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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un 25. 2021

저만 그런가요?

주제를 막론하고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있는 유형의 글이 있다. “저만 그런가요?”


1. 어떠한 객관적인 현상이 정상적인 것인지 확인하고 싶을  쓰는 “저만 그런가요?

TV, 냉장고 등의 전자제품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제품에 오류가 발생했을 , 자동차 커뮤니티에서는 자동차에 결함이 발견되었을 ,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인테리어 비용 산출이나 집의 하자보수가 발견되었을 때의 등등 발견할  있는 글이다. 객관적인 현상에 대한 질문을 하기 위해  글이고, 이러한 현상을 먼저 겪어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물어보기 위해 쓰는 글이다. 이러한 경우는 커뮤니티에 상주하는 고수들이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상담해주는 답글도 달리게 된다. 자연스럽다.


2. 어떠한 현상에 대해 주관적인 공감을 얻고 싶어 할  쓰는 “저만 그런가요?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를 봤는데 과연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동원할 만큼 재미가 있는 것일까, TV  아이스크림의 광고가  이렇게 선정적으로 느껴질까, 남들  재밌다고 하는 게임이 나는  이렇게 지루하게만 느껴질까 등등 현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방식에 대한 나의 감정을 드러냄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공감을 구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질문의 형식을 띄고는 있지만 질문은 아니다. 이러한 경우 생각할 포인트가 굉장히 많다. 공감을 받는지  받는지에 대한 이지선다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2-1. 네 님만 그렇습니다.

아쉽게도 실패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물어보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비판적인 댓글이 주를 이룬다. 혼자서 그렇게 생각만 하면 될 것이지 그걸 굳이 물어보는 이유가 무엇이냐, 아무도 그러게 생각하지 않는데 님의 생각을 강요하려는 것이냐 등등 말이다. 영화를 예로 들어본다. 천만 관객이 본 영화가 저는 재미없네요, 저만 그런가요에 대한 답글이다. 천만명이나 본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님이 재미없다고 느낄 수는 있겠는데 그런 거는 혼자 생각만 하시라, 영화를 본 천만명은 바보라서 봤냐, 영화평론가도 아니시면서 뭘 그렇게 평가를 하시려고 하나요 등등 말이다. 본전도 못 찾았다. 내 생각이 특이한 것이라는 사실만 확인하고 마음에는 상처만 남았다.


2-2.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영화를 예로 들어본다. 인기 있는 영화가 재미없는데 저만 그런지 글을 썼더니, 공감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사실 나도 재미없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시네요, 혹은 간단히 2222, 3333(공감하는 2번째 사람, 3번째 사람 등의 의미이다) 등의 댓글이 달린다. 나의 생각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고, 내 생각이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글을 쓴 보람이 있고 글을 쓴 목적을 달성했다. 더불어 남들이 감히 제기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내가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공감대와 비판 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다라는 리더십도 느껴진다. 다행이고, 뿌듯하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남들과 다른 생각, 내 생각이 특이한 것이라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알지만, 모두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며 나의 생각에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에게 있다. 그래서 당장 문제 해결을 위한 것도 아니고 어떠한 변화를 바라는 게 아니더라도 나의 생각과 남들의 생각이 비슷한지 확인하는 작업들을 수시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생각에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는 외로울 수밖에 없고, 답답할 수밖에 없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을 굽히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게 된다. 내 생각을 얘기해봤자 공감도 못 얻으며 내가 말을 하는 일은 불판을 지피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렇기에 저만 그런가요라는 글을  때는 나의 생각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에 의해서 글을 쓰게 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고, 그렇게 공감을 받는 것이 정상적이고 바람직해 보인다. 그런데 다른 생각을  수도 있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될  있는 주제에 한해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굉장히 파괴적인 주장과 생각(어느 당대표의 표현을 빌려 써봤다)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고 공감을 바랐을  공감대가 형성되는 경우에는 다소 문제가 복잡해진다.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사회적인 갈등을 유발할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일베나 메갈 등등 논란의 여지가 많은 커뮤니티의 주장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현상들이 그러한 예가   있으리라.


그렇다면 공감을 받지 못해도 문제이고, 공감을 받아도 문제인 것인가. 개인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당연히 공감을 받는 것이 베스트이며, 문제는 없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에 안도감도 느낄 수 있고, 소속감도 느낄 수 있어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어떠할까. 전술한 바와 같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공감에 대해서는 바람직하나, 부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공감이 많으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말에 공감하는 독일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히틀러가 독일을 이끌 수 있었고 히틀러는 안정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물론 저만 그런가요?”라는 글을 올리는 작은 현상에 대해 히틀러까지 운운하는 것은 명백한 오바인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한 번쯤은 생각해  만한 현상인  같기는 하다. ‘공감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그리고 그러한 공감을 바라는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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