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이 끝나 시골생활을 마무리하고 대학교에 진학하고자 서울로 상경했을 때의 일이 기억난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같은 대학교로 먼저 진학을 한 형이 있었고, 그 형은 고등학교 시절 학생회장도 역임했을 만큼 인기가 많았던 소위 인싸 형님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늘 그러하듯, 대학교에서는 고향 동문 모임이 자연스레 결성되어 있었고, 그 모임을 통해 그 형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사실 그간 대학교 캠퍼스 내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인사를 하지는 않았었다. 나는 그 형을 알지만, 그 형은 나를 모를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동문 모임에서야 정식으로 인사를 하였고, 사실 그간 마주친 적 있었노라라고 고백을 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척을, 인사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을 했더니 맞는 말인 거 같기도 하고 틀린 말인 거 같기도 하다라는 말을 건네주었다. 그렇다고 그게 인사 안 한 핑계가 될 수 없다는 의미의 등짝스매싱과 함께 말이다.
어려서부터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탓에 사람들에게 인사를 잘 건네지 못했다. 차라리 나보다 높은 사람(나이가 많다거나, 선생님이라던가)에게는 인사하는 게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았었는데, 나와 동등한 위치에 있거나 나보다 낮은 사람에게 하는 인사는 왜 그리 어색하게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안녕’이라는 말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안녕’이라고 말을 하는 것은 뭔가 시골아이가 어색하게 표준말을 쓰는 듯하는 느낌도 들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사람과 사람이 마주치면 으레 인사를 건네게 된다. 인사란 게 꼭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아닐지라도 ‘아는 척’을 하는 걸로 이해될 수 있겠다. 매일 보는 사이라면 “밥 먹었니”가 될 수도 있고, 오랜만에 보는 사이라면 “잘 지냈니”가 될 수도 있다. ‘인사’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마주 대하거나 헤어질 때에 예를 표함.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이라고 한다.(이번에도 역시 네이버 사전의 도움을 받았다.) 꼭 말이 아니어도 된다는 얘기다. 손을 흔들 수도 있고, 어깨를 툭 칠 수도 있다. 또한 인사란 ‘예’를 표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예’라는 것이 꼭 격식을 차린 ‘예절’만을 의미함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거나 으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또한 인사를 한문으로 보면 ‘人事’이다. 사람의 일이다.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며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사를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인사를 하는 경우도 물론 있겠으나, 인사는 통상 한 사람이 시작을 하면 상대방이 화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간혹 눈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인사를 시작하지 않아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통상 서로 본 거 같긴 한데 누구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경우에). 이러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서로 간에 아는 사이일 경우 어느 한 사람이 자연스레 인사(혹은 아는 척)를 시작하게 된다. 누가 먼저 인사를 시작하는 게 맞는 것인가라는 바보 같은 고민을 해야 할 이유가 있나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다가올 경우가 있다. 크고 작은 조직 생활에서 ‘그 사람은 너무 인사를 안 해’라는 평가를 듣는 사람이 늘 있기 때문이다. 인사를 안 한다는 평이 들리는 이유는 그 사람이 인사를 ‘시작’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사람이 인사를 시작하지 않더라도,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면 상대방도 인사를 하기 마련이다. 그 사람이 시작하지 않았지만 나도 시작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너무 인사를 안 해’라는 평은 결국 ‘그 사람’이 먼저 인사를 ‘시작’했었어야 한다라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인사를 ‘시작’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고 상대방이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결론이 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는데 상대방이 화답하지 않은 경우 말이다. 속칭 씹혔다로 표현될 수 있는 경우인데, 이러한 경우는 시작은 했지만 끝은 나지 않은 상황이므로 시작하지 않은 상황보다 더 당황스럽고 더 불쾌할 수가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인사해봤자 뭐하냐 받지도 않는데’로 결론이 나서 더 이상 인사를 ‘시작’ 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고야 만다. 나보다 높은 사람(나이가 많거나 상관이거나)에게 인사를 씹히는 일은 기분 좋지가 않다. 그런데 더 기분 좋지 않은 일은 나보다 낮은 사람(나이가 적거나 후배이거나)에게 인사를 씹히는 경우이다. 있다. 없을 것 같지만 있는 일이다. 통상 인사를 ‘시작’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에게 인사를 잘하라고 가르치는 이유가 그런 이유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낮은 사람에게 내가 먼저 인사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화답이 없다면 그만큼 기분 나쁜 일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사의 ‘시작’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화답’하는 일인 거 같기도 하다.
인사의 시작과 더불어 또 하나 생각해볼 만한 포인트는 인사를 나누는 상대방과의 ‘관계’이다. 서로 아는 경우에는 당연히 인사가 오고 가기 마련이지만, 어느 한쪽만 상대방을 안다거나 어느 한쪽만 상대방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은 경우도 때때로 발생한다. 가끔 업무차 국회를 갈 일이 있는데 국회에 가니 국회의원들을 마주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생긴다. 국회의원 중에서도 유명한 사람이 있고 상대적으로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유명하지 않은 국회의원에게 인사를 하는 선배를 보았다. “저 국회의원하고 친분이 있으세요?”라고 물어봤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였다. 그런데 왜 인사를 하냐고 물어봤더니 어쨌든 나는 저 사람을 알고, 아는 척을 하면 굉장히 좋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비록 서로 알지는 못하고 한쪽만 아는 사이라고 해도 인사를 하는 일은 상대방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행위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아.....이런 깨달음을 대학교 입학 후 인싸 형을 만나기 전에 얻었어야 하는데.....). 지금 당장 편하게 인사를 나눌 만큼 친하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거나, 내가 당신에게 호감이 있어요라는 표현을 인사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서로 알지만 서로 인사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 말이다. 눈이 마주쳤으나 이 순간 내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을 몰라서 인사를 안 하거나, 안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과의 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인사를 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이다. 친분이 있고, 서로 아는 사이인가를 떠나서 인사를 하고 싶은 관계의 사람이어야 인사를 건네게 되는 것이다. 보고 싶지도 않고 친하게 지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은 생각은 당연히 없을 것이고, 억지로 건넨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인사는 ‘예’를 표하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 어쩔 수 없이 하는 인사는 그냥 입을 잠깐 움직이거나 손이 아래에 있다가 위로 오는 수준의 움직임에 불과하다. 회사에서 높으신 분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인사를 하게 되지만, 왠지 모를 어색함과 불편함은 높은 사람과 편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습관성 인사의 목적과 현상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된다. 아침에 출근을 하게 되면 먼저 와 있던 사람에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네곤 한다. 전날 저녁 6~7시경 퇴근을 하고, 다음날 8~9시경 출근을 하게 되는데, 따지고 보면 마주치지 않고 있던 순간은 12~13시간가량이 된다. 주말 빼고 평일 매일 보는 사이인데, 12~13시간가량 보지 않았다고 아침에 또다시 인사를 하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이는 마주치지 않았던 시간의 양으로만 생각했을 때의 일이다. 마주치지 않았던 시간의 내용으로 생각하면 어떠한가. 퇴근하고 집에 가서 저녁 먹고 잠만 자고 다시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저녁 먹고 자는 순간 당신을 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보는 순간에 다시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다.
인사란 윤활유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사이에 있어 인사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고 중요한 일이 생기지는 않지만, 작은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고 중요한 일을 만들어가는 단초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인사하는 일은 중요하고 의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