밀이에요라고 혼잣말을 해봤자 그건 그냥 독백일 뿐 비밀이 될 순 없다. (비밀의 2번째 정의에 해당하는 ‘밝혀지지 않은 일’ 일 순 있겠다. 그러나 이 또한 역시 밝혀짐의 대상이 있어야 성립할 수 있다. 집에서 혼자 얘기하는 일이 밝힌 일인지 밝히지 않은 일인지 애매하긴 하다만, 통상 밝힘의 주체와 마찬가지로 밝힘의 객체도 사람을 의미하므로  밝히지 않은 것으로 하자)


비밀의 속성에 대해 한 가지 더 생각해보자면 드러내지 말아야 할 일이 조금은 특별한 일이라는 것이다. 통상 일상적인 일을 비밀로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젯밤 잠을 잤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는 사람이 있을까? 일상적인 일에 조금은 특별한 무언가가 가미되었을 때 비밀로써의 가치는 성립하게 된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뛰어가다가 넘어졌다거나, 잠을 자다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거나 하는 일 등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특별한’ 일의 범주가 사람마다 너무 다르다는 데서 출발한다. 교제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을 끝끝내 알리지 않고 있다가 청첩장을 꺼내며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소개팅을 하고 몇 번 만나다가 교제하는 과정을 실시간 생중계하는 친구도 있다. 집을 샀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주 조심스럽게 겨우겨우 물어봐야 알려주는 사람도 있다.


이제 종합해본다.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 특별한 일에 대해 알리지 않는 일이라고 말이다. 이에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란 건 조금 특별한 사이로 이해될 수 있다. 반대로 비밀을 얘기하지 않는 사이란 건 특별하지 않은 사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나에 대해 많이 오픈하는 사람이 있다. 특별하지 않은 일이던 특별한 일이던, 다른 사람이 궁금해하던 궁금해하지 않던 거리낌 없이,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 비밀이 없는 사람에게는 다가가기가 어렵지 않다. 나에 대해 오픈한다는 것은, 나의 일을 비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는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고 이에 상대방도 쉽게 다가갈  있기 때문이다. 반면 비밀이 많은 사람과는 친해지기가 쉽지 않다.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이 순탄하지가 않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공유하는 과정이 친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과정 자체가 진도가 나가지가 않는다.     물어보다가 그냥 마음을 닫아버리게 된다.


자발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친구(나이의 기준이 아니라, 친한 지인의 의미로 ‘친구’라는 단어로 쓴다)의 관계가 아니라 비자발적으로 맺어진 회사에서라면 어떨까. 옆자리의 후배가 내일 연차를 쓴다고 한다. 무슨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쭈뼛쭈뼛한다. 사생활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혹시 어려운 일을 당했으면 도와주고 싶어서 물어본 거였다. 그런데 사생활을 공유하라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느껴졌나 보다. 잘 쉬고 오라는 말로 수습했지만 서로 간의 불편한 감정이 생김은 어쩔 수 없다. 연차의 이유를 비밀로 하고 싶어 하는 후배(1. 휴가 때 무슨 일을 하는지 적극적으로 숨겨야겠다 혹은 2. 휴가 때 무슨 일을 하는지 옆자리 선배에게 굳이 알리고 싶지 않다. 두 가지 다 비밀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다)와 동료에게 어느 정도는 삶을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생각하는 선배와의 갈등이 그래서 일어나곤 한다.


비밀로 하면    같은데 비밀로 함에 따라 생기는 갈등도 분명 있다. 1년간 휴직을 한다는 동료에게 무슨 일이 생긴  분명한데  휴직을 하는지 얘기를  한다.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 차원에서의 궁금함이 아니라, 동료의 빈자리를 메꿔야 하는 현실적인 부분에서  휴직을 하는지, 휴직기간 동안 연락을 해도 되는 건지, 퇴직이 아니라 정말 휴직인 건지 최소한 일을 같이 하고 있는 동료에게는 귀띔을 해주는  맞을  같은데 끝끝내 얘기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동료의 업무를 대신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노릇이다.


자발적이던, 비자발적이던 혹은 마음이 내키던 내키지 않던 공유해야  때도 있고 비밀로 해야  때도 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범위와 대상이 조금씩 다를  있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과정 중에서 너무 많은 비밀은 관계를 발전시키기 어려운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굳이 신비주의 컨셉을 잡은  아니라면 비밀로 해야  일과 공유해야  일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어떨까.

이전 18화 저만 그런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