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일수록 자존감이 높아진다?!
글/ 이은
[독립, 하셨습니까] 지은이, 영화 만드는 사람(<아이 캔 디펜스>). 무규칙이종댄서로 불리고픈 꿈이 있으며 현재는 웨스트코스트 스윙과 주크댄스에 빠져있다.
남다른 떡잎의 보유자
어려서부터 유난히 지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였다. 목회자였던 아버지가 지방 소도시 제법 큰 교회의 새내기 목사로 재임하던 무렵이었다. 성장이 빨랐고 엄마는 아파서 유치원에도 일 년 일찍 간 나는, 돌봐주는 어른 없이도 동네 조무래기들과 운동장을 거침없이 뛰어놀았다. 교회 사택에 살던 내게 제법 큰 운동장은 나의 ‘영역’ 비슷한 것이었고 그래서 돌이키면 민망하지만 좀 기고만장했던 듯도 하다. 어느 날 내 운동장에 태권도복을 갖춰입은 사내애가 나타났다. 검은 띠였는지 여하튼 유색의 띠를 의기양양하게 두르고 나타나선, 큰 소리를 치면서 “여기서 내 주먹 맞고 안 울 애는 없을걸!” 따위 말을 했다. 어쩐지 자존심이 상한 내가 어디 한 번 질러보라며 버티고 섰고, 그 아인 거침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아팠다, 눈물이 핑 돌 만큼. 그런데 참았다. 힘을 쥐어짜서 "별 것도 아니네" 하는 반응을 남기곤 돌아섰고 ‘가오’가 상한 남자앤 사라졌다. 나도 태권도를 배우고 싶었지만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게다가 여자애라서 도장에 다니지 못했고, 자라면서 운동장이 온통 남자들의 차지가 되는 걸 보며 배앓이 꼴리는 기분을 느꼈다. 몸의 영역에서는 아마 태생부터 페미니스트였나보다. 둘이나 되는 남동생들과 종종 놀다보니 사춘기 무렵에는 원핸드 슛을 날리는, 드문 여자애가 되어있었다.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배운 레이업슛도 무척 재미있었다. 몸이 제법 날랜 편이었으니 키만 좀 컸으면 훌륭한 아마추어 농구인이 되었을지도.
대학에 진학해서는 남자들 사이에 껴서 농구 좀 했다고, 대놓고 이상한 여자(그러니까 미친년) 취급을 당했다. 토씨 하나 안 보태고 “저런 게 무슨 여자야?” 소리도 들었고, 코트에서 꺼지라는 듯 부러 거칠게 몸싸움을 걸던 교수(!), 공을 잡는 척 가슴으로 손이 오던 동기놈... 나열하기만도 부아가 치미는 폭력을 겪어야 했다. 단지 남자들의 영역에 끼어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들은 성장과정에서 몸으로 성취를 이루는 경험이 드물거나 그것을 즐기기 어렵다. 내 손을 떠난 공이 골망을 가르는 순간의 그 시원한 쾌감, 땀을 흘리며 무언가를 배우고 될랑 말랑 하던 어떤 동작을 드디어 몸으로 체화하는 순간의 뿌듯함 같은 것들. 산만하거나 나처럼 활동량이 많은 아이는 유난스럽다거나 나대지 말라는 퉁을 듣는다(다른 성별이었으면 아마도 칭찬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다움에 더 맞춤한 피아노나 발레 등을 배우며 성장해간다. 운동을 해서 근육이라도 잡힐라치면 치마도 입지 말라는 둥, 운동은 오직 살 빼는 용도로서의 효용이 두드러지게 강조된다.
여자다움을 강요하는 문화에서 춤을 추는 일
유교의 영향이 남아있고 서구에 비해 미소지니(여성비하 혹은 여성혐오)가 두드러지는 동아시아의 여성들은 근육량도 최저 수준일 것이다. 이는 선천적으로 피지컬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결국 운동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30세가 넘어가면 근육량이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이 속도를 더욱 부추기는 것이 부족한 영양(다이어트가 뭐라고!)과 운동량이다. 타고난 체력을 모조리 소진하고 정신력으로 버티다가 마흔 즈음이 되면 잔병치레를 하면서 살기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마녀체력>을 쓴 이영미도 타고난 저질체력에 편집자로서 책상머리에서 살다가 최후의 보루에서 시작한 운동을 설파하는 ‘전도사’가 된 케이스.
“연약한 것보다 강한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일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오늘도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 후배들에게도 알려 주고 싶다. 체력이 강해지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극복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을.” (<마녀체력> 서문 중에서)
그는 자그마치 철인 3종 경기를 하는 여성이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 운동을 잘 견디지 못한다. 자전거도 제때 깨치지 못했다. 춤이 좋은 것은 어떤 운동과도 비교할 수 없이 재미있다는 것, 그리고 커플 춤에서는 개개인의 몸의 역량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지만 성취나 결과 면에서는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추다보면 어쩔 수 없이 몸의 문제에 천착하게 되고 자신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운동과도 친해진다는 것이다.
춤의 세계에서는 일단 사회에서 통용되는 계급장을 떼니 취미로서도, 인간관계를 맺는 하나의 수단으로서도 도움이 된다. 주로 만나는 파트너가 한국 남성이라는 점에 약간의 위험요소가 있지만 그래도 대체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상대를 극복하는 어떤 정신승리 같은 것도 가능해진달까. 그리고 아주 잘 추고 가르치는 것에도 재능이 있다면 직업 혹은 부업으로 더 즐겁게 돈을 버는 ‘덕업일체’의 삶에도 한 발 다가설 수 있다. 진정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인 꿈의 라이프 되시겠다.