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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Mar 17. 2021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시오

사람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 있어 말과 글은 굉장히 좋은 도구이자 유일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추상적인 그림과 도형을 통해서 생각을 전달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것들은 직접적이고 확실하게 의도하는 바를 나타내 주지는 못한다라는 데에 이견을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말과 글은 전달하는 방식과 전달되는 내용이 매우 다르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내용과 더불어 목소리와 손짓과 표정 등이 어우러져 생각과 감정이 전달되는 데 반해, 글은 활자화된 글자를 통해서만 내용을 파악해야 된다. 그래서 글은 말과 달리 여러 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학창 시절 누구나 황당함을 느껴봤을 만한 일이 그래서 발생된다. 언어영역에서 글의 문맥을  파악하는 일,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이 그래서 어렵고 그래서 황당하다. 문자를 통해 글쓴이의 생각을 알아내야 하는데, 하나의 문장만 봐서는 도저히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앞뒤 문맥상, 글의 전체 흐름상 여러 가지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의도를 겨우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글쓴이가 글을 쓸 당시의 상황도 이해를 해야 글을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많았다. 시험을 잘 받아야 하기에, 점수를 잘 받아야 하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글쓴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이 글을 썼는지 억지로 글쓴이의 생각에 내 생각을 끼워 맞춰야 하는 일이 많았다. 내가 고른 답이 오답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경우, 정답이 진짜 글쓴이의 의도가 맞는지 아닌지 의심이 들 때도 많았다. 그리고 글쓴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나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다.


명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글은 그나마 이러한 일들-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다. 감정에 호소하는 글에 이러한 오해와 어려움이 더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산문보다는 시가 더 어렵다. 몇 글자 되지 않는 글에서 시인의 감정을 읽어야 하고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부정적인 의미로의 오해와 어려움과 더불어 긍정적인 의미로써의 오해도 발생한 다. 비록 글쓴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지금 내 상황에 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고 내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에 의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글쓴이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의 상황과 나의 생각에 맞추어 글을 느끼고 생각하는 일이 사실 더 가치 있고 더 의미 있는 일일 경우가 많다. 그렇게 보자면 사실 글쓴이의 의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을 보는 나의 상황과 나의 관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노래라고 하는 것은 시에 가락(음의 높낮이)을 덧붙인 것이므로 노래도 가사의 의미를 생각하고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 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음악을 일관성 없이 듣는 편이며, 언젠가부터 동요도 자주 듣고 있다. 동요의 사전적 의미는 “어린이를 위하여 동심을 바탕으로 지은 노래”라고 한다. 사실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이지만 어른들이 자주 듣는 경우도 많다(육아를 위해서). 나의 경우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동요를 자주 듣긴 했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더더욱 자주 듣고 있다. 최근에 자주 듣는 동요는 “달팽이의 하루”라는 동요이다. “달팽이의 하루”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보슬보슬 비가 와요 하늘에서 비가 내려요.

달팽이는 비 오는 날 제일 좋아해.

빗방울과 친구 되어 풀잎 미끄럼을 타볼까.

마음은 신나서 달려가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야호 마음은 바쁘지만 느릿느릿 달팽이

어느새 비 그치고 해가 반짝 아직도 한 뼘을 못 갔구나’


아이들을 위한 노래이다. 그래서 작사가는 아이들의 관점에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작사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글쓴이, 작사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작사가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미루어 짐작컨대, 달팽이라는 신기하게 생긴 동물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보기에는 비를 맞으며 엄청나게 느린 신기하게 생긴 동물이 꼬물꼬물 움직이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라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동요이기 때문에 글을 쓴 사람, 작사가의 의도는 어린이에게 향해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고 당연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동요를 듣는 나의 관점, 어른들의 관점은 어떨까. ‘달팽이는 비 오는 날 제일 좋아해’. 개인적으로 비가 오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옷이 비에 젖어 축축해지는 것도 싫고,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가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고 등등의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비라고 하는 것은 고난을 의미할 때 많이 쓰이기도 한다. 비 맞는 일은 어려운 일을 당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달팽이는 비 오는 날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달팽이는 참 긍정적인 친구인가 보다 하는 생각과 더불어 이런저런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하늘에서 뭐가 내려온다고 하니 재밌기도 하고 신나기도 한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걱정 없이 살아가는 친구인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마음은 신나서 달려가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동요를 듣는 어른들의 관점이 투영되기 시작한다. 비가 오는 게 재밌고 먼길을 미끄럼도 타면서 가는 과정이 아이들이 보기에는 신나는 일일지 모르겠으나, 끝도 없는 길을 가야 하는 운명에 처해진 어른들에게는 고난의 길이다. 가는 과정보다는 빨리,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빠르게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게 어른들이 바라는 점일 텐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고 한다. 답답한 노릇이다. 목표를 세웠는데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목표까지는 멀게만 느껴지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신나는 게 아니라 힘들다라는 생각만 들뿐이다.


‘야호 마음은 바쁘지만 느릿느릿 달팽이’. 아이들의 관점에서는 어디를 가고 싶은지 알 수 없지만 가고 싶은 곳으로 빠르게 가고 싶은데 느릿하기만 한  달팽이가 재미있을지 모른다. 빨리 결혼도 하고 싶고, 빨리 집도 사고 싶고, 빨리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어른들이 보기에는 노력해도 진전이 없어 보이는 이 상황이 속상하기만 하다. 마음은 조급한데, 진도가 잘 안 나가서 지치는 마음도 든다.


‘어느새 비 그치고 해가 반짝 아직도 한 뼘을 못 갔구나’. 겨우겨우 어려운 상황은 모면했고 이제 조금 수월해질 것 같긴 한데, 뒤돌아보니 내가 한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이루어놓은 건 티끌과 같이 미약하기만 하다. 아이들이야 꼬물꼬물 열심히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뼘도 못 간 달팽이가 우습겠지만. 달팽이가 나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에 어른들은 처량함과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는 크지 않지만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신나게 꼬물꼬물 움직이는 달팽이처럼 나도 열심히 살아보아야겠다는 훈훈한 마음으로 노래의 끝을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의도치 않은 데서, 생각지 않은 상황에서,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마음이 움직여지는 경우가 있다. ‘달팽이의 하루’를 들으면서 작사가가 진정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파악해보는 일도 물론 의미 있겠지만, 가사를 통해 내가 처한 상황은 어떠한 것인지, 현재 나의 상태는 어떤지 생각해보는 일이 더 의미 있어 보인다.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 사실 글쓴이의 의도와 더불어 그 글을 읽는 나의 마음 상태를 파악하는 일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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