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을 높여준다는 과장광고(?)에 대해
월경컵을 알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이다. 2007년 객원기자로 일하던 여성잡지에 대안 월경대 기사를 통해 월경컵을 소개했으니 정보 면에서는 시대를 앞지른 셈이다. 당시 국내에 수입되던 2종의 컵 중 ‘문컵’을 써볼 기회였고, 착용까지는 성공했었다. 하지만 제대로 넣지 못한 탓에 컵 꼬리가 거치적거렸고, 컵 두께도 상당해서 이물감을 느꼈다. 탐폰은 독성쇼크증후군으로 인해 쓰지 못하는 상태였다. 결국은 월경컵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일회용 생리대와 면생리대를 번갈아 쓰는 처지가 됐다.
다시금 월경컵을 써볼까 하게 된 건 작년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를 보고서였다. 영화는 과거 인구조절 정책을 펴며 여성의 자궁을 통제가능한 자원으로 보던 정부의 태도를 꼬집으며 질에 무언가를 넣는 자체를 터부시해 탐폰이 대중화되지 못하는 우리의 성의식을 드러낸다. 그리고 월경컵을 쓰며 달라진 감독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정말 반신반의했던 건 월경컵으로 인해 자존감이 높아졌고,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긍정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여성은 늘 월경 중이 아니기를 강요받는다. 자신이 월경 중이라는 것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생리대를 보이게끔 휴대해서도 안 되고, 면생리대를 담근 핏물도 가족에게 보여줘서는 안 되며, 옷에 피가 배어나도 안 되고 월경통을 티내서도 안 된다. 분명 여성의 20% 이상은 생리중인데도 소곤거리며 패드를 빌리거나 티 나지 않게 하소연해야 한다. 이 모두에 대해 “유난스럽다”는 표현이 있는데 너만 하는 거 아니니까 티 내지 말라는 의미가 낭낭하다.
(모든 여성이 월경을 하는 건 아니지만) 여성이 겪는 신체적 경험은 대개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임신과 출산에 연관된 것만 빼고. 월경도 분명 이와 연관된 문제지만 월경 자체만으로는 연구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어떤 생리대 회사도 여성 건강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 단지 화학물질이 범벅된 생리대를 만들어팔면서 최소한의 책임도 지지 않고,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환경연대에 거액의 소송을 걸어 입막음을 하려든다. 이 방식은 미투 고발자에게 명예훼손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가해자들의 패턴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기업이 호구로 보는) 한국 여성이기에 비싸고 건강에도 좋지 않은 월경대를 입 다물고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경험을 겪으며 여성은 결국 자신의 몸을 타자화하고, 스스로도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을 부정적인 태도로 바라보게 된다. 생리혈을 포함한 각종 분비물과 부산물까지 포괄하는 ‘생리’란 말이 ‘월경’을 대체하게 된 데는 이런 맥락이 있다. 어떻게든 월경을 에둘러 지칭하려는 표현이 바로 생리라는 단어다.
일회용 생리대와 월경통의 상관관계
올해 월경 페스티벌 기획단과 찍는페미가 제작한 미니 월경 다큐멘터리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초경 때 월경통이 거의 없다가, 일회용 생리대를 몇 년간 사용한 후부터 통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의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으나 여성들의 경험에 의하면 그렇고, 여성의 질 점막이 인체의 어떤 조직보다 흡수력이 높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각종 화학물질과 발암성분이 고스란히 질로 흡수돼 난임과 종양, 각종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은 왜 병원과 연구실에서 증명되지 않는지 의문이 생긴다. 이는 국가적인 화두인 저출산과도 연관되는 문제인데 말이다. 아이 낳는 여성에게 1억 원을 주자거나, 가임기의 자궁이 얼마나 분포되어 있는지를 알려주는 출산지도 같은 것을 국가가(이건 박근혜 정부였지만) 내놓는 현실을 보면 여성의 건강권이나 임신과 결혼으로 인한 경력 단절 대책도 단지 여성을 가정에, 국가가 통제가능한 범주에 두고자 하는 압박이 느껴진다.
어쨌거나 다시 월경컵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번 월경 때는 컵을 사용하자마자 즉각적으로 통증이 없어지는 경험을 했다. 부글부글 언제든 화장실로 직행할 수 있었던 위장이 가라앉고 두통이나 뻐근함까지 사라지는데, 약을 복용하고도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한참이 걸리는 데 비하면 놀라운 수준이었다. 어쩌면 월경통은 자궁 점막이 느끼는 화학물질 범벅의 패드에 대한 거부반응은 아닐까. 여성들이 월경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이런 불편과 고통이 무관하다 할 수 있을까.
월경컵을 사용함으로써 여성들은 불쾌함과 통증에서 더 자유로우며, 자신의 자궁에서 나온 피 그 자체를 마주하는 경험을 한다. 피 자체는 냄새도 나지 않고, 의료용 실리콘에 담겨 나온 자신의 몸속 물질 자체이기에 무섭지도 더럽지도 않다. 이를 넣고 빼는 데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자궁 안쪽에 컵을 넣어서 안착시키는 경험은, 몸 속 기관 중의 하나와 더 친근해지는 과정이고 어쩔 수 없이(선택이 불가능하므로) 여성으로 태어나 자궁과 불화했던 경험을 조금은 희석시켜준다.
또한 몸에서 나온 피를 처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회용품을 사용해야 했던 죄책과 지구에 대한 미안함을 덜어주고,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어 경제적으로도 이로우니 월경컵은 정말 신의 발명품이 아닐까 싶다. 월경컵을 사용함으로 인해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것은 몸을 둘러싼 시대착오적인 담론과 평가, 불편함으로부터 해방되는 경험의 작용인 것이다. 도대체 왜 월경컵을 사용하는데 남자친구의 허락(?)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월경을 수월하게 해주는 도구일 뿐인데 왜 그 비교대상이 남성성기인지도. 요즘 비혼, 비출산을 표명하는 여성들이 많은데, 그들은 매달 고통만 안겨주는 자궁을 불필요한 존재로 바라보게 되고, 질환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큰 고민 없이 자궁을 절제하기도 하는데 그리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나는 아직 3회 정도의 주기를 사용한 월경컵 초짜이고 가끔 마음이 급하거나 얼른 컵을 빼내야 할 때 실수도 하지만 이 놀라운 물건을 2007년부터 계속 사용하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마음마저 든다. 지난 십여 년의 고통과 불편함을 덜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페미니스트들에게 월경컵은 이슈의 중심인데 십대들도 생각보다 꽤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초경 후 이제 ‘엄마가 될 수 있는 몸’이라며 축하를 받는 것에도 떨떠름한 친구도 많았다. 당연히 월경은 임신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여성의 몸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의 것이라는 당연한 명제로 글을 맺고자 한다. 그리고 정말 월경컵을 꼭 한 번 사용해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